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분야 누리집 - 서울특별시





		
		

	 
	
	

마을에서 펼쳐지는 일상의 소소한 예술 <000간, 창신동 봉제 마을>

2016.06.15
지역공동체담당관
전화
02-2133-6343

마을에서 펼쳐지는 일상의 소소한 예술

000간, 창신동 봉제 마을

 

 

8번 우리마을카페오번과 카페 사람들

 

 

서울 종로구 창신동. 전태일재단 등 전태일 열사의 흔적이 있으며, 대한민국 산업화의 숨은 역군이라 불리던 우리의 어머니, 누이 들이 일상화된 착취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쉴 틈 없이 미싱을 돌리고 재단을 하던 곳이다. 힘겨운 노동으로 마지못해 삶을 버티던 곳이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창신동에서 만든 옷을 입었을 만큼 이곳은 한때 의류 생산에서 큰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서울시가 2012년 미래문화유산으로 지정·보존하기로 결정한 이곳에서는 과거보다는 규모가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미싱이 돌아가고 재단이 이뤄지고 있다. 현재는 주로 2∼3인의 소규모 봉제 공장이 운영되고 있는데, 창신동 주민의 70퍼센트가 이곳에서 봉제 관련 일을 하고 있다. 동대문의 의류·방직 산업을 지탱하는 배후 생산 기지로 동대문 의류 시장에서 소비하는 카피 상품이나 단기 계절 상품을 주로 제작한다.

 

원래 창신동은 복숭아나무와 앵두나무가 우거진 과수원 지역이었다. 이렇게 붉은 열매가 많아 ‘홍숫골’로 불렸는데, 1914년 한성부 관청이던 인창방과 숭신방에서 한 자씩 따서 창신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곳에는 산을 깎아서 생긴 가파른 경사길과 절벽이 있는데, 일제 때 서울역과 조선총독부를 짓기 위해 이곳을 채석장으로 썼기 때문이다.

 

그런 배경이 있는 창신동은 과거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다. 동대문 일대의 직공들이 잠잘 곳을 찾아 들어오고 동대문에 버스 터미널이 생기면서 창신동에 쪽방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지금도 박스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수천 개의 집들과 미로 같은 골목길 풍경이 그것을 대변한다. 거기에 1980년대 평화시장의 봉제 공장들도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싼 창신동으로 몰려왔다. ‘시다’라 불리던 직공과 재단사들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못 견디고 나와 창신동 골목에 ‘가내 경공업’으로 하청 공장을 차리면서 이곳은 봉제 마을로 거듭났다.

 

2011년 그렇게 쇠락한 풍경 속으로 두 예술가 청년이 들어가 그곳 사람들과 섞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부모의 손길을 덜 받고 자라는 마을의 아이들과 함께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마을 주민들의 동아리 형성을 도왔다. 이들이 주민들과 함께 기획부터 인테리어 작업까지 함께한 작은 마을 도서관 및 커뮤니티 공간도 만들어졌다. ‘문화 예술을 통한 지역 재생’을 목표로 하는 문화 예술 플랫폼도 자리를 잡았다. 마을 주민의 목소리를 담은 마을 미디어도 생겨났다. 모두 이 청년들이 들어가면서 생긴 변화였다.

 

그러면서 창신동도 새로운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과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관계와 이야기가 만들어지면서 다른 내용을 가진 창신동 봉제 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하다

 

도시의 어떤 공간은 과거에서 미래를 보는 단초를 제공해 준다. 《리씽킹 서울》이라는 책을 보면, 창신동은 서울의 새로운 재생 전략을 담당할 지역 중 하나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창신동이 도살장 밀집 지역에 생긴 뉴욕의 패션 중심지 미트패킹 지구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보고 있다.

 

창신동에 우연찮게 발을 들이게 된 두 예술가 청년, ‘키다리’(홍성재)와 ‘콩’(신윤예)에게 이곳은 묘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곳이었다. ‘러닝투런’이라는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던 이 두 사람은 지역아동센터의 초빙 예술 교사 자격으로 창신동 아이들에게 단기 예술 교육을 진행하면서 이곳을 처음 찾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곳의 소규모 봉제 공장들을 처음 접했고, 그 공간들을 둘러보면서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떠올렸다. 적은 수의 동료들이 공간을 임대하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부터 어수선한 분위기까지 닮아 있었다.

