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칼럼
- 다시 주목받는 성홍열과 침습성 연쇄상구균 감염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소아청소년과 안빈 교수
성홍열은 인류 역사 속에서 오래전부터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전염병입니다. 16세기 유럽에서는 “rossalia”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으며, 붉은 발진이 온몸에 퍼져 마치 전신이 불타는 듯 보였다고 묘사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이 병은 잘 알려져 있었는데, 광해군 시절 허준이 편찬한 ≪벽역신방≫에는 홍역과 함께 성홍열로 추정되는 역병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민간에서는 원숭이(성성이)의 붉은 피부를 닮았다 하여 ‘성성이병’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여기서 오늘날 사용하는 ‘성홍열’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도 전해집니다.
성홍열을 일으키는 주범은 A군 연쇄상구균(Group A Streptococcus, GAS)입니다. 이 균은 목감기, 편도염, 농가진 같은 비교적 흔한 질환을 일으킬 수 있으며, 특정 균주가 분비하는 독소에 의해 성홍열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드물게는 혈액, 근막, 폐 등 깊은 조직으로 침범해 침습성 A군 연쇄상구균 감염(invasive group A streptococcal disease, iGAS)으로 진행하여 치명적인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성홍열은 대개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발열과 인후통, 두통, 구토, 복통 같은 전신 증상으로 발현합니다. 잠복기는 1~7일 정도이며, 발열 후 1~2일이 지나면 좁쌀 크기의 발진이 손바닥과 발바닥, 입 주위를 제외한 전신에 나타납니다. 발진은 목, 겨드랑이, 몸통 등 상부에서 시작해 팔다리로 퍼지며, 손으로 눌렀을 때 일시적으로 퇴색하고, 닭살이 돋은 듯한 양상을 보입니다. 편도와 인두는 빨갛게 붓고, 혀는 처음에는 회백색 막으로 덮이고 유두가 도드라져 ‘흰 딸기 혀(white strawberry tongue)’처럼 보이다가, 발병 2~3일 후에는 막이 벗겨지면서 붉은빛을 띠는 전형적인 ‘딸기 혀(strawberry tongue)’ 모양이 됩니다. 발진은 보통 3~7일간 지속되다가 사라지며, 회복기에는 손톱 끝, 손바닥, 발바닥 주위로 피부가 벗겨지기도 합니다. 진단은 임상 소견만으로도 가능하지만, 확진을 위해서는 인두 면봉을 이용한 신속항원검사나 배양 검사가 활용됩니다.
치료는 페니실린이나 아목시실린 같은 항생제를 투약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적절히 치료하면 24시간 내 전염력이 사라지고 대부분의 증상이 빠르게 호전됩니다. 그러나 항생제를 충분히 복용하지 않거나 치료가 지연되면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중이염, 경부 림프절염, 부비동염, 기관지폐렴 같은 화농성 합병증뿐 아니라 급성 사구체신염, 류마티스열 같은 비화농성 합병증이 뒤따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중증 침습성 감염으로 진행하면 괴사성 근막염, 다발성 장기부전, 독성쇼크증후군 등으로 악화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홍열은 조기 진단과 충분한 기간의 항생제 치료가 매우 중요합니다.
성홍열은 치료가 잘 되는 병이지만 전파력이 강합니다. 감염자의 기침·재채기를 통한 호흡기 비말이나 오염된 장난감·식기를 통해 다른 아이들에게 쉽게 전파됩니다. 성홍열로 진단되면 항생제를 시작한 뒤 최소 24시간 동안은 등원이나 등교를 중단해야 합니다. 유치원, 어린이집, 학교와 같은 집단시설에서는 손 씻기, 기침 예절 지키기 등 감염병 예방수칙을 철저히 준수하고, 자주 접촉하는 환경 표면을 주기적으로 소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 성홍열 환자의 증가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었던 2020~2023년에는 연간 환자 수가 1000명 미만으로 감소했으나, 지난해에는 6642명이 발생하며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올해 5월 말까지 신고된 성홍열 환자는 전년 동기 대비 약 2.5배 증가한 것으로 집계되었으며, 해외에서도 유사한 증가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영국과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2022년 이후 성홍열과 더불어 침습성 감염이 크게 늘어 WHO가 이례적으로 유럽 전역에 경고를 발령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침습성 A형 연쇄상구균 감염에서 독성이 강한 변이주인 M1UK 균주가 국내에서도 2020년과 2023년에 각각 1건씩 확인되어 보건당국이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최근 성홍열 및 침습성 A군 연쇄상구균 감염 환자의 증가는 코로나19 유행 시기 접촉 감소로 인한 면역력 약화, 팬데믹 이후 방역 완화, 계절적 요인, 인플루엔자를 포함한 다른 호흡기 바이러스의 동시 유행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성홍열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성홍열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보건당국, 의료기관, 개인의 협력이 중요합니다. 특히 가정에서는 아이에게 발열이나 발진 같은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지체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과 충분한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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