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분야 누리집 - 서울특별시





		
		

	 
	
	

지난 3월 개관한 경교장 한달 간 관람객 약 9천명 방문

담당부서
문화관광디자인본부 역사문화재과
문의
2133-2640
수정일
2013.04.02
 
- 서울시, 3년여 걸친 원형 복원 마치고 지난 3월 부터 전면 무료 개방 중
- 김구 서거 당시 총탄자국, 속옷 밀서, 혈의..아픈 역사까지 고스란히 전달
- 총면적 945㎡,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매주 화~일 9시~18시 개관, 월 휴무
- 지상 1층 국무위원회 개최됐던 응접실, 선전부 사무실 등 공식적인 공간
- 계단 따라 2층 올라가면 김구 집무실, 침실, 서거한 공간, 숙소 등 자리
- 보일러실·부엌으로 쓰였던 지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사' 총망라 전시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자 백범 김구가 약 4년여 간(1945.11.23~1949.6.23) 거주하며 통일운동을 하다 서거한 역사적 현장인 경교장(京橋莊)이 복원 후 시민 개방된 지 한 달이 지났다.

 

□ 서울시는 사적 465호인 경교장을 3년여 간에 걸쳐 원형 복원해 지난 3월 2일(토)부터 국민들에게 무료 개방 중이며 3월 한 달간 경교장을 방문한 관람객 수는 약 9천명에 달했다.

 

○ 경교장은 1945년 11월 중국에서 환국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청사로 사용하던 곳으로, 김구 서거이후 미군주둔지, 주한 대만대사관저 등으로 사용되다 1967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이 매입해 병원 건물로 사용해왔으며 이후 역사적인 유적인 경교장을 복원해야 한다는 여론과 시민사회의 문화재 지정운동이 본격화 되면서 서울시와 삼성병원이 오랜 협의를 거쳐 소유는 그대로 두고 전체 공간만 복원하는데 합의, 경교장 내 모든 병원시설을 이전 완료('10. 6. 30)하고,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복원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복원 설계 및 문화재청 현상변경 허가('10. 10. 13)를 완료했다.

 

 

■ 경교장 - 사적 465호(2005년)

○ 소 재 지 : 종로구 평동 108-1 강북삼성병원 내

○ 규 모: 〔토지〕 396㎡, 〔건물〕 1동(지하1층․지상 2층 / 총면적 945㎡)

○ 건립연대 : 1938년

소 유 자 : 삼성생명(강북삼성병원)

※ 1968~2010년까지 고려병원(강북삼성병원)으로 사용되다

2010.6.30 강북삼성병원에서 경교장 내 병원시설 이전 후 시에서 관리 중

 

 

□ 현재 개방 중인 경교장은 총면적 945㎡로 건물 1동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다.

 

<지상 1층 국무위원회 개최됐던 응접실, 선전부 사무실 등 공식적인 공간>

 

□ 경교장 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연결되는 지상 1층에선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공간을 엿볼 수 있다. 1층은 각 실 천정부가 건축 당시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보존처리를 거쳐 그대로 되살렸다.

 

□ ▴국무위원회 등 임시정부의 회의가 개최됐던 '응접실' ▴임시정부의 대외 홍보관계 등을 담당했던 '선전부 사무실' ▴공식적인 만찬이 개최됐던 '귀빈식당'으로 구성됐다.

 

□ 입구에서 왼편에 자리한 응접실은 환국 후 임시정부의 첫 번째 국무위원회가 개최되었던 곳으로 당시의 회의 장면을 사진을 통해 전시했다. 또, 천정에서 발견된 2층 벽난로 흔적도 그대로 볼 수 있다.

 

○ '국무위원회'는 임시정부의 정책을 결정하고 심의하는 기구인데 일반적으로 '국무회의'라고 많이 알려져 있다. '국무위원회'라는 용어는 당시 헌법상의 공식용로 이번 전시에서는 임시정부의 회의체 명칭을 '국무위원회'라고 표기했다.

 

 

▶ 1944년 4월 22일 개정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법인 <대한민국임시헌장> 제29조

"임시 정부는 국무위원회 주석과 국무위원으로 조직한 국무위원회로써 국무를 총판함"

 

 

□ 오른편엔 임시정부의 대외적인 홍보를 담당하던 선전부(부장: 엄항섭)가 주로 활동하던 선전부 사무실이 자리한다. 여기엔 김구와 엄항섭(선전부장), 선우진(비서) 등 경교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전시했다.

