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분야 누리집 - 서울특별시





		
		

	 
	
	

교육 격차, 꿈 격차를 없애는 마을을 아시나요? <공릉동 꿈마을공동체>

2016.06.15
지역공동체담당관
전화
02-2133-6343

교육 격차, 꿈 격차를 없애는 마을을 아시나요?

공릉동 꿈마을공동체

 

 

17번 공릉동 꿈마을공동체

 

 

태어나고 자란 환경과 무관하게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교육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교육은 부와 지위의 세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고, 사교육(이라고 쓰고 ‘사육’이라고 읽는다)은 ‘격차 사회’를 부추긴다. 어릴 때부터 격차 사회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아이들은 더 이상 용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지 않는다.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공릉동 꿈마을공동체’(이하 꿈마을)를 만들려는 사람들 눈에는 그 점이 무엇보다도 안타까웠다. 함께 하는 교육이 있고, 함께 꿀 수 있는 꿈이 있다면 다르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굳이 다른 사람과 비교나 경쟁을 하지 않더라도 당당하게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꿈마을의 일원으로, 동기 부여 콘텐츠 및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기획.진행하는 ‘모티브하우스’(서울시 예비 사회적 기업)의 기획팀장 곽수경 씨가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노원구 공릉으로 둥지를 옮겨오면서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꿈 문화 기획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사람이라면 각자 자신만의 가치와 꿈을 통해 삶을 가꿔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사명과 보람으로 여길 것이다. 그런데 공릉에서 만난 아이들은 공부를 하겠다는 의욕도 떨어지고 인생의 꿈도 없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집이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해서는 안 된다는 사명을 갖고 동기 부여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개발해 오던 모티브하우스는 공릉 꿈마을에서 바로 이런 아이들에게 좀 더 동기 부여를 해주고 싶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을과 만나 풀어야 할까? 곽수경 씨 앞에 던져진 화두였다.

 

 

공릉동 꿈마을공동체 태동하기 시작하다

 

잠시 시계를 돌려 모티브하우스가 공릉 꿈마을과 만나게 된 계기를 살펴보자. 모티브하우스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 1기로 선정된 팀(2011년)이다. 당시 모티브하우스는 그 위탁 운영 기관으로 자신들을 인큐베이팅해 주던 ‘사단법인 씨즈’의 ‘서초 창의 허브’에 입주해 사업을 운영하던 상태였다.

 

2011년 9월, 모티브하우스는 청소년 직업 체험 센터인 하자센터에서 ‘꿈의 날’이라는 행사를 기획해서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행사 당일 태풍이 몰아치는 바람에 수백 명이 참여할 예정이던 행사장에 단 몇 명밖에 참석하지 않는 난감한 일을 겪었다. 그런데 그 몇 명 중에 이후 모티브하우스의 진로를 틀게 만든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승훈 공릉 청소년문화정보센터장이었다. 얼굴이 커서 ‘덴마크’라는 별명을 지녔다는 그가 곽수경 씨에게 명함을 건네며 꼭 한 번 연락을 달라고 했다. 곽수경 씨도 왠지 반드시 연락해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단다. 연락을 하고 만나자 이승훈 센터장은 모티브하우스와 함께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며 공릉으로 옮겨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깊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마침 서초 창의 허브에서 나와야 할 시점이기도 했다.

 

공릉동에는 경제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있는 지역 내 아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시에서 만든 대안교육지원센터(청소년문화정보센터)가 있는데, 이승훈 센터장은 이곳을 학교 밖 청소년들의 거점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라며 이 아이들이 대안 학교나 일반 학교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어보자고 했다. 모티브하우스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이 학교 밖 청소년들의 교사로 참여하기로 하고, 2012년 3월에 모티브하우스는 센터 내의 ‘나도꽃’이라는 이름의 거점 공간에 들어갔다. 마침 센터에서는 마을공동체 활동을 추진하고 있었고 모티브하우스도 이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마을이 바뀌어야 아이들이 꿈꿀 수 있다

 

