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분야 누리집 - 서울특별시





		
		

	 
	
	

서울시, 자격증 무료 교육으로 노숙인 104명에게 새 삶 선물!!

담당부서
자활지원과
문의
2133-7498
수정일
2013-01-04

 서울시, 자격증 무료 교육으로 노숙인 104명에게 새 삶 선물!!

 - 노숙인 자격증 프로그램 신청자 198명 중 126명 자격증 취득 성공

    → 126명 중 104명이 민간기업과 공공일자리 등에 취업 성공

 - 취업과 직접 연관된 운전면허1종이 81명으로 가장 많고 대형면허,

    중장비,전기기능사도...

 - 면허 취득 노숙인은 택시기사, 택배회사, 공원관리, 주차관리원 등으로 취업 성공

 - 2013년 노숙인에 필요한 설문조사 후 자격증 취득 지원 확대 예정

 

□ 서울시는 노숙인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노숙인복지시설을 통해 자격증 취득 지원 프로그램을 지원한 결과 지난해 5월부터 현재까지 198명이 지원해 126명(63.6%)이 자격증을 취득하는 성과를 낳았다고 밝혔다.

 ○ 서울시는 실질적인 노숙인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하여 노숙인복지시설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하고 있으며 자활 의지가 있는 노숙인을 대상으로 자격증 취득 지원프로그램을 지난해 5월 초부터 시행하고 있다.

□ 자격증 취득현황을 살펴보면 취업과 직접 연관이 있는 운전면허가 가장 인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중에서 1종 보통면허를 취득한 노숙인이 81명(64.2%)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 그 뒤를 이어, 대형면허 20명(15.8%), 2종 보통면허 13명(10.3%)이 자격증을 취득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로우더 중장비와 지게차 기사 시험에 합격, 자격증을 취득 성공한 사례도 있다. 

  ○ 자격증 취득현황

구분

신청인원

취득인원

운전

기타

소계

1종

2종

대형

중장비

인원

198

126

116

81

13

20

2

10

 

□ 노숙인들은 이번 프로그램으로 취득한 자격증을 활용하여 택시기사, 택배회사, 트럭운전 등 취업에 성공하였으며, 33명은 민간기업에, 29명은 서울시 등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일자리에, 42명은 일용직에 취업해 자활․자립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 취업현황

구분

합계

취업

취업

준비중

소계

민간

일자리

일용직

공공

일자리

인원

126

104

33

42

29

22

 

    ○ 이혼 후 사업 실패까지 겹치면서 노숙생활을 시작하게 된 한○○씨(42세)는 하루하루를 무료급식과 술에 의지하며 희망 없는 삶을 살다 거리 상담을 통해 쉼터에 입소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다. 한씨는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기에는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삶을 살게 됐어요. 노숙인 이였던 제가 서울숲에 전일제 근로자로 입사한 건 2009년이었는데 2010년에는 방송통신대 정보통계학과에 입학해서 지금은 서울시 학과 대표가 됐습니다. 중장비 자격증을 취득하여 서울숲 정규직 근로자로 근무하고 싶습니다. 학교를 졸업해서 기회가 된다면 정보통계 관련 직장에 취직도 하고 싶어요.” 라고 전했다.

  ○ 서울 소재 고시원에서 일용직을 하며 생활하던 최○○씨(53세)는 서울 영농학교에서 교육을 받던 중 노숙인 자격증반에 지원해 1종 보통 면허를 취득, 현재 물류회사 운전직으로 일하고 있다. 

□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시립 게스트하우스 사회복지사 김보경씨는 4전 5기, 5전 6기로 자격증 취득을 위해 도전하는 노숙인을 볼 때면 단순한 자격증이 아닌 삶의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하는 열정이 느껴진다고 밝혔다.

