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분야 누리집 - 서울특별시





		
		

	 
	
	

한강다리 1백년

담당부서
안전총괄실교량안전과
문의
02-2133-1945
수정일
2023.06.12
한강다리 어제와 오늘
한강철교

1912년 한강철교 공사. 왼쪽은 1900년 7월 준공된 최초의 한강다리인 한강철교입니다. 오른쪽 공사중인 다리는 한강철교 제2다리(현 한강철교B) (서울시립박물관 발행 '서울의 옛모습'에 수록)

한강 위에 놓인 최초의 다리는 1900년 7월 5일 준공된 한강철교입니다.

한강철교는 1896년 3월 미국인 제임스 모스가 정부로부터 한강다리 부설권과 경인철도 부설권을 얻은 후 4년만에 완공되었습니다. 한강철교 건설 공사는 국내 최초의 근대식 토목공사로 수많은 인부를 한강 모랫벌에 모이게 함으로써 용산 일대에 큰 발전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한강철교의 건설은"한반도에 교통혁명"으로 비유될 만한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그 후, 1905년 경부선 철도의 준공으로 운송량이 증가하면서 복선화의 필요성이 대두돼 제2철교(현 한강철교 b)가 1912년 9월 준공되었고 1944년 6월에는 다시 한강철교 c가, 1994년 12월에는 한강철교 d가 준공돼 현재 모두 넷이 되었습니다.

철교의 위치는 상류에서 하류측으로 a-b-d-c 순으로 자리해 있습니다. 현재 이 철교들은 각기 다른 역할을 하는데 철교a는 용산에서 부평간 경인선 직통 전동열차, b는 화물열차, c는 경부선·장항선·호남선 등 철도, d는 경인·경수 전동차가 다닙니다 . 한강철교 a·b·c의 현재 모습은 6.25때 국군의 작전상 폭파로 끊긴 후 새로 복구된 것입니다.

 

한강대교

6.25때 폭파된 한강대교를 복구한 후 58년 5월15일에 가진 개통식. 개통기념으로 시민들이 한강대교를 건너고 있습니다.

한강 위에 놓인 최초의 다리는 1900년 7월 5일 준공된 한강철교입니다. 사람과 우마차가 다니는 길이라 해서 인도교라 이름 붙여진 한강대교가 건설된 것은 철교 개설 17년 후였습니다. 당시의 도시내 교통 수단이 보행위주였으며 화물의 운송수단은 철도와 지게였기 때문에 한반도에 민간인의 영업용 차가 들어온 1912년경에서야 도로·교량 건설 계획이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1917년 10월 7일 준공된 한강인도교는 서울 도심에서 남쪽 방면의 노량진으로 통하는 중요한 관문입니다. 교통량 증가로 1936년에 현재의 타이드 아치형식의 다리로 개축됐는데 이때 총독부 토목과 소속의 한국인 다리 기술자가 감독으로 참여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6.25때 파괴된 것을 58년 복구했으며, 82년? 2월에는 기존 인도교 옆에 같은 형태, 같은 규모의 다리가 놓여 쌍둥이 다리가 되었습니다.

 

광진교

광진교가 위치한 광나루는 예로부터 충주를 거쳐 동래로 가는 길목 이며, 원주를 거쳐 동해안으로 빠지는 요충에 위치한 도선장(渡船場) 이었습니다. 1920년대 들어서는 발동기선(發動機船)으로 화물차나 버스 같은 것도 도강해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홍수가 한번 나면 수일에 걸쳐 교통이 두절돼 그 불편함이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30년대를 전후해서는 교통량이 급증함에 따라 새로운 다리를 놓을 계획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광장동과 천호동을 잇는 광진교는 34년 8월 공사에 착공해 1936년 10월 준공되었습다. 이 다리 역시 한국전쟁 중 파괴됐는데 52년 미군에 의해 응급복구됐으며 이후 60년대 초까지는 한강 상에 어떤 다리도 건설되지 않아 30년 가까운 공백기간이 있은 셈입니다. 지금은 전면철거하고 새로이 교량을 가설하여 2003년 11월 개통하였습니다.