이승훈 센터장은 마을과 지역에 관심이 많았다. 마을이 바뀌어야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고 자신의 꿈도 찾을 수 있다는 지론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아이들의 멘토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젊은 사람과,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이 마을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멘토 노릇을 할 수 있는 청년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 청년들이 있다 해도 마을보다는 외부로 나가서 활동하기 일쑤였다. 이승훈 센터장은 청년들이 마을에서 일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보고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모티브하우스의 청년들에게 그런 제안을 한 것이다. 동네 언니나 형, 누나가 옆에서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아이들도 좋은 영향을 받을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모티브하우스는 마을 아이들이 모범으로 삼을 만한 청년 파트너들이 있는 조직이었다. 곽수경 씨도 이 점에서 이승훈 센터장과 생각이 일치했다고 말한다.

 

“모티브하우스가 생각하는 교육 내용과 이승훈 센터장의 생각이 잘 맞아떨어졌어요. 교육이란 교사가 지식을 수직으로 전달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둘의 관계가 수평도 아니죠. 우리는 어떤 위치에서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대각선이었죠. 이모, 형, 누나, 언니 같은 존재들 말예요. 엄마에게 말하기 어려운 것을 말할 수 있는 그런 관계 있잖아요. 그렇게 수직도 수평도 아닌 중간에 있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봤어요.”

 

그렇게 마을 안에서의 교육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만났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일치했다. 그런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계속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 열쇠말은 ‘교육’이었다. 교육을 통해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 수 있도록 마을을 바꾸고 싶었다. 이런 생각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열쇠말에 살을 붙여나갔다. 그렇게 생각이 모이고 사람들이 연결되면서 공릉동 꿈마을이 꽃으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마을의 아이들과 모티브하우스의 청년들, 그리고 아이들의 부모 모두가 함께 피운 꽃이었다. 물론 그전부터 공릉에도 주민들이 만든 단체나 모임이 있었다. 극단이나 어머니회 등이 있었는데, 그중 공릉 청소년문화정보센터라는 구심점에 모티브하우스가 결합하면서 공릉동 내 각종 단체와 모임 열여섯 곳이 가세해 꿈마을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승훈 센터장은 특히 공릉 꿈마을의 주역이 아이들이라고 강조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경춘선이 멈추고 쓰레기가 방치된 굴다리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주민들이 골머리를 앓던 때였다. 그때 남자아이 한 명과 여자아이 다섯 명이 굴다리 벽에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나섰다. 어른들에게는 페인트를 사달라고 조르고 구청에 벽화를 그려도 되는지 묻는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함께할 주민들을 모았다. 마침 인근 서울여대에 벽화 동아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언니들에게 벽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하고, 그려야 할 벽이 크다 보니 남자 대학생도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는 서울과학기술대의 형들도 꼬드겼다.

 

그렇게 100여 명의 사람들을 모았다. 세 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함께 벽화를 그린 어른도 있었고, 간식과 음료수 등을 제공하는 동네 슈퍼 주인도 있었다. 각자 번갈아가면서 스케치를 하고 색칠도 하면서 동네 축제처럼 그림을 그렸다. 2011년 봄 아이들의 느닷없는 제안으로 시작된 벽화는 여름에 완성됐다. 마을은 그렇게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여럿이 함께 함으로써 재미를 찾아갔다.(다만 이후 굴다리를 공원으로 정비하는 사업이 진행되면서 벽화의 흔적은 아쉽게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면서 다양한 마을 활동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엄마들이 주축이 돼 아이들을 위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든든한 이웃’이 만들어지고, 벼룩시장을 열거나 엄마들이 사서가 되어 책을 읽어주는 활동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청소년들도 자발적으로 센터 모임방에서 과학 동아리 활동을 하고, 지역 내 대학생들도 참여해 청소년 멘토 활동을 펼치는 등 다양한 주체들이 각자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스스로 해나갔다.