□ 한편 서울시는 자활의지를 갖춘 노숙인을 위해 운전면허뿐만 아니라 ‘중장비운전’, ‘미용기능사’, ‘도배기능사’, ‘전기기사’, ‘제과제빵 기능사’ 등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고, 향후 전문직업상담사가 상담을 통해 개인의 경력, 역량 및 향후 자립계획 등을 고려하여 취득 자격증에 관하여 조언하도록 할 계획이다.

□ 김경호 서울시 복지건강실장은 “한때 사회와 단절된 노숙인이 다시 사회에 나가서 취업하는데 어려움을 덜고, 자활의욕을 북돋아 주기 위해 앞으로 지난해 자격증 신청 참여자에 대하여 설문조사 후 더욱 다양한 취업 지원 사업을 발굴하고 추진해 나가겠다.” 라고 말했다.

 

<별 첨> 자활성공 사례

과거는 깨끗이 씻어내고 향기로운 삶을 살고 싶다.

 

정릉복지관 (김OO)

 

  오늘도 하루가 저물어 간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그리다 만 것처럼 나의 시간은 언제부턴가 멈춰있는듯한데 나를 스치는 시간들은 도무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문득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순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아픔이 내 머리를 짓누른다. 긴 시간이 흘러 어느덧 40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이 아픔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부산에서 지내던 어릴 때의 시간들은 항상 나에게 짧은 미소를 짓게 하곤 한다. 하지만 그 미소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내가 중학생이 될 무렵이다. 그 당시에 아버지는 부산에서 신발도매업을 하고 계셨는데 나름대로 장사가 잘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어느 날 티비를 보면서 식사를 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일어나시더니 급하게 어디론가 나가버리셨고 그 뒷모습이 나에겐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 당시 국제그룹의 도산은 신발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겐 연쇄도산으로 이어지는 아주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그로인해 어머니와 나, 그리고 남동생은 쫓겨나듯이 살던 집에서 나와야 했다. 비만 오면 똥물이 들어오는 합판으로 된 집 아닌 집에서 우리 세 식구는 한동안 벙어리처럼 지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그 후로 어머니와 나의 오랜 아픔들과 고생이 거의 끝나갈 무렵 우리 세 식구는 어느덧 여섯 식구가 되었고 손녀딸의 재롱을 보시며 늘 챙겨주시고 행복해하시던 어머니의 미소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암환자이셨던 어머니의 병간호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혔고 그로인해 단란했던 가정도 사라져버리는 아픔까지 겪게 되었다. 어머니의 장례를 끝내고 나니 나에게 남은 것은 큰 절망감과 좌절뿐이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루고 나서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서울에서 한통의 전화가 왔다.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지만 오래전에 가족을 버리고 떠나버린 아버지였다. 암투병중이고 거의 말기라고 하면서 말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국 서울에 오고야 말았다. 장남이라는 이유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도 아니다. 지난 십수년간 우리를 아픔과 고통의 수렁에 버린 분이셨지만 잘났던 못났던 나라는 사람을 태어나게 해준 사람이라서이다. 이보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돌아가신 내 어머니란 분을 알게 해준 사람이라서이다. 지칠대로 지친 상황과 몸으로 아버지 병간호를 하게 되었고 결국 이분도 떠나시고 말았다. 모두다 떠나고 모두가 잊혀지는 순간이었다.

  한동안 여관등지를 떠돌았지만 어머니의 병간호로 생긴 갑상선이 심해졌고 몇 군데를 알아본 끝에 보현의집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노숙인이라는 단어를 이때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래, 지난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의 내가 중요한 거다.” 라고 속으로 다짐해 보았지만 흐르는 눈물은 막을 수가 없었다. 보현의집 화장실에서 난 첫날밤을 그렇게 보냈다.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난 후 나는 정릉복지관에 입소하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노숙인들의 쉼터라고 하지만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를 위해서 그리고 언젠간 함께 하고 싶은 사랑하는 내 딸을 위해서 참고 또 참았다.

