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분야 누리집 - 서울특별시





		
		

	 
	
	

결혼 이주 여성들이 함께 꾸리는 마을 기업 <마을무지개>

2016.06.15
지역공동체담당관
전화
02-2133-6343

결혼 이주 여성들이 함께 꾸리는 마을 기업

마을무지개

 

 

19번 마을무지개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위치한 은평구립도서관 다문화자료실이 왁자지껄하다. 열 명 남짓한 초등학생들이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는 양 약간은 들뜬 모습으로 모여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날은 인도네시아로 ‘떠나는’ 날이다. 인도네시아 전통 의상을 입은 선생님 한 명과 보조 선생님 한 명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아이들을 안내하려는 듯 서 있다. 아이들에게 인도네시아 어로 인사말이 소개된다.

 

“오전 7시에서 11시까지는 ‘살라맛 빠기Salamat pagi’라고 인사하고,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살라맛 시앙Salamat siang’, 3시부터 7시까지는 ‘살라맛 소레Salamat sore’, 그리고 해가 진 뒤로는 ‘살라맛 말람Salamat malam’이라고 인사를 해요.”

 

시간대별로 다른 인도네시아 인사말에 아이들은 신기할 따름이다. ‘안녕하세요’라는 간단한 인사 하나가 아니라 시간대별로 달리한다는 것이 꼭 영어 같다고 한 마디 던지는 아이도 있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소개도 빠지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전역에 1만 7천여 개의 섬이 있고, 수도는 자카르타로 ‘자바’라는 섬에 있단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고 인도네시아에만 있는 코모도 도마뱀, 수마트라 호랑이, 안경원숭이 등 동물 이름이 소개될 때마다 아이들은 탄성을 지른다. 인도네시아 전통 의상은 더욱 아이들의 관심을 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옷을 눈앞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특히 인도네시아 남자들이 입는다는 치마를 보고는 한 아이가 궁금함을 못 참고 묻는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왜 남자들이 치마를 입어요?”

 

“인도네시아에서는 옛날부터 남자들이 치마를 입었어요. 그것이 한국과는 다른 인도네시아만의 문화랍니다.”

 

남자가 치마 입은 모습을 생전처음 보는 아이에게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직접 인도네시아 전통 의상을 입어본다. 작은 꼬까옷 같은 인도네시아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는다. 한 아이가 외친다. “우와, 꼭 인도네시아에 온 것 같아요.”

 

그것으로 인도네시아 여행은 끝이 아니다. 쌀 포대 같은 것에 몸을 절반쯤 넣고 콩콩 뛰어서 반환점을 돌아 누가 일찍 시작점에 들어오는지 경주하는 인도네시아 전통 놀이 ‘발랍까룽’도 배워서 단체 경주를 해본다. 이 인도네시아 전통놀이는 농사를 짓던 부족민들이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즐겼던 놀이라는 설명이 따른다. 흥겨운 놀이를 마친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직접 만든 인도네시아의 반찬과 과일도 먹는다. 처음 보는 먹을거리 앞에서 아이들이 주뼛대기도 하지만 이내 입에 넣어보고는 오물오물 맛있게 먹는다. 인도네시아의 노래와 그림, 전래 동화 등을 만나면서 아이들의 인도네시아 여행은 끝을 맺는다.

 

은평구에서는 이렇게 먼 길 떠나지 않고도 아시아 여행을 할 수 있다. 앞서 아이들에게 인도네시아를 접하도록 해준 것은 ‘함께 가는 아시아 여행’이라는 이름의 교육 프로그램이다. 인도네시아 외에도 베트남, 일본, 캄보디아, 중국 등의 요리, 언어, 놀이, 노래와 춤, 의상 등 각 나라의 풍습과 문화를 접할 수 있다.

 

이 여행은 마을기업 ‘마을무지개’를 통해서 가능하다. 은평구에 거주하는 결혼 이주 여성들이 각자 자기 나라의 풍물과 문화를 주민들과 아이들에게 소개하고 나눈다. 덕분에 돈 들여 먼 길 떠나지 않고도 내가 사는 곳에서 아시아를 만날 수 있다.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한국에 와서 주눅 들고 살던 이주 여성들에게도 이 프로그램은 내가 사는 곳에서 자신이 할 일이 생겼다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맛보게 하는 좋은 기회였다.