 

○ 이곳은 임시정부 청사가 들어서기 전인 1938년 건립 당시 당구실로 조성, 1945년 임시정부 환국 직후에도 ‘당구실’로 불렸으나 기능은 선전부 활동이 주로 이뤄졌기 때문에 선전부 사무실로 이름했다.

 

□ 오른쪽 안쪽에 자리한 귀빈식당에선 1945년 12월 2일 김구 주석과 광복을 맞아 고국에 돌아온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드디어 한자리에 모여 따뜻한 저녁식사를 했던 장면을 요인들의 음성으로 재현, 역사 속 한 장면을 오늘의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복원된 경교장 내부
복원된 홀복원된 홀
복원된 선전부 사무실복원된 선전부 사무실
복원된 응접실복원된 응접실
복원된 귀빈식당복원된 귀빈식당

 

 

□ 한편, 1층 중앙부에서는 콘크리트에 묻혀 있던 대리석 계단의 흔적이 발견돼 원형부분은 잘 보존하고 훼손된 부분은 당시의 모습대로 복원했다.

 

○ 1층의 나머지 공간들은 완전히 변형돼 벽체, 바닥 등을 모두 철거하고, 건축 당시의 설계 도면과 임시정부 사용 당시의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평면을 원형대로 되살렸다.

 

<계단 따라 2층 올라가면 김구 집무실, 침실, 서거한 공간, 숙소 등 자리>

 

□ 1층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김구 주석의 집무실과 ▴침실 ▴서거한 공간 ▴임정요인들의 숙소 ▴욕실 ▴서재를 볼 수 있다.

 

□ 계단 오른쪽에 자리한 김구 주석의 집무실은 일식다다미 방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사진에 근거해 당시의 내부 모습대로 재현한 것이다. 바로 옆에 침실이 자리한다.

 

○ 2층의 김구 주석 집무실과 임시정부 요인 숙소가 일식다다미 방으로 되어 있는데, 일본식 다다미방의 색채 등은 향후 전문가 검토를 거쳐 보완할 예정이다.

 

□ 김구가 서거한 2층 집무실 복도에는 창문에 서거 당시 총탄 자국을 재현해 당시의 아픔이 전해진다.

 

□ 집무실 옆에 있는 임정요인 숙소에는 디지털 액자를 설치해 1945년 광복부터 우리 현대사를 되짚어볼 수 있도록 했다. 이 공간은 향후 임시정부 및 독립운동 관련한 특별 강연회장이나 기획 전시 공간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비워 놓은 상태다.

 

□ 욕실은 건축당시의 벽체, 창문, 타일, 천정의 목조 트러스 등이 모두 잘 남아 있어 복원된 다른 시설과 대비해 경교장의 건축 원형을 살펴볼 수 있는 원형 전시실로 조성했다.

 

총탄자국총탄자국
2층 집무실2층 집무실
2층 서재 2층 서재

 

□ 2층에도 김구가 주요 인사들과 면담을 하고, 국무위원회를 주관했던 서재(응접실)가 있는데, 천정, 바닥, 벽난로, 나무 마감재 등이 임시 정부 당시의 원형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어, 병원 시절의 접착제 흔적 등만 처리하고 그대로 원형을 보존했다. 응접실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은 모두 원형이 훼손돼 복원설계에 따라 복원했다.

 

<보일러실·부엌으로 쓰였던 지하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사' 총망라 전시>

 

□ 지하공간은 원래 보일러실과 부엌 등으로 쓰였으나, 사진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재현이 어려워 총 3개의 전시실로 나눠 ‘경교장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전시공간으로 조성했다.

 

□ 특히 경교장의 건물 및 복원의 역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경교장에서 수차례의 국무위원회를 개최하고 신탁통치반대운동과 남북통일운동을 위해 노력했던 활동을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환국한 백범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들의 모습을 패널과 유물, 영상 등을 통해 전시하고 있다.

 

□ 지하 제1전시실에선 ‘경교장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경교장이 일제강점기 광산업으로 큰 부를 축적한 최창학에 의해 건립되고, 194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환국하자, 이들을 환영하기 위해 조직된 임시정부 환국봉영회에서 최창학의 저택을 임시정부에 제공한 사실 등 경교장 건축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 또한 1960년 4․19혁명을 계기로 김구 암살규명운동이 시작되고, 역사적 현장으로서 경교장을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시민사회의 복원운동과 제도권 내에서의 문화재 지정과정이 함께 설명되고 있다.