 

양화대교(1965년)

65년 1월 25일의 제2한강교 개통식. 이다리 가설에는 서울에서 시부전선인 문산으로의 물자수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고합니다.

한강다리가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경제개발이 시작된 60년대 들어서입니다. 65년 1월 제2한강교라 불린 양화대교가 한강 상의 세 번째 도로교량으로 등장하였습니다.

합정동과 당산동을 잇는 양화대교는 영등포·인천방면, 김포공항으로 가는 시간을 단축하는 서울의 서부관문입니다. 그러나 다리 건설 당시 에는 서울에서 서부전선인 문산으로 물자수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군사적인 목적이 더 컸다고 합니다. 이후 교통량이 증가함에 따라 1982년 8차선으로 확장공사를 완료하였습니다.

 

한남대교(1969년)

60년대 경제개발과 함께 다리건설이 본격화된 이후 건설된 한강다리 는 강남, 여의도, 강동 등 서울의 외곽지역 개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중 첫 번째가 한남대교. 제3한강교라 불린 이 다리는 한남동과 신사동을 연결합니다. 66년 1월 착공해 69년 12월 경부고속도로와 함께 개통됐는데 원래 목적은 강남개발보다는 군사적 필요성이 더 컸다고 합니다. 제3한강교는 6.25 때 겪은 한강 도강의 쓰라린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유사시 서울시민 한강 도강용으로 계획됐다고 합니다. 이후 경부고속도로, 강남대로등의 교통량증가 및 차량의 대형화에 따라 1996년 12월 기존교량의 하류측에 확장교량을 착공하여 2001년 3월 개통하였으며, 상류측의 구교에 대한 성능 개선공사(db18→db24)를 2004년 8월 완료되어 현재 12차로의 가장 넓은 교량이 되어 강남북의 교통 소통에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마포대교(1970년)

구 서울대교인 마포대교 역시 한낱 비행장에 불과했던 여의도를 정치·경제 중심지로 탈바꿈시키는 역할을 했는데 68년 2월 착공, 2년 2개월만인 70년 5월 완공되어 여의도를 경유해 영등포구와 마포구를 이어주는 주요 통로가 되었으나 건설된지 30년이 경과되고 교통량이 증가와 차량 대형화로 노 후도가 심하여 교량의 안전성 확보와 교통소통을 위해 하류측에 확장 교량을 '96년 12월 착공하여 2000년 7월 완공 개통하고, 상 류 측의 기존 구교를 철거 재설치공사를 완료 2005년 12월 개통하여 현재는 왕복 10차로가 확보되어 마포로와 여의도의 원활한 교통소통에 기여하고 있다.

 

잠실대교(1972년)

72년 7월 완공된 잠실대교. 이 다리는 의정부, 춘천 방면과 도봉구, 태릉, 면목동, 워커힐쪽 등 서울 동부 변두리 교통망을 서울 도심을 거치지 않고 곧장 경부고속도로와 경수, 경인, 김포 등 강남 간선도로로 연결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잠실지역 구획정리사업도 이 다리 개통으로 한층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1997년에는 장래의 교통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확장 및 성능개선공사(db18→db24)를 착공하여 2004년 2월 현재의 모습 으로 새롭게 탄생하였습니다.

영동대교(1973년), 천호대교(1976년), 반포(잠수)대교(1976년, 1982년)

73년 11월 완공된 영동대교가 서울 도심의 인구분산과 영동지구 개발을 위해 건설되었다면 천호대교는 강동지구 개발을 촉진시키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76년 7월 준공된 천호대교는 청계고가도로와 천호동을 이어주며 광화문에서 천호동까지를 승용차로 20분대 거리로 단축시켰습니다. 서울 도심과 천호지구와의 유일한 다리인 광진교가 노후돼 제 기능을 발휘 하지 못하게 되자 대체용으로 건설된 다리입니다. 76년 준공된 잠수교와 잠수교 2층에 82년 준공된 반포대교 역시 강남지구 개발을 촉진시켰습니다.