 

공릉동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매달 한 번씩 열리는 마을 회의에 참석할 수 있고, 회의에서는 마을과 관련한 현안을 얘기하고 축제 같은 마을 행사 때는 함께 기획도 하고 역할도 나누어 맡는다. 이처럼 공릉동 내 주민과 단체, 모임, 기업 등이 어우러져 공릉동 지역 협의체 역할까지 하는 꿈마을은 이제 마을공동체로서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함께 꿈을 키워가는 마을, 배움과 가르침이 곳곳에 넘쳐나는 마을, 문화가 곳곳에 흐르는 마을, 이웃을 돌보며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마을, 그런 마을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꿈마을을 가꾸면서 이승훈 센터장과 곽수경 씨가 판 발품도 상당했다. 서울과학기술대, 서울여대, 삼육대, 육군사관학교 등 공릉동 인근에 대학들이 많은데, 아이들의 형이나 언니 역할을 해줄 청년들을 모으고 싶어 이들 대학을 찾아가 설명회나 토론회를 연 적도 많았다. 특히 서울여대에서는 국제 리더십 학생 단체인 아이섹AIESEC과 함께 다섯 차례에 걸쳐 ‘청춘 TALK’라는 행사를 갖기도 했다. “몸도 마음도 멀어진 마을과 청년을 이어주자”는 목적 아래 일, 연애, 돈, 여행, 맛집 등 다섯 개의 주제로 행사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부귀영화’(영화 모임), ‘부킹’(독서 모임) 같은 모임이 꾸려지기도 했다.

 

 

마을 축제를 만들다

 

꿈마을에 다양한 주체들이 활동하기 시작하자 마을 축제를 해보고 싶다는 꿈이 피어올랐다. 2013년 봄부터 공릉 청소년문화정보센터, 모티브하우스를 비롯해 지역 내 저소득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지원 사업을 하는 ‘나눔연대’, ‘극단 즐거운 사람들’, ‘든든한 이웃’ 등이 마을 축제를 기획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곽수경 씨는 마을 축제를 열게 된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마을 축제를 해보자는 아이디어는 이승훈 센터장한테서 나왔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추진력은 마을에서 자라 마을을 잘 알고 공릉이 자기 삶과 일의 터전이기도 한 극단 즐거운 사람들의 김병호 단장에게서 나왔어요. 거기에 지역 내 다른 모임과 단체들도 힘을 보태 축제가 열리게 된 거죠. 주민과 학부모를 백그라운드삼아 5월에는 ‘와글와글 축제’, 9월에는 ‘꿈나르샤 축제’를 열었습니다. 주민들의 호응도 좋았어요.”

 

5월에 열리는 ‘와글와글 축제’가 어린이를 위한 축제라면, 9월에 여는 ‘꿈나르샤’는 주민들과 함께 지역 내 각종 모임이나 단체가 한 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꿈을 다양한 끼와 재능을 통해 펼치는 축제이다. 2014년 9월 공릉중학교와 태릉초등학교에서 열린 4회 꿈나르샤 축제에는 40개 부스가 설치되었고 천여 명의 주민이 참여해 즐겼다. 대동제, 참여 마당, 공연 마당, 먹거리, 스포츠 마당, 나눔 바자회, 전시회 등이 시끌벅적 어우러지면서 축제를 흥겹게 만들었다.

 

이 두 축제는 마을공동체 활성화 차원에서 관공서의 예산 지원을 받아서 열었으나, 2014년 5월부터는 예산 지원을 받지 않기로 했다. 마침 세월호 참사 직후여서 사망·실종자들을 추모하는 내용을 담아 마을 축제를 벌였다. 예산 지원이 없는 만큼 축제 참여자들이 각자의 비용으로 부스를 차리고 필요한 경비는 십시일반으로 모았다. 축제의 체험비도 유료로 했다. 주민들도 대부분 돈을 내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음식 등을 팔아서 생긴 수익금은 마을 기금으로 모아 다음 축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곽수경 씨는 이 경험을 통해 축제의 다른 가능성을 꿈꾸게 되었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축제를 하면서 주민들의 후원금이 많이 들어왔다는 점이에요. 많이 놀랐어요. 예산 지원 없이 축제를 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축제를 자발적·자생적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씨앗을 더 적극적으로 틔워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아무리 작은 행사라도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동기 부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꿈마을은 또 “내가 사는 마을을 좀 더 알게 하자”는 취지로 노원구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아 2014년 11월부터 이른바 ‘꿈마을 여행’을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공릉동의 유래와 현황에 대해서도 들려주고 마을 카페도 들르고 마을에 있는 극단의 연극도 관람하는 등 마을을 깊이 알게 하는 마을 투어다. 3킬로미터 남짓한 길지 않은 코스지만 마을 투어를 통해 동네에 대한 애정이 생겨났다는 등 마을공동체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이 커지는 것이 보였다.

