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칼럼
새로운 감염병 '질병X(DiseaseX)'의 대응 전략
팬데믹은 현재 진행형이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송대섭 교수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증유의 감염병, 질병X(DiseaseX)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나간 뒤 많은 사람들은 감염병 위기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는 오히려 다음 팬데믹의 가능성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WHO가 제시한 ‘질병X(Disease X)’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거나, 혹은 인간에게 큰 위협으로 인식되지 않았지만 미래에 대규모 유행을 일으킬 수 있는 신종 감염병을 의미한다. 질병X는 특정 병원체의 이름이 아니라, “다음 팬데믹은 언제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등장할 수 있다”는 경고의 개념이다.
실제로 인류는 이미 여러 차례 그 경고를 경험해왔다. 사스(SARS), 신종 인플루엔자, 메르스(MERS), 에볼라, 그리고 코로나19까지 대부분의 신종 감염병은 동물에서 인간으로 넘어온 인수공통감염병이었다. 인간과 동물, 그리고 환경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원헬스(One Health)’ 관점이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 세계에서 울리는 경고음: 최근의 감염병 사례 및 동향
최근 국제사회에서 주목한 사례 중 하나는 남미 지역에서 발생한 안데스 바이러스(Andes virus) 감염 사례다. 안데스 바이러스는 설치류를 통해 전파되는 한타바이러스의 일종으로 높은 치명률을 보이는 감염병이다. 최근 보고된 크루즈 여행 관련 감염 사례는 감염병이 이제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이동과 관광을 통해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보여주었다. 과거 같으면 국지적 유행에 머물렀을 감염병이 이제는 항공과 해상 교통망을 따라 단기간에 대륙을 넘나드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인플루엔자 역시 여전히 가장 현실적인 질병X 후보 가운데 하나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포유류에서 반복적으로 검출되면서 국제사회는 긴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젖소 집단에서 H5N1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감염이 확인되었고, 여우, 밍크, 바다사자 등 다양한 포유류 감염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이는 바이러스가 점차 포유류 환경에 적응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아직 사람 간 효율적인 전파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변이를 축적하며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다. 팬데믹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사건이 아니라, 인간이 미처 주목하지 못한 생태학적 변화 속에서 서서히 준비되는 과정일 수 있다. 최근 아프리카에서는 에볼라바이러스병(Ebola Virus Disease) 발생이 다시 국제사회의 경계를 높이고 있다. 2025년 초 우간다에서는 수단 에볼라바이러스(Sudan virus)에 의한 감염 사례가 발생해 보건당국이 대응에 나섰으며, 이후 한동안 상황이 안정되는 듯했지만 최근에는 콩고민주공화국(DRC)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에볼라 유행이 확산되면서 WHO가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언하였다. 특히 이번 유행은 상대적으로 드물게 보고되는 분디부교(Bundibugyo) 계통 바이러스와 관련되어 있으며, 현재 승인된 백신과 치료제가 부족한 상황이어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분쟁 지역과 취약한 의료 인프라, 인구 이동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국경을 넘어 우간다 등 인접 국가로 감염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신종 감염병 대응에서 단순한 의료기술뿐 아니라 국제 협력과 조기 감시 체계의 중요성을 다시 보여준다.
중국에서 보고된 사람의 가성광견병(Pseudorabies) 바이러스 감염 사례 역시 중요한 경고다. 가성광견병 바이러스는 주로 돼지에서 발생하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중국에서는 양돈 산업 종사자 등을 중심으로 인체 감염 사례들이 보고되었다. 일부 사례에서는 중증 뇌염과 시력 손상까지 발생하였다. 이는 동물 바이러스가 종간 장벽(species barrier)을 완전히 넘지 못하더라도 인간 감염 가능성은 언제든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대규모 축산환경과 밀접한 인간-동물 접촉은 새로운 감염병 출현 위험을 높이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질병X 시대의 대응 전략: 통합적 접근(One Health)과 인류의 책임
질병X 대응 전략은 단순히 새로운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기 감시(surveillance)와 위험 신호를 포착할 수 있는 통합적 대응 체계다. 인간 의료 분야뿐 아니라 수의학, 야생동물 감시, 환경 모니터링, 기후 변화 데이터까지 함께 연결하는 원헬스 기반의 접근이 필수적이다. 또한 감염병 대응은 정부와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다. 무분별한 야생동물 거래, 생태계 파괴, 과도한 개발과 기후 변화는 모두 새로운 병원체의 출현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들이다.
과학 저술가 데이비드 콰먼(David Quammen)은 그의 저서 『스필오버(Spillover)』에서 팬데믹은 인간이 자연과 맺어온 관계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인간이 숲을 파괴하고, 야생동물과의 경계를 허물고, 지구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감염병의 탄생 배경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질병X 대응은 특정 국가나 전문가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의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 동시에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말은 개인의 책임 또한 함께 묻는다. 감염병은 구조적 문제이지만, 그 확산은 개인의 행동을 통해 완성된다. 기본적인 방역 수칙의 준수, 백신에 대한 신뢰, 과학적 정보에 기반한 판단이 무너지면 어떤 제도와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특히 정보의 왜곡과 불신은 바이러스만큼이나 빠르게 확산되며 대응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팬데믹 시대에는 병원체와의 싸움뿐 아니라 허위 정보와 사회적 불신에 대한 대응 역시 공중보건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결론
다음 팬데믹은 “언젠가” 오는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준비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질병X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공포가 아니라 경계이며, 단편적 대응이 아니라 인간·동물·환경을 함께 바라보는 통합적 시각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우리 사회 전체가 감염병을 단순한 의료 문제가 아니라 생태와 공존의 문제로 이해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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