 

동질감을 느낀 그들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서 자신들의 삶은 물론 작품 활동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주민들과 만나 그 안에서 풍요로운 관계의 지점들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래서 삶과 예술을 연결하는 시도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창신동은 예부터 예술의 기운이 흐르던 곳이었다. 조선의 실학자 이수광이 《지봉유설》을 집필한 비우당庇雨堂(‘비를 가리는 집’이란 뜻)이 있으며,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과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박수근이 살던 곳이기도 했다.

 

키다리와 콩은 지역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자신들이 늘 입고 다니던 옷이 얼마나 힘든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는지 모르고 살아왔다는 사실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시간이나 경제적 여력이 부족해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부모들의 안타까운 마음이나, 봉제 산업이 쇠락하면서 찾아든 빈곤 문제 등이 그들 눈에 아프게 들어왔고, 이런 문제들을 지역 안에서 풀 수 있는 방법을 주민들과 함께 모색하고 싶었다. 삶과 예술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이을 수 있을지 고민하던 때였기에 그런 생각들이 더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2012년 1월부터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간단한 예술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6월 ‘000간(공공공간) 사무소’를 열었다. 숫자 ‘0’은 비어 있으면서 다른 것들로 채워지기를 기다린다는 뜻이고, ‘간’은 ‘사이, 틈, 참여’를 뜻했다. 즉 참여와 협업을 통해 새로운 공공성을 제안하고 실험하는 곳이란 뜻이었다. 두 사람은 키다리와 콩이라는 별칭으로 활동하면서 한 해 동안 창신동 주민들과 여러 형태로 관계를 형성하며 친해지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말풍선 붙이기 놀이인 ‘말, 풍선’, 아이들이 큰 상자에 들어가는 경험을 해보는 ‘나 홀로 동굴’, 창신동 오르막을 작은 축제의 공간으로 만드는 ‘오르막 페스티벌’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을 비롯한 주민들, 봉제 노동자들과 어우러졌다. 그렇게 친해지면서 커뮤니티 도서관 ‘뭐든지’를 만들게 되었다.

 

“지역아동센터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아이들을 포함해 주민들이 함께 어떤 콘셉트의 도서관을 만들 것인지 기획하고 도서관의 이름도 공모를 했는데, 한 아이가 ‘뭐든지’라는 의견을 냈어요. 그래서 ‘뭐든지 도서관’이 된 거죠. 주민들이 함께 넉 달에 걸쳐 천천히 만들었어요.”

 

빈 공간을 임대해 주민들이 직접 페인트칠과 바닥 공사를 하고, 필요한 물건은 집에서 가져오기도 했다. ‘뭐든지’라는 이름처럼 작아도 다양한 쓰임새를 지닌 마을 아지트가 만들어졌다. 도서관이 생긴 뒤로는 다양한 문화 활동이나 마을 모임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뭐든지’에 모여서 뭐든지 하기 시작했다. 극장도 되고, 연주회 무대도 되며, 바자회 장소로도 활용되었다. 마을의 아이와 어른 모두가 모여 꿍꿍이를 꾸몄다. 지금 ‘뭐든지’는 주민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해 실질적으로 주민들이 주인이 되는 협동조합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그렇게 창신동이 변하고 있다. 함께 모여 뭐든지 함으로써.

 

 

창신동의 변신, 외부로 연결하라!

 