 

곽수경 씨는 꿈마을이 협동하는 주체들의 모임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공동체의 교육 철학에는 ‘협동’과 ‘공유’라는 가치관이 깔려 있어요. 프로그램을 세팅할 때도 그런 가치를 담으려고 하죠. 작은 일에서부터 협동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프로그램을 짜는 겁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나중에 좀 더 큰 협동도 할 수 있겠죠. 마을도 협동과 공유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주민들과 이렇게 함께하는 과정을 통해서, 지식은 학교나 학원 같은 전문 기관에서 배울 수 있지만, 사람들과 소통하고 연결하는 방법은 일상에서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승훈 센터장이 꿈꿨던 마을공동체는 이제 꿈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무럭무럭 성장해 나아가고 있다. 그는 마을 주민들이 함께하기에 가능한 것이라며 이렇게 덧붙인다.

 

“내가 사는 곳의 좀 더 나은 변화를 원했어요. 마을 일꾼들만 활동해서는 그런 변화를 가져올 수 없는데, 아이부터 청소년, 주민 모두 모였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파편화되고 흩어져 있던 사람들에게 각자 어떤 마을에서 살고 싶은지 묻고 함께 그 꿈을 가꾸면서 지난 4년간 많은 변화들이 생겼죠. 변화가 주는 감동들이 다음날, 다음달, 다음해를 살게 해주는 힘이 되고 있고요. 함께 꿈꿀 수 있어서 좋아요.”

 

 

동네 형과 언니가 맡는 마을의 교육

 

모티브하우스는 공릉동 아이들의 꿈 교육이나 마을 축제 참여 등 마을에 녹아드는 과정을 통해 사업의 지혜와 힘을 키워가고 있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교육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하지만 마을공동체 사업이 금전적인 이익을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점은 고민되고 힘든 부분이었다. 또 마을의 의사 결정 과정이 기업의 일사불란한 의사 결정 과정과 다른 점도 적응하기 어려웠다.

 

곽수경 씨는 회의에 매번 참석해야 하는 것도, 행사 기획을 할 때 대가를 받지 않고 재능 기부자로 참여하는 것도 처음에는 익숙하지가 않았다. 마을 관련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근무 외 시간을 들이는 것은 예사이고 신경과 관심도 곱절로 쏟아야 했다. 그럼에도 곽수경 씨는 모티브하우스의 대표 자격으로 마을의 회의나 모임이 있으면 꼬박꼬박 참석했다. 그러면서 마을공동체가 돈의 논리로 움직이는 기업과 달리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이며, 신뢰 관계를 형성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알아갔다.

 

곽수경 씨는 자신이 오랜 시간을 통해 깨달은 것을 마을의 청소년들도 언젠가 알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꿈마을이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하나의 주체로서 작은 일이라도 직접 기획하고 실천해 보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기획력이 부족해도 끝까지 믿고 밀어주는 경험의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는 비록 온전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직접 마을 축제를 만들어 진행하고 어른들이 지원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우리도 늘 고민해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고자 하는 교육이 과연 아이들에게 적절한 것인지, 아니라면 누구에게 묻고 어떻게 다듬어가야 하는지. 사실 어떤 교육 전문가한테서 ‘너희가 하는 일의 근본이 뭐냐?’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근본이 없다는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아이나 청소년에게서도 배우고 얻겠다는 입장이에요. 이런 것은 마을이 움직이고 돌아가는 것과 같은 형태예요. 서로 만나면서 얻고 배우는 것이 많아요. 아이들과 어른이 배움을 주고받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 마을이라고 봅니다.”