 

□ 지하 제2전시실에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을 당시의 신문기사, 관련 자료 등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한다.

 

□ 전시유물 중 특히, 속옷에 빼곡히 쓰여진 밀서가 눈에 띈다. 이 속옷밀서는 1948년 2월 3일 북한 내 민족진영 비밀조직원들이 김구, 이승만 두 정치지도자에게 소련의 지원 아래「민주조선인민공화국」을 수립하려는 북한 내 동향을 보고하고, 두 민족지도자가 협력해 남북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탄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것은 김구와 김규식 등에 의한 남북협상의 시작을 상징적으로 증언해주는 유물이다.

 

□ 이 속옷밀서는 당초 김구가 경교장 문갑에 보관하다가 사후 유실된 유물들 가운데 하나로, 국립중앙박물관이 1970년대에 고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매입, 소장하게 된 유물로 알려져 있다.

 

임시정부 국내 환국을 보도한 서울신문 호외 (1945.11.23) - 복제임시정부 국내 환국을 보도한 서울신문 호외 (1945.11.23) - 복제
속옷에 쓰여진 밀서(1948. 2.3) 복제속옷에 쓰여진 밀서(1948. 2.3) 복제

 

□ 이 외에도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 상해에서 수립돼 27년 동안 민족의 대표 기구로서 독립운동을 총괄 지휘하고, 1945년 11월과 12월 환국해 경교장을 중심으로 완전한 자주독립을 위해 신탁통치에 반대하고, 남과 북이 하나되는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했던 모습이 전시되어 있다.

 

□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48년 8월 15일 수립을 선포한 대한민국 정부로 그 법통이 계승되었다는 사실을 밝혀 놓았다.

 

□ 지하 제3전시실은 ‘백범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들’을 주제로 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유품과 경교장에 돌아온 임시정부 요인들에 대한 정보검색 코너가 소개되어 있다.

 

□ 이 전시실에서 가장 주목해서 보아야 할 유물은 김구가 경교장 2층 거실(집무실) 복도 책상에서 대한민국 육군 소위이자 주한미군 방첩대(CIC) 요원이었던 안두희에 의해 암살당했을 때 입었던 혈의(血衣)이다. 이 혈의에는 목과 가슴부위에 김구 주석의 혈흔이 남아 있어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 또한 1947년 발행된《백범일지》초간본과 김구의 서명이 들어있는 서명본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백범일지 초간본과 서명본(1947) - 원본백범일지 초간본과 서명본(1947) - 원본
김구 혈의(등록문화재 제439호) - 복제김구 혈의(등록문화재 제439호) - 복제
데드마스크 - 복제 데드마스크 - 복제

 

□ 지하 전시실의 유물은 총 31점으로 이 중 13건이 원본이고, 18건이 복제 유물이다.

 

○ 경교장은 건물 자체가 문화재인 관계로 유물의 체계적 보존을 위한 항온항습 시설 등을 설치하고자 하는 경우 문화재 건물의 원형훼손 정도가 커질 수 있는 상황이어서 훼손 가능성이 비교적 적은 전단지 등을 중심으로 유물 원본을 전시하고, 나머지는 국립중앙박물관과 백범김구기념관 등 소장기관의 협조를 받아 복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 또, 경교장의 전시 패널내용은 임시정부와 김구, 경교장 관련 시민단체(경교장복원범민족추진위원회, 백범김구기념사업협회, 임시정부기념사업회 : 가나다순)에 공개해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고, 수용할 수 있는 객관적 부분은 최대한 수용해 반영했다.

 

□ 한편, 서울시는 경교장 시민 개방을 시작으로, 문화재청, 종로구 등 관할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복원이 완료되거나 진행 중인 명륜동 장면 총리 가옥, 신당동 박정희 대통령 가옥, 서교동 최규하 대통령 가옥을 금년 중 개방하고, 이화장, 안국동 윤보선 대통령가옥도 복원이 완료되는 2016년 이후 유족과 협의해 개방해 나갈 계획이며 방문객 접근 편의를 위해 서울 메트로 및 서울도시철도공사와 지하철 안내도 등에 출구 표시 등도 협의 중이다.

 

□ 경교장은 매주 화요일~일요일 오전 9시~18시까지 무료로 개방하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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