  공공근로와 자활근로 등을 하면서 기본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고 꾸준한 병원치료와 갑상선도 많이 좋아졌다. 물론 이렇게까지 되는 데에는 관장님과 담당선생님들의 많은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나는 현재 복지관에서 시행하고 있는 친환경 다용도 비누를 만드는 자활사업에 참여중이다. 작년부터 참여하게 되었는데 친환경과 천연제품 등에 관심이 높아져서 혼자서 여러 군데를 알아보던 중 자격증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현실은 만만치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고 거의 1년 가까이 혼자서 독학으로 이론과 실습을 공부하던 중 얼마 전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자격증 관련 공문이 내려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접수하게 되었다. 큰 액수이지만 작은 희망을 가지고 접수했고 고맙게도 서울시의 배려로 지원을 받게 되었다. 주위 분들의 크고 작은 도움과 배려로 결국 천연비누와 화장품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고 작지만 나에게는 하나의 용기와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자활사업을 열심히 하면서 틈틈이 천연비누와 화장품에 관련된 공부를 좀 더 깊게 할 생각이고 필요한 곳이 있다면 내가 배운 지식을 그동안 받아만 왔던 것처럼 다른 필요한 분들께 재능나눔의 형태로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언젠가 내가 생각해 놓은 만큼의 실력이 되었을 때 나는 또 다른 내 모습으로 어딘가에 서 있을 것이다.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진 내가 말이다.

 

이제는 다시 일어서야 할 때

 

구세군자활주거복지센터

이OO(남,48세)

 

* 어둠의 그림자가...

세운상가 전기회사에 근무 중 새로운 사업을 찾아 개인 창업을 결심하고 전자회사를 창업했을 때 앞으로 펼쳐질 장밋빛 인생을 기대했다. 하지만 사업은 생각처럼 되지 않고 직원들 월급에 유지비 등등 차입금은 늘어만 갔다. 결국 IMF한파로 1년 6개월 만에 부도를 맞아 어려움에 직면 했고 설상가상으로 이혼까지 당하고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

* 시작에 불과 했던 악몽들...

부도 후 움직일수 없는 금융거래와 주위의 시선들 모든 것들이 돌아서 있었다. 지금 과거를 회상 해보면 술과 담배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1996년 부도 후 2006년까지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 버티다가 그것도 어려워 쉼터로 오게 되었다. 쉼터에서 건강검진을 받아보니 몸이 다 망가져 있었다. 고혈압에 당뇨까지 위험하다고 당장 약이라도 먹어야 한다고 그때처럼 참담 했던 적은 기억에 없는 것 같았다. 또 부모님들도 어렵고 건강이 좋지 않아 걱정이 되었는데 부도 후 찾아  뵙지 못했다. 쉼터생활을 하면서도 음주를 간혹 했고 여러 쉼터를 옮겨 다니게 되었다. 부끄럽게도 알콜정신병원 까지 입원했으니 더 이상 망가 질 것도 없었다.

병원에서 본인의 인생을 다시 생각하며 금주와 금연을 다짐하고 새출발하기로 마음먹고 퇴원했다.

* 더 내려 갈 곳도 없을 때 한줄기 빛이...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땀 흘리고 있을 때 기회가 찾아왔다, 파산면책으로 인하여 채무가 정리 된 것 이다. 몇십년 만에 느껴본 기쁨 이였다. 이때쯤 현장 동료의 소개로 구세군자활주거복지센터로 입소하게 되었고 열심히 일해서 하루하루 벌리는 돈은 모두저축을 했다, 부모님에게 병원비와 생활비도 보내 줄 수 있게 되었다. 당뇨와 고혈압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일감도 많이 들어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일을 처리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3월에 서울시 희망플러스 통장에 선정되어 아무리 일을 해도 피곤하지 않았다. 축하라도 해주듯이 이번에는 서울시에서 무료로 운전면허 시험을 보게 해 주어 이번에 합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고 운전면허를 바탕으로 고물상 개업을 생각 할 수 있게 되었다.