 

곽수경 씨에게는 모티브하우스나 꿈마을 모두 사람과 똑같은 유기체다. 그러기에 마을 안에 쓸모없는 경험이란 없다! 지금은 비록 의미 없어 보이는 경험이라도 어느 순간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때가 온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마을에서 언니, 오빠, 형, 누나를 만난 경험이 알게 모르게 아이들을 성장시킬 것이다. 그런 경험 하나하나가 아이들 마음속에 씨앗처럼 심어지고, 그 씨앗이 저절로 싹을 틔우며 언젠가 활짝 꽃을 피우는 날이 올 것이다. 교육이란 아이들 마음속의 씨앗들이 잘 자라 꽃을 피우도록 물을 주고 돌보는 것, 사랑으로 지켜봐 주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지나치게 몰아세우면서 우리의 뜻대로 ‘사육’하려고 드는 것은 아닐까?

 

“교육의 근본은 사람을 중심에 두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내가 사는 곳, 내 주변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보이지 않죠. 아이들은 어른보다 활동 반경이 넓지 않아요. 마을이 아이들의 주요 활동 범위인 셈이죠. 모티브하우스가 마을 활동을 하는 것도 교육이나 꿈의 격차를 줄이려는 우리의 목표가 마을에서 필요로 하는 것과 부합하기 때문이고요. 이제는 마을공동체가 뭔지 개념도 좀 잡히고, 즐겁게 마을 활동을 하고 있어요.(웃음) 이런 일이 돈이 되는지 아닌지 따지기부터 했다면 이 일을 오래 못했을 거예요. 교육이란 게 그런 것처럼 우리 일도 하나하나 경험해 가면서 천천히 기다리다 보면 열매 맺는 때가 오는 것 같아요.”

 

마을은 단지 아이들만이 아니라 이 아이들 교육에 힘을 보태보겠다고 뛰어든 청년들에게도 똑같이 학교가 되었다. 주민들을 만나고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그들은 자기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방향을 더욱 확고히 다지게 되었다.

 

청년들이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일과 삶이 마을에서 이루어지고, 그래서 마을에 자연스레 스며들 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저절로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애써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보다 자신들이 이미 하고 있는 일로 얼마든지 마을에 스며들 수 있다. 형, 누나, 언니 들이 마을에 스며들어 공동체를 함께 일궈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영향을 받고 꿈을 키울 것이다. 함께 어우러지면서 교육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모티브하우스는 꿈 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꿈을 꾸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주고 싶다며 9월 9일을 꿈을 꾸는 문화의 날, 꿈의 날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동시에 ‘유쾌한 청년수다’라는 마을 학교를 진행해 청년들과 마을 간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청년들에게 마을에서 관계를 맺어가는 법을 비롯해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런 관계들이 풍성해지면 자신만의 가치를 표현하고 실현하고 싶은 욕구도 더 커지고 그만큼 꿈도 더 자랄 것이다. 화랑대, 삼육대, 과기대 등 오래된 건물과 태릉선수촌, 육사 등을 엮어 역사 여행을 테마로 한 마을 여행을 기획한 것이나, 공릉을 지나는 철길을 테마 공원으로 꾸밀 생각을 하는 것도 모두 같은 취지에서다. 모티브하우스는 사무실을 2014년 11월 마포구로 옮겼지만 공릉에서의 꿈마을 활동은 계속하고 있다.

 

마을 안의 아이들에게─결국은 마을의 주민들에게까지도─꿈을 갖게끔 도우려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가?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꿈을 꾸지 않게 된 이유는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여기던 가치관과 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해도 그것에 익숙해져 다른 꿈을 꾸기 어렵다.

 

여성학자 박혜란은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생각으로는 어렸을 때 키워주어야 할 것은 인지 능력이 아니라 공부건 놀이건 즐기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 아닌가 싶다. 그것도 엄마가 앞장서서 주입식으로 가르치려 들지 말고 아이가 스스로 즐기는 법을 터득하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이 좋다.” 이것이 가능한 곳이 마을이다. 마을이 학교가 되어 돌아가는 꿈마을에는 바로 그런 교육이 둥지를 틀어가고 있다.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행동해라”라는 훈계를 되풀이하는 것은 좋은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남과 더불어 사는 방법, 즐겁게 잘사는 방법을 일상에서 익히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교육이다. 마을공동체는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한다.

 

 

 

 

 

 

 

 

발췌 :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박재동-김이준수 지음, 샨티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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