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분야 누리집 - 서울특별시





		
		

	 
	
	

조선 태조의 서녀 의령옹주와 부마 호안공 이등의 묘역 서울시 문화재로

담당부서
문화관광디자인본부 역사문화재과
문의
2133-2639
수정일
2013-04-25
 
조선 태조의 서녀 의령옹주와 부마 호안공 이등의 묘역이 서울시 문화재로 신규 지정‧보존된다

※ 서녀 : 후궁 소생의 딸을 일컬음

 

□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서녀 의령옹주와 그녀의 남편 호안공 이등의 묘역은 도봉산 무수골(도봉구 도봉동 산85번지)의 아담한 구릉 상에 자리하고 있으며, 조성 당시에 설치한 묘비, 문인석 등의 석물과 함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될 전망이다.

 

□ 태조는 정비 2명(신의왕후 한씨, 신덕왕후 강씨), 4명의 후궁(성비 원씨, 정경궁주 유씨, 화의옹주 김씨,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후궁)과의 사이에 적자 8명, 적녀 3명, 서녀 2명을 두었다. 2명의 서녀 중 한 명인 의령옹주는 이름이 전하여지지 않는 후궁 소생으로서 안타깝게도 그녀에 대한 기록은 사료 상으로 거의 확인되지 않고 있어 언제 태어나고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알 수 없었으나, 묘역에서 확인된 묘비에 “성화2년(1466) 2월 초1일 예장”이라는 문구가 확인되고 있어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에 대한 추정이 가능하게 되었다.

※성화(成化): 명나라 헌종(憲宗)의 연호, 성화 2년은 1466년 (세조 12년)

 

 

■ 정종실록 5권 - 1400년(정종 2) 7월 2일 中

(전략).........사알(司謁) 이덕시(李德時)의 아들 이등(李登)이 장군이 되었는데, 방주(房主) 박동미(朴東美)와 장무(掌務) 김성미(金成美)가 이등의 계보(係譜)가 내료(內僚)에서 나왔다고 하여 회좌례(會坐禮)를 행하지 아니하였다. 이등의 아내는 태상왕의 총희(寵姬)의 딸이었다. 태상왕이 듣고 노하니, 임금이 헌사(憲司)로 하여금 박동미 등을 탄핵하여 드디어 그 방(房)을 혁파하였다.

■ 연려실기술 태조조 고사본말

(전략).........1녀 의령옹주(宜寧翁主) 계천위(啓川尉) 이등(李䔲)의 아내이다. 4남 3녀를 두었다. 이등의 시호는 호안공(胡安公)이고, 본관은 개성(開城)이며,.......(후략)

 

 

□그의 남편인 호안공(胡安公) 이등(李登)은 “1379(우왕 5)년에 태어나1457(세조 3)년에 세상을 떠났다. 본관은 개성, 이덕시(李德時)의 아들이며 태조의 庶장녀 의령옹주를 맞이하여, 1435년(세종 17)에 계천군으로, 1444년(세종 26)에 봉헌대부(奉憲大夫)에 봉하여졌다. 1457년(세조 3)에 79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호안(胡安)이다.” 라는 등의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되고 있다.

 

 

■ 세조실록 8권 - 1457년(세조 3) 7월 1일

계천위(啓川尉) 이등(李登)이 졸(卒)하였다. 이등은 태조(太祖)의 딸 의령 옹주(義寧翁主)에게 장가들었으나, 성질이 부지런하고 삼가서 게을리 하지 않았다. 비록 몹시 추울 때나 몹시 더울 때라도 한 번도 임금을 조알(朝謁)하는 예(禮)를 폐한 적이 없었고, 만년(晩年)에는 더욱 부지런히 하였는데, 사람들이 어쩌다가 이를 만류하면, 말하기를,

“내가 재주 없는 몸으로서 모람되게 척리(戚里)인 인연으로 인하여 이 자리에 이를 수가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나라의 늠록(廩祿)만을 허비하고 조그마한 보탬도 있지 않았으니, 어찌 조알(朝謁)하는 예를 꺼리겠느냐?”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졸(卒)하니, 나이가 79세였다. 관가에서 장사(葬事)를 치러주고 ‘호안(胡安)’이라 시호(諡號)하니, 나이가 많고 오래 산 것을 ‘호(胡)’라 하고 화목을 좋아하고 다투지 않은 것을 ‘안(安)’이라 한다. 아들이 4인이 있는데, 둘째 아들 이선(李渲)은 임자년(1432) 과거에 급제하여 지위가 추밀(樞密)에까지 이르렀다.

 

 

□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에서는 태조의 부마 및 옹주의 묘로서 조성 당시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 조선 전기의 무덤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석물의 품격이 높아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하여 시 기념물로 지정 가치가 있다고 의결(2013.1.11)하였다.

※ 기념물 : 서울시 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기념물․민속자료․무형문화재) 중 한 종류로 역사 유적지․고고 유적․전통적 경승지(경치나 경관이 뛰어난 곳)․식물 중에서 학술적․역사적․예술적 가치가 큰 것을 지정함

 

□ 이에 서울시는 <호안공 이등과 의령옹주의 묘역>에 대한 문화재 지정계획을 2013년 4월 25일부터 5월 25일까지 약 30일 동안 공고하여 각계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 최종심의를 거쳐 2012년 6월 말까지는 서울시 기념물로 최종 지정고시할 예정이다.

 

□ 한편 <호안공 이등과 의령옹주 묘역>이 위치한 무수골에는 이미 시 문화재로 지정된 전주이씨 영해군파 묘역(시 유형문화재 제106호)이 자리하고 있고, 가까이 북한산 둘레길 20구간 왕실묘역길이 위치하고 있어 조선시대 왕족의 묘역을 두루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 서울시에서는 앞으로도 우리의 문화재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지정 추진을 통해 보다 철저히 보존․관리하여 전 시민들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후세에 길이 남길 것이다.

 

이 지정계획과 관련하여 의견이 있는 경우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 2133-2639)로 제출하면 된다.

 

<서울시 문화재 지정절차>

 

문화재

지정 신청

(개인․자치구

⇒ 서울시)

문화재위원

조사

(서울시)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1차 심의

(서울시)

문화재 지정계획 공고 및 의견 수렴

(현 진행단계)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2차 심의

(서울시)

지정 고시

(서울시)

 

※ 문화재 지정 효력은 지정 고시로 발생함

 

 

 

<호안공 이등과 의령옹주 묘역> 위치도 및 현황사진

 

호안공 이등과 의령옹주 묘역 위치도호안공 이등과 의령옹주 묘역 위치도
호안공 이등과 의령옹주 묘역 전경호안공 이등과 의령옹주 묘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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