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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다리 1백년이 갖는 의미

담당부서
안전총괄실교량안전과
문의
02-2133-1970
수정일
2023.06.09
한강다리 1백년이 갖는 의미

|박병주| 홍익대 명예교수

관악산을 배경으로 한 한강철교와 한강대교

한강철교는 1900년 7월에 준공하였으니 1999년으로 1백년째가 된다. 한강철교가 가설됨으로써 서울(경성)-인천간의 경인선 철도가 개통되었고 1905년 경부선의 개통과 함께 우리나라 철도시대의 막을 열게 하였다. 한강철교의 가설지점인 노량진-용산의 한강 폭 즉, 다리의 길이는 1천1백13m에 이른다. 이 다리를 비롯한 경인선 철도부설은 1876년 강화조약에 의한 개항과 열강의 세력 각축 끝에 1896년 미국인 J. R. 모스가 철도부설의 특허권을 따냈고, 따라서 한강철교는 미국에서 설계 및 철도교 자재가 도입된 바 있는데, 공사도중에 일본이 인수하여 준공하였다.

철도는 기점과 종점 그리고 중간 중간의 주요도시들을 연결하여 운송의 효율을 올려야 하므로 철도역의 입지는 각각의 도시 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었다. 한강철교 근처에는 영등포역-노량진역-한강철교-용산역-서울역으로 결정됨에 따라 이 역을 중심으로 역세권을 형성하여 나왔다.

한강철교 개통 후, 1917년에 한강대교(일명 한강인도교)가 준공되었다. 한강철교는 사람이 통행할 수 없어, 사람·우마차 그리고 자동차가 통행할 수 있는 다리의 건설을 바랐기 때문이다. 한강대교도 한강철교 가까이에 가설하여 용산역앞-서울역앞-남대문을 잇는 도로 선을 이었다. 한편 서울의 동쪽 관문인 광진교는 1936년에 건설되었다. 그러니까 1950년 6.25때 서울 한강다리는 위 3개만 있었고, 이들 다리를 폭파함으로써 북한군의 한강 도하를 저지시키게 하는 일도 있었다. 1965년에는 양화대교가 가설되었는데 이는 경인축인 발전방향, 김포공항과의 연결, 서부전선의 전략적 고려 등을 감안한 것으로 제2한강교라는 이름으로 통용되었다. 1969년에는 한남대교(제3한강교)가 가설된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준공에 맞추어 서둘러 건설한 다리이다. 이 한남대교의 건설에 따라 강남지구의 시가지 개발이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늘어난 한강다리와 시가지 확장

여기서 잠시 서울의 인구증가와 한강 이남의 도시개발의 과정의 대강을 살펴보자. 먼저 조선왕조가 서울(한양)에 자리를 잡고 도시의 얼개가 형성된 시기의 지도에는 북한산을 배경으로 남으로 남산을 두고 그 기슭에 남대문을 설치하는 성곽을 쌓았으며 지도남쪽 외곽둘레에 한강의 주운교통의 거점들과 나루터들이 동대문, 남대문, 서대문과 도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본다. 금세기 전까지의 서울의 시가지는 서울 성곽 안이 위주였고, 금세기에 들어서자 위에서 말한 철도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남대문 바로 밖에 남대문역(지금의 서울역)이 들어서고 철도역인 용산, 그리고 한강을 건너 영등포쪽으로 새로운 서울 발전축이 형성된다. 이 시기의 서울 인구는 약 20만명이었다. 이러던 서울인구가 광복당시 95만명 정도였고, 6.25를 거쳐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2백만명, 1970년대에 5백만명으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된다