 

 

결혼 이주 여성들의 마음을 엿보다

 

그 시작을 만나기 위해 2006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아들을 고등학교에 보낸 40대의 평범한 주부 전명순 씨는 소일거리삼아 주민센터에 결혼 이주 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로 등록했다. 사심도 조금은 있었다. 중국어를 하는 이주 여성을 만나 중국어를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다분히 계산적인 의도”로 결혼 이주 여성들을 처음 만났다.

 

그는 이전까지 남편이 가져다주는 월급으로 집안을 꾸리는 보통의 주부였다. 논술 강사를 해봤고 지역 봉사 경험도 있기는 했으나 자신이 직접 어떤 일을 시도해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해 3월, 열 명 남짓한 결혼 이주 여성들로 한국어 교실이 꾸려졌고, 봄 햇살 따스한 5월의 어느 날 야외 수업을 떠났다. 좁은 교실을 떠나 야외 수업을 빙자한 소풍에 나선 것이다. 전명순 씨는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마을무지개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 날이기 때문이다.

 

“소풍이 끝날 무렵, 한국에 와서 가장 기쁘거나 슬펐던 일 하나씩 이야기해 보자고 했어요. 한 명씩 돌아가며 이야기를 하고 중국에서 온 여성의 차례가 됐어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임산부였는데, 한국인 남편이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던 게 가장 슬펐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의 말은 못 알아들었는데, 느낌으로 그걸 알아챘다고 하더라고요. 충격이었어요. 이런 아픔이 있는 이분들을 보듬을 수 있었으면, 내가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었으면 싶더라고요.”

 

전명순 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찾았다. 수강생들의 정서와 마음을 나누기 위해 집으로 초대해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수강생들도 자기 집으로 그를 초대했다. 마음으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일자리나 경제 활동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전명순 씨의 고민은 점점 더 깊어졌다. 한국어 교실 외에 이들의 정서와 욕구를 보듬을 수 있는 다른 것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7년 은평구 대조동 주민센터 내 작은 도서관인 ‘어린이꿈나무도서관’ 측과 머리를 맞댔다. 예산 규모는 크지 않으나 결혼 이주 여성들의 정서 문화 지원을 위한 동아리 활동을 해보기로 하고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전명순 씨는 다문화사업팀장을 맡아 음식, 바느질, 노래, 책읽기 등 총 15회에 걸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결혼 이주 여성들과 한글 교실을 넘어선 첫 만남이었다. 다문화 관련 프로그램이나 사업은 이주 여성들이 절반만 출석해도 성공이라는 세간의 말이 무색하게 그들은 90퍼센트 이상의 높은 출석률을 보였다. 전명순 씨와 이주 여성들은 더욱더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주 여성들이 종종 그에게 속내를 드러내며 부탁을 하기도 했다. “부업할 것 있으면 알려주세요.”

 

 

그러던 중 마을기업으로서 마을무지개가 탄생하게 되는 또 하나의 계기가 찾아왔다. 이주 여성들의 정서적 아픔을 깨닫게 해준 중국 여성과 ‘만만디’라는 중국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다. 한국에서 ‘게으르다’ ‘느릿느릿하다’ 등의 부정적인 의미로 통용되는 이 말이 실제로 중국에서는 다른 의미로 쓰인다고 했다. 넓디넓은 중국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매사에 천천히, 신중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전명순 씨는 이런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런 것을 다른 사람들도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큼 아이디어를 내 ‘중국을 배워요’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중국 요리와 중국어, 중국 노래 등 중국 문화를 배우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중국 여성을 ‘선생님’ 자리에 서게 했다. 수강 인원은 금세 찼다. 한 명당 1만 원씩 열 명으로 한 반을 채워 수강료로 10만 원을 받았고, 재료비 등을 제외한 나머지 8만 원을 중국 여성에게 건넸다.