 

성수대교(1980년)

붕괴와 재시공이라는 아픈 상처를 지닌 성수대교. 성동구 왕십리 로터리에서 강남구 압구정동을 경유해 서울의 최남단 간선도로인 남부순환도로를 연결합니다. 79년 10월 준공됨으로써 당시 포화상태에 있던 영동대교 및 한남대교의 교통량을 분산시키고, 왕십리 일대의 서울 동부와 영동지구를 연결해 강남지역의 균형있는 발전을 촉진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 러나 94년 10월 21일 붕괴되어 부실의 대명사로 낙인찍힌 성수대교는 짓기만 하면 끝나던 다리분야에 '유지·보수·관리'의 개념을 도입하게 된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지금의 모습은 97년 8월 새로 만든 것이며, 현재는 4차로→8차로 확장 및 남북단 ic신설 공사가 '04년 8월 완료되어 교통소통에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성산대교(1980년)

성산동과 양화동을 연결하는 성산대교. 77년 4월 착공, 80년 6월 준공되었습니다. 광화문-사직터널-독립문고가-금화 터널-연세대앞-사천고가-성산대교-경인고속도로를 연결합니다. 성산대교의 개통에 따라 김포공항에서 광화문 까지가 종전의 40분대에서 20분대로 크게 단축되고 양화대교 및 신촌로의 외곽 과밀 교통량이 분산처리 되었습니다.

 

원효대교(1981년)

최초의 민자도입으로 화제를 모은 원효대교. 원효로 4가와 여의도동을 연결하는 이 다리는 시공사인 동아건설이 공사비 2백25억원을, 서울시가 보상비 20억원을 각각 부담하였습니다. 81년 10월 준공과 동시에 서울시에 기부체납돼 서울시 재산이 되었고 동아건설은 20년간 통행료를 받기로 했었습니다. 개통 후 한달간은 무료통행, 그 후는 유료통행으로 했으나 유료통행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아 동아건설이 서울시에 헌납해 다시 무료통행이 되었습니다.

 

동호대교 · 동작대교(1984년)

지하철 3호선과 공존하는 복합교량인 동호대교는 장충체육관-약수네거리-금호동-옥수동-압구정동- 도산대로에 이르는 동호로의 한 구간입니다. 84년 12월 준공으로 강북의 도심과 영동, 개포 등지의 신시가지가 바로 연결됨으로써 강남에서 강북으로의 진입이 훨씬 수월하게 되었습니다. 84년 12월 완공된 동작대교는 서울 도심과 과천시를 연결함으로써 제2정부종합청사 접근과, 지하철 4호선의 지지교로서의 역할도 하게 되었습니다.

 

올림픽대교(1990년)

사장교로 만들어진 올림픽대교. 가운데 탑의 높이는 88올림픽을 기념해 88m로 했습니다.

국내 최초의 콘크리트 상장교로써 역사적인 제24회 서울올림픽을 영구적으로 기념하기위해 1985. 10월 착공하여 1990. 6월 준공된 한강상의 16번째 교량이며, 천호대교 및 잠실대교의 과밀 교통량을 분산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다리 가운데 4 개의 콘크리트 기둥으로 된88m 높이의 주탑을 세워 24쌍의 강선으로 연결시켰으며 이 4개의 기둥은 동양철학에서 우주만물의 근원을 상징하는 년(年), 월(月), 일(日), 시(時)의 4주(住)와 춘(春), 하(夏), 추(秋), 동(冬)의 4계절 및 동(東), 서(西), 남(南), 북(北)의 4방(方)을 나타내는 것이며 24쌍의 강선은 88서울올림픽이 24회라는 뜻으로 설계되었으며 꼭대기에는 올림픽 성화를 연상한 조형물이 2001년 설치 되었습니다.

 

행주대교(1995년)

서울시 개화동과 경기도 고양시를 연결하는 행주대교.