* 이젠 임대주택과 고물상 개업을 목표로 저축,,저축,,,

앞으로 매입임대주택을 취득해서 사회로 다시 출발하고 싶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노숙인 분들을 돕고 싶다. 자격증 취득지원과 신용회복지원을 해준 서울시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고 고물상을 개업하게 되면 노숙인들을 고용하여 희망을 나누어 주고 싶다.

 

 

서울영농학교 교육 중 자격증 취득으로 물류회사에서 새로운 시작

 

서울특별시립 양평쉼터 최OO(53세)

 

  서울소재 고시원에서 일용직을 나가면서 생활을 하였었는데 광고를 보고 서울시청에 방문 후 서울 서울영농학교에 지원하게 되었다.

영농학교에 입교 후 영농교육을 꾸준히 받았으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여 다른 학생들과의 마찰도 없었고 직원들과의 유대관계 또한 원활하였다.  입교 전 음주력이 강한 편이었으나 축구 및 탁구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많은 활동을 하여 음주 절제가 많이 좋아졌다.

  영농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중에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노숙인 자격증 취득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어 담당자와 상담 후 자격증반에 지원을 하였다.

운전면허 1종 보통에 지원하였고 필기시험부터 최종 도로주행까지 열심히 공부를 하였고 단 한번에 면허증을 취득하는 등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입교후 영농교육을 끝까지 수료하고 싶었으나 면허증 취득 후 그간 만나지 않았던 친구를 통해 물류회사를 소개 받아 고민 끝에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 운전직으로 취업에 성공하게 되었다.

  서울영농학교를 끝까지 수료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었으나 면허증 취득 후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만큼 서울시청과 서울영농학교 직원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졸업식에는 참석하겠다고 말하고 취업을 하였다.

  향후 꾸준히 회사 일에 정진하여 돈도 저축하고 앞날에 대한 계획도 세워보아야겠다.

 

업무에 도움이 되는 컴퓨터 수강 중

 

비전트레이닝센터 전OO(42세, OO전자 자재과 근무)

 

  아버지가 음주문제로 집안에서 갈등이 많아 고등학교 졸업 이후 혼자 생활함. 노숙을 하다가 다른 동료들에게 센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며 전단지를 보고 단주를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비전트레이닝센터에 입소하게 되었으며 1년 정도 노숙경험이 있음

  비전트레이닝센터 알코올프로그램 5개월 과정 수료 후 2012년 1월 서울시 일자리 정립전자에 취업하여 현재까지 근무유지중임. 현재 자재과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향후 도움이 되고자 컴퓨터(OA 실무기초)를 배우고자 하는 욕구를 나타내며 컴퓨터 자격증 취득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요양보호사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음

  비록 오른쪽 청력손실로 힘든 와중에도 단주를 유지하며 서울시 인문학 수업을 들으면서 직장생활을 유지하고 있음.  지속적으로 회복활동(금전관리, 외부 A.A.)을 하고 있으며 청약저축에 가입하여 매달 꾸준히 적축을 하고 있음.

 

서울숲 중장비 정규직을 꿈꾸며

 

비전트레이닝센터 한OO(42세)

 

이혼 후 사업 실패까지 겹치면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노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음. 새롭게 재기하려는 의지를 상실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하루하루를 무료급식과 술에 의지하며 방황하는 생활을 해왔음.

거리상담을 통해 입소 후 처음으로 쉼터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일자리를 얻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음. 아름다운가게에 입사하면서 심리사회적인 전반적 기능들이 회복되었으며 2009년 3월 이후 서울숲 전일제 근로자로 입사하여 현재까지 성실히 근로하고 있으며, 2010년에는 방송통신대 정보통계확과에 입학하여 2012년 현재 서울시 학과 대표로 활동 중임.

앞으로 중장비 자격증을 취득하여 서울숲 정규직 근로자로 근무형태를 전환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방송통신대 졸업 후에는 정보통계 관련 직장에 취업하여 사회생활을 영위해 나갈 계획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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