 

그 여성은 “한국에 와서 처음 벌어본 돈”이라며 감격에 겨워했다. 전명순 씨도 덩달아 기뻤다. 이런 프로그램이 결혼 이주 여성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프로그램을 잘 만들면 무언가 더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중국 여성이 전명순 씨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시장에서 파를 한 단 사려고 한국말을 어렵게 연습해서 갔는데, 막상 말을 하니까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거예요. 그 후에 시장에 가서 말을 못하겠어요. 그때 일이 생각나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볼까봐…… 그렇게 자신 없었는데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생기니까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요. 자부심이 생겨요.”

 

전명순 씨는 주민자치위원회에 이런 프로그램을 상설로 진행하는 것을 마을 의제로 제안하면서 이주 여성들을 위한 모임도 만들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그렇게 해서 베트남, 몽골, 대만, 일본, 필리핀, 캄보디아 등 아시아 각국 여성들이 주민자치회관에서 자국의 문화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그들이 스스로 커리큘럼을 짜고 주도적으로 내용을 채우면서 이른바 ‘배워요’ 시리즈가 줄을 잇기 시작하자 아예 이를 하나로 묶어 ‘함께 가는 아시아 여행’ 프로그램을 탄생시켰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마을 아이들도 집중해서 즐겁게 듣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한계도 있었다. 수강료가 싸다 보니 결혼 이주 여성들에게 제대로 된 수입이 되긴 어려웠다. 서울시 교육청이나 은평구청 등에서 진행하는 500만 원에서 1천만 원짜리 공모 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아 진행해 보기도 했지만, 이주 여성들에게 충분한 강사료를 지급할 정도는 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프로그램에서 이탈하는 이주 여성도 생겼다. 전명순 씨의 고민이 다시 깊어졌다.

 

“그런 와중에도 조금씩 강의의 틀이 갖춰지고 나름 진화를 해갔어요. 처음에는 종이쪼가리를 오려 붙여서 수업을 진행하는 수준이었는데, 나중에는 자기 나라 특산품을 직접 사와서 진행하는 거예요. 재미도 생기고, 자기 문화를 알리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생기기 시작한 거죠. 그런데 문제는 결혼 이주 여성들에게 돈을 더 많이 주겠다는 일자리 제안 같은 것이 오면 나간다는 거예요. 상황이나 처지가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왜 실망이 안 되었겠어요?”

 

 

마을기업 마을무지개를 띄우다

 

2011년, 마침 마을기업을 선정하는 공모 사업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다문화 여성과 함께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꿈꾼다’는 콘셉트로 마을기업 공모에 신청했고, 은평구의 마을 도서관 중 하나인 ‘마을N도서관’의 사업단 형태로 마을기업에 선정되었다. 한 번도 회사라는 걸 해볼 생각도 못했고 회사를 어떻게 설립하는지도 몰랐던 전명순 씨가 마을기업 마을무지개의 대표가 되었다. 얼떨결에 마을기업에 선정은 되었으나 어떻게 운영하면 좋을지 난감하고 또 난망하기만 했다. 함께하고 있는 결혼 이주 여성들의 일거리도 계속 만들어내야 했다. 다행히도 아는 사람으로부터 은평구 근처의 텃밭에서 농사를 짓도록 허락을 받고 농작물 재배와 판매, 효소·김치 판매 등을 해보기로 했다.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이주 여성들의 가족 간에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전에는 어떤 프로그램을 해도 나오지 않던 이주 여성의 남편들이 하나둘 텃밭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텃밭 농사를 사업화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3개월 정도 지나자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꾸준히 농사를 지을 만한 노동력도 부족하고,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는 노하우나 능력도 없었다. 그러니 농작물을 상품화해서 수익을 내기가 어려웠다. 즐거움은 사라지고 일만 남았다. 농작물을 재배하고 팔아서 남는 수익의 허와 실도 알게 되니 농사지을 의욕도 떨어졌다.

 

마을무지개 구성원들과 어떻게 할지 의논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가보자”는 결의가 그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비록 장렬하게 산화할지언정 이윤의 극대화보다는 가치의 극대화를 꾀하기로 마음을 모은 것이다. 전명순 씨는 당시를 이렇게 말한다.