인구의 대폭적인 증가는 시가지 확장이 수반되게 마련이다. 서울시로서는 도시구역을 확장해야 했다. 한강 이남은 영등포지역을 제외하고는 서울시역이 아니었는데, 1973년에 한강 이남에 강북의 면적과 맞먹는 광활한 땅을 서울시역으로 편입시켰다. 서울의 인구증가는 1976년 7백25만명, 1981년 8백67만명, 1991년에는 1천90만명으로 1천만 도시가 되어 인구로서는 세계 10대 도시 속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와 함께 한강의 강북지역과 강남지역의 인구분포도 큰 변화를 일으켰다. 1966년에는 82% 대 18%였던 것이, 1986년에는 53% 대 47%, 1991년 말에는 50.5% 대 49.5%가 되었고, 현재로서도 강북 대 강남의 인구분포는 약 50% 대 50%가 되어 있다. 이러다 보니 한강은 어느새 서울의 한가운데를 동서로 횡단하여 흐르는 존재가 되었고, 서울의 도시공간을 다스리는데는 한강을 앞세우지 않고 도시계획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서울시내 한강의 길이는 41.5㎞이고, 폭은 9백∼1천2백m에 이른다. 현재 서울시역내 한강의 다리수는 21개에 달한다. 위에서 1960년대까지 다리건설 얘기를 했는데, 1970년대에 들어와 마포대교, 잠실대교, 영동대교, 반포대교, 천호대교, 성수대교가 건설되고 1980년대에 성산대교, 원효대교, 잠실전철교, 동호전철교, 동작전철교 등이 건설되며 1990년대에 서강대교, 청담대교 등이 건설되었다. 서울 한강다리 21개중 1970년대 이후 신설한 다리는 16개소나 된다. 이 30년 동안 엄청난 발전을 이룩한 셈이다.

 

아름다운 다리, 걷고 싶은 다리 기대

서울 1천만 인구가 한강을 사이에 두고 강북과 강남에 반반이 거주하고 있으니 한강을 건너야 하는 교통수요가 대폭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고, 때문에 한강다리의 교통처리 용량 부족의 문제라든가, 한강다리의 안전성, 각 다리의 자동차 진출입 연결도로의 기능 문제에까지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호우가 내리고 홍수경보가 나고 한강의 수위가 위험 수위로 올라가는 숨가쁜 보도에 접하면 서울시민의 가슴은 온통 조이기 시작한다. 한강다리의 어느 곳이 붕괴되지 않을까? 한강제방은 안전할까? 하고 불안한 시간을 보낸다. 이런 때는 다리를 설계 건설한 토목기술자의 노고를 치하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우기가 아닌 보통 때의 한강 풍경에 대한 시민의 견해는 불평이 더 많은 것 같다. ‘수도 서울의 한강다리를 좀 더 멋있는 상징성을 갖는 개성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런게 없어 보인다’든가, ‘한강다리에도 걷고 싶은 다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등의 의견도 있고, 한강 연안 주민들은 친수생활의 보행 접근성 불편을 호소하기도 하고, 다리 위에서 하천주변 경관이나 둔치나 유람선 위에서 느끼는 한강 풍경이 너무나 삭막하다. '왜 획일적인 고층아파트들이 한강 풍경을 가로막고 있는가?' 등 이제는 양보다 질을 강하게 바라고 있다.

세계는 지금 자연친화적 시설을 요구하고 있고 하안(河岸)이나 해안(海岸)에 대한 친수성을 인간성 회복과 더불어 강조하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과 추한 풍경을 구별할 줄 아는 안목이 트여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추한 풍경을 외면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그림이 되는 곳을 찾아 사람들은 모이게 된다. 아름다운 살기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 수명은 길게 마련이라는 상식이 정착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서울 한강도 아름다워져야 한다. 하나 하나의 다리의 손질이 정성어려져야 하고, 다리마다 항상 안전성과 청결성의 유지, 관리가 지속되어야 하며 다리 교통 소통의 원활을 위한 시설도 추가되어 나가야 한다. 서울의 한강이 갖는 특수성도 잘 살려져야 한다. 세계의 도시 속에 도시의 한가운데를 흐르는 1㎞나 넘는 강의 폭을 갖는 도시는 서울뿐이다. 이런 광활하고 시원스런 오픈 스페이스의 특징을 잘 살려나가야 한다. 다리는 개체 구조물만이 아닌 교대(橋臺)의 주변풍경, 다리 위에서 보이는 풍경 등 다리를 둘러싼 주변의 경관과 더불어 다리미를 과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한강철교 1백년의 이 시점에서 뒤늦게나마 서울시가 ‘새 서울 우리 한강사업’을 아름다운 서울 가꾸기의 핵심 과제로 삼은 것은 그 의미가 매우 커서 큰 기대를 걸게 한다.

위 내용은 '99. 9. 월간서울 9월호 : 기획특집 「한강다리」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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