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성백제박물관(유병하 관장)이 한·중 수교 30주년(2022)과 한·중 문화교류의 해(2021∼2022)를 맞아 국립부여박물관과 함께 개막한 국제교류전시 도록을 발행했다.
○ 서울시 한성백제박물관과 부여군 국립부여박물관의 학예 인력이 함께 집필하였으며, 다소 생소하고 어려울 수 있는 북위 역사와 전시의 궁금증을 풀어 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이번 도록은 크게 4부로 나뉘어 구성되었으며, 그 외에도 국내외 전문가의 논고 4편과 다양한 칼럼이 실렸다. 1부 제목은 ‘선비 탁발부: 발원에서 북위 건국까지’이다. 선비 탁발부가 중원으로 남하하는 역사를 다루고 있다.
○ 멀리 동북부 네이멍구 다싱안링산맥 가셴동에서 시작하여 넓은 초원이 있는 후룬베이얼평원 대택으로 1차 이주를 진행하여 수렵과 채집의 생활방식에서 목축위주의 경제로 전환하였다.
○ 2차로 남하를 진행하여 내몽고 중남부지역 성락盛樂에 자리잡고 유목과 농업을 병행하였다.
○ 386년 북위를 건국한 도무제道武帝(재위 386~409)는 수도를 평성으로 이전하는 3차 이주를 진행하였다.
□ 2부는 ‘북위: 제국의 시대’이다. 평성에서 자리를 잡은 북위는 강력한 군대를 활용하여 차례로 주변의 나라들을 통합하였다. 439년, 5호 16국시대를 종식시키고 북방을 통일함으로써 남북조시대의 막이 열리게 된다.
○ 효문제孝文帝(재위 471~499)는 강력한 한화漢化 정책과 더불어 수도를 낙양으로 옮겼으며, 다양한 정책을 실시하였다.
○ 효문제가 사망한 후에 북위는 점차 힘을 잃어갔으며, 마지막에 동위東魏(534~550)와 서위西魏(535~556)로 분열되면서 북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 3부 제목은 ‘공존과 융합의 다문화 사회 : 이민족의 풍속과 한족의 정취’이다. 효문제가 낙양으로 천도한 후 한화정책을 통해 선비의 풍속과 언어 등을 폐지하였지만, 선비는 여전히 자신의 고유한 생활방식과 풍속을 유지하였다.
○ 중원으로 남하하는 과정에서 유목·농경문화들이 섞이고,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북위 사회와 문화를 풍부하게 했다.
○ 여기에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의 문화까지 연결하자 북위의 수도 평성과 낙양에는 여러 문화가 공존하고 융합하는 다문화 사회가 꽃피는 국제 대도시가 되었다.
□ 4부는 ‘불교의 융성’이다. 황제들은 다양한 민족과 넓은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불교를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하였으며, 북위의 불교는 국가불교적 성격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였다.
○ 도성 안팎으로 수많은 불교 사원들이 세워졌다.
○ ‘둔황석굴敦煌石窟’ ‘윈강석굴雲岡石窟’ ‘룽먼석굴龍門石窟’석굴 사원은 당시 북위의 불교가 얼마나 대단한 규모였을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 북위北魏(386~535)를 세운 선비 탁발부鮮卑 拓跋部는 5호 16국 시대의 혼란했던 북방을 통일하고, 중국 남방과 중앙아시아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유목遊牧문화와 한漢문화를 공존시켰다. 이번 도록을 통해 수隋나라·당唐나라 통일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북위와 백제의 관계를 새로운 자료와 시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 올해 2월 27일(일)까지 진행되는 특별전 기간에 맞춰 도록이 출판되었으며, 도록은 서울과 부여의 상징성을 담아 2가지 형태의 표지로 제작되었다. 판매 가격은 20,000원이다(문의 02-2152-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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