 

“자존심이었어요. 성공한 마을기업의 모델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실패를 제대로 알려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죠. 결혼 이주 여성들의 자존감을 찾아준 성과는 있으니 우리의 가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봤고요. 사업적으로 실패를 해도 가치를 찾았다고 생각한 거죠. 그해 12월 마을기업 사례 발표회가 있었는데, 우리가 겪은 어려움을 말하자 굉장히 많은 격려를 받았어요.”

 

2011년 1차년도 사업은 지지부진했고, 사업을 꾸리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이듬해 2차년도에도 마을기업 지원이 연장되리라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력이 가상해서였는지 마을N도서관으로부터 분리·독립을 한다는 조건으로 마을기업 지원이 연장되었다.

 

진짜 독립을 하게 된 마을무지개는 2차년도에는 사업적으로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농사보다도 ‘함께 가는 아시아 여행’이 자신들이 더 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여기에 역량의 80퍼센트를 집중하기로 했다. 다문화 교육을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쪽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앞서 주먹구구식으로 패널을 제작해서 강의하던 것을 워크북(교재)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CD로도 만들어 스크린을 통해 수업을 진행했다.

 

“마을기업 지원금을 참 잘 썼어요. 그 돈이 없었다면 기업 운영이 잘 안 됐을 거예요. 물론 아직도 비영리적인 성격을 다 벗지 못했고, 텃밭과 같은 비영리적인 활동에 향수도 갖고 있어요.”

 

그래서 마을기업 1차년도에 자신들을 힘들게 하던 도시 텃밭을 아예 포기하지는 않기로 했다. 사업적으로는 타당성이 없어도, 결혼 이주 여성들의 정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는 텃밭 농사가 좋았기 때문이다. 텃밭은 그래서 사업보다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다. 농산물 판매가 아닌 체험 학습 중심으로 텃밭 농사를 하니 농사일도 줄고, 무엇보다 농사가 즐거워졌다.

 

전명순 씨는 마을무지개의 가장 큰 의의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사회적 인격체’로 만들어준 데 있다고 여겼다. 그런 점에서 2차년도에는 앞선 연도와 달리 결혼 이주 여성에게 적은 금액이라도 출자를 하도록 권유해 마을기업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했다. 전체 직원 21명 가운데 한국인 다섯 명은 200만 원씩, 결혼 이주 여성은 10만 원씩 내도록 했다. 그러나 결혼 이주 여성들은 대부분 출자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남편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취지를 설명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결혼 이주 여성들은 대다수가 경제 활동을 하고 싶어 해요. 그런데 마을무지개를 통해 자기만의 콘텐츠로 경제 활동을 한다는 사실에 상당히 고무가 됐지요. 정서적으로 좋아진 점까지 보면, 단순한 경제 활동 그 이상이었어요. 인도네시아에서 온 한 여성은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와서 결혼한 경우인데, ‘함께 가는 아시아 여행’ 수업을 하러 간다고 하면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언제든지 가라고 한다는 거예요. 이전에는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해도 타박을 했는데, 수업하러 간다면 태도가 달라진다는 거죠. 그 여성을 사회 속의 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 같아서 기분이 참 좋아요.”

 

마을무지개 안에도 갈등이 존재한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다 보니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전명순 씨가 중재를 하기도 한다. 함께 모여 서로의 차이를 드러내고 조율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도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다 싶으면 수업 파트너를 바꾸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전명순 씨는 자기 중심성이 강하던 자신부터 바뀌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는 그것을 “마음이 커지고 있다”고 표현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 한 명 한 명 유심히 보면서 마음 쓰이는 사람이 있으면 한 번이라도 더 말을 건네는 노력도 기울인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던 변화란다. 자신도 7년 동안 이런 활동을 하면서 점점 단단해진 것 같고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 함께 도모하면서 일할 수 있어서 즐겁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그저 가정의 주부로서 지역에서 자원 봉사 활동 정도 하는 평온한 삶을 살았는데, 마을기업을 하면서 내게 맞지 않은 옷을 입었다는 느낌이 컸어요. 그런 부담감 때문에도 마을기업 첫해는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햇수가 지나고 일이 익숙해지니까, 물론 아직 일은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더 단단해진 것을 느낍니다. 마을기업에서 이주 여성들이 기쁘게 일하는 걸 보면 내가 잘했구나 싶어 보람도 느껴요. 결혼 이주 여성에게 자신이 원하는 일로 돈을 벌게 하는 곳은 우리밖에 없어요.(웃음)”