행주대교는 서울특별시 개화동과 경기도 고양시 행주외동을 연결하는 한강 교량으로, 1978년에 건설되었으나 교량폭원이 10m에 불과해 비좁고 주변 지역에 신도시가 들어서 교통량이 늘어남에 따라 지역 교통난 해소를 위해 하류측에 신설교량을 1987년 공사를 시작하여 1992년 12월 완공할 예정이었 으나 1992년 7월 31일 구조상의 문제로 일부 구간이 무너져 내려 복구 공사를 통하여 1995년 5월 하행선 교량을 완료하였습니다. 이 사고등 90년이후 발생한 대형공공시설의 안전사고(창선대교,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등)을 계기로 정부에서는 '시설물의안전관리에관한특별법을 제정하였습니다. 상행선 교량은 1996년부터 건설을 시작하여 2000.12월 완 료 하여 현재는 왕복 6차로의 교량으로 되었으며, 구행주대교는 페쇄되어 있으며, 향후 철거예정입니다.

 

서강대교(1999년)

철새도래지인 밤섬을 통과하는 우아한 닐센아치인 서강대교

 

99년 준공된 서강대교는 한강의 수질보호와 밤섬 철새도래지의 보호를 위하여 콘크리트 상판 960m를 연속압출공법(i.l.m)으로 가설하였으며, 밤섬 북측에는 곡선미와 조형미가 뛰어나며 구조적으로 안정성이 우수한 경간 150m의 닐센아치(nielsen arch) 강상판교량을 설치하였습니다. 교량 가설은 인천만의 밀물 썰물이 한강에 전달되어 가설지점의 수위가 약 1m 정도 상승될때를 이용하여 인공위성을 위용한 측량과 첨단공법으로 교량운반과 가설을 완료하였습니다.

 

청담대교(2001년)

청담대교는 국내 최초의 복층교량으로서 하층은 지하철 7호선 뚝섬 유원 지역~청담역을 연결하는 철도교이며, 상층의 도로교는 한강남단측은 수서 ~ 분당간 도로와 접속되고, 한강북단측은 강변북로가 접속되어 기존 동부 간선도로에 연결되는 자동차전용도로인 도시고속도로상의 교량입니다.

 

가양대교(2002년)

강서구 가양동과 마포구 상암동을 연결하는 국내 최장경간의 교량이며, 화 곡i.c와 상암i.c가 연결되어 사통팔달의 전방향 진출입이 가능한 한강상의 유일한 교량으로서, 또한 서울 관문의 주요 교량으로서 야간경관조명은 한강공원의 세계 최대높이의 분수와 함께 2002년 월드컵때 서울을 찾은 내?외국인에게 아름다운 한강을 기억시켜준 최고의 파노라마식 전망을 제공하였습니다.

 

구리암사대교(2015년)

구리암사대교 전경

구리암사대교는 강동구 암사동 둔촌동길과 구리시 아천동을 연결하는 길이 1.13km, 너비 4~6차로의 교량으로 2006년 착공, 2014년에 개통되었습니다. 천호대교와 올림픽대교 등에 집중되는 교통량을 분산하고, 주변의 연결도로인 용마터널 3.5km 및 사가정길 1.6km가 확장과 함께 아차산으로 막혀있던 강동구와 중랑구가 곧바로 연결되어, 주변의 올림픽대로, 천호대교(로), 강변북로등의 교통소통에 큰 기여를 하고있습니다. 

 

<월드컵대교>(2021년)

월드컵대교는 마포구 상암동 증산로와 영등포구 양평로를 연결하는 길이 1.98km, 너비 6차로의 교량으로 성산대교의 통행량을 분산해 주변도로의 병목을 해결하고, 강남순환 고속도로(서부간선도로)와 연결돼 서울 남서부의 간선도로 노릇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교량으로 2010년 3월 착공하여 2021년 9월 개통되었으며, 노들로와 올림픽대로로 연결되는 남단 램프 일구간은 24년 상반기 준공 예정이다.

월드컵대교과거 마포나루 '황포돛대'의 향수를 모노타워와 케이블 비대칭 배치로 표현한것이 특징인 월드컵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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