 

 

마을기업에서 찾은 기쁨과 가치

 

마을무지개는 지역 사회와 함께하기로 한 자신들의 원칙을 잊지 않는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철저히 지역 중심으로 활동한 덕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육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자신들을 불러준 것도 대부분 지역의 기관과 마을공동체였다. 그래서 독거노인이나 어려운 가정에 먹을거리를 나누는 ‘다문화 밥상 운동’처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로 지역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다. 전명순 씨는 그런 활동들이 쌓이면서 지역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당연히 마을공동체와 지역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더 커졌다.

 

“우리는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도 아니고, 일종의 교육 서비스업이라고 봐야 하잖아요. 대표가 지역의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 늘 느끼고 있어요. 내 체질이나 성향과 맞지 않는 일도 해야 하고요. 능력이 뛰어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를 만들면서 서로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일인 것 같아요.”

 

2014년 11월 현재 마을무지개의 직원은 총 21명이다. 다문화 수업이 많지 않으면 강사료는 적게 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이 더 없을까 고민하다가 원래부터 살아오던 주민들과 결합해서 다문화 마을 공연단 ‘컬러링’을 만들었다. 각 나라의 공연을 섞어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이는 공연단이다. 나라마다 다른 공연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큰돈을 받고 공연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차츰 불러주는 곳이 늘고 있어서 마을무지개는 꽤 고무되어 있다.

 

마을무지개는 급하게 빨리 성장하는 것보다는 천천히 오래가기를 원한다. 그래서 “즐겁게 가자” “일이 유익해도 힘들면 하지 말자” 같은 몇 가지 원칙도 세워놓았다.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도 설령 실패한 마을기업으로 남더라도 끝까지 함께 가자고 말한다.

 

“이걸 하지 않았다면 50대 가정주부로서 삶은 편안했겠지만 그렇게 보람차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한 베트남 여성이 한 말이 내게 늘 위로가 돼요. 마을무지개를 만나기 전, 다문화 교육이 있다면 어디든 가곤 했는데 집에 돌아갈 때면 너무 쓸쓸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마을무지개를 만나고 나서는 다른 데 안 가고 여기만 와도 행복하다고 해요.(웃음) 현재 우리 21명이 월평균 강사료 70만 원을 받는 게 목표예요. 지금은 그런 소박한 꿈을 갖고 있어요. 제 딸이 올해 국제통상학과에 들어갔는데, 4년 동안 엄마가 회사를 잘 키울 테니 졸업하고 여기로 들어오라고 했어요. 그렇게 되겠죠?”

 

마을무지개의 미덕은 이주 여성을 한 마을에 사는 이웃으로 바라본다는 것, 경제 활동을 함께하면서 마을공동체도 일구어간다는 점일 것이다. 이들이 함께 만드는 다문화 공동체는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면서 사회 속에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각인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결혼 이주 여성들을 ‘사회적 존재’로서 우뚝 설 수 있게 한 것도 빠뜨릴 수 없다. 한 평범한 여성이 우연찮은 계기로 자기 삶을 변화시키고 이주 여성들을 그 좋은 자장 속에 초대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사회의 차별적 시선도 조금씩 걷어내고 있다. 이런 공로로 전명순 씨는 2014년 7월 서울시 여성상(서울시는 여성 발전 및 여성이 행복한 서울을 만드는 데 기여한 공적이 있는 시민 및 단체를 발굴해 매년 여성상을 시상하고 있다.) 우수상을 받았다.

 

 

 

 

 

 

 

 

발췌 :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박재동-김이준수 지음, 샨티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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