러닝투런 두 사람의 활동에 힘입어 2013년부터 창신동은 외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2년 한 해 동안 마을 사람들과 형성한 관계를 토대로 이들은 2013년부터 창신동을 외부와 연결하는 작업들을 다양하게 해나갔다. 마을 주민들과 외부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도록 키다리와 콩이 만든 프로그램 중 하나가 ‘도시의 산책자’였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책 《도시의 산책자》에서 따온 이름이다. 마을 주민에게 직접 해설을 듣거나 음성 안내기로 해설을 들으면서 창신동 곳곳을 산책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산책하듯이 자연스럽게 마을을 탐방하면서 주민의 입을 통해 마을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낙산공원을 끼고 있는 창신동은 실제로 산책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000간은 ‘도시의 산책자’ 프로그램을 통해 창신동을 외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만드는 것 외에도, 창신동의 경제적 기반인 봉제 산업에 주목, 이를 이용해서 창신동을 새로운 혁신의 공간으로 꾸밀 수 없을까 하는 데로 생각이 미쳤다. 키다리와 콩이 그동안 지켜본 봉제 산업은 ‘오래된 미래’였고, 봉제 마을은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공간이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것이 가능한 것이 되고 쓸모없다고 여겨지던 것이 쓸모를 찾는 것은 모두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자유롭게 상상하는 것에서 마을공동체는 변화를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마을은 곧 상상력을 품은 곳이기도 하다. 창신동 봉제 마을은 그 점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봉제 마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버려진 원단이다. 창신동 일대에는 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원단 심지(말대) 등이 무수히 배출되고 있었다. 쓰레기봉투 안에 버려진 원단 조각을 보면 계절별로 유행하는 옷의 색과 패턴을 알 수 있을 정도다. 두 사람은 이렇게 버려진 원단 조각들에 주목했다. 창신동에 하루 22톤, 연간 8천 톤이 버려지는 원단을 활용해 옷이나 생활용품, 소품을 만들면 봉제 마을 사람들의 소득 향상과도 연결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규모 봉제 공장이 가질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생산 시스템과 저임금, 그로 인해 충분히 보살피지 못하는 아이들의 육아와 교육, 엄청나게 쏟아지는 원단 폐기물 등 다양한 문제와 고민에 대해 어떻게 그 대안을 찾을지 고민을 했어요.” 그런 고민의 결과로 나온 것이 바로 ‘자투리의 재발견’이었다. 남는 공간, 제품, 자원, 인력 등을 찾아내서 거기에 다양하고 새로운 쓰임을 입혀주는 것이다. 그래서 만든 것이 ‘000간 플랫폼’이다.

 

키다리와 콩은 버려지는 원단 자투리로 방석을 만들었다. 원단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것은 물론, 이것으로 수익도 낼 수 있겠다 싶었다. 또 계절과 유행에 따라 원단이 다르니 이렇게 다양한 천들을 담아 만든 방석은 ‘봉제 노동의 흔적이 담긴 저장소’라는 의미도 있었다. 그들은 주변 봉제 공장과 힘을 합쳐 반투명한 원단에 자투리 천을 넣은 방석을 완성했다. 이 방석들은 보기에도 좋아서 많은 곳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더 나아가 이들은 처음부터 자투리 원단이 버려지지 않는 옷을 고민, 원단을 재단하고 남은 자투리를 디자인 요소로 활용한 ‘제로 웨이스트 셔츠’를 내놓았다. 키다리와 콩은 함께 일할 디자이너를 모집해 000간에서 직접 셔츠를 디자인한 뒤 봉제 공장에 제작을 맡겼다. 대개 셔츠를 만들면 버리는 원단이 20퍼센트 정도지만 제로 웨이스트 셔츠는 버리는 원단이 5퍼센트도 안 되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주변 봉제 공장과 협업·협력의 관계도 자연스레 넓어졌다.

 

자투리를 활용한 봉제 체험을 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봉제 장인과 함께하는 ‘자투리의 여행’이 그것이다. 이 체험 프로그램에서는 자투리를 활용해 에코 브로치 등을 만들 수 있다.

 

2013년 1월 개국한 창신동 라디오 방송국 ‘덤’도 창신동 봉제 마을을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창신동 봉제 마을 주민들이 미디어 교육을 받고 만든 ‘덤’은 마을 미디어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창신동 봉제 마을이 꾸는 꿈, 제로 웨이스트 빌리지

 

키다리와 콩은 자신들이 창신동에 자리를 잡은 것을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들의 작품 활동은 물론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이곳에서 함께 녹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이다.

 

“예술가 개인의 작품 활동이 지역과 만나면서 외연과 내용이 넓어지고, 그렇게 확장된 작품 활동이 지역의 삶과 일자리로 연결되고, 예술가와 마을 사람들이 협력하면서 지역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좀 더 긴밀하게 마을공동체와 연결하면서 우리의 활동을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더 키워나가고 싶어요. 실제로 지역 문제를 해결하면서 긍정적인 변화의 결과를 주민들과 함께 나누어가는 거죠. ‘뭐든지’를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만들면서 이곳에서도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문화가 생겼고요. 앞으로도 지역의 변화를 위해 ‘함께 살기’를 실천하고 싶습니다.”

 

이런 활동들을 함께 하면서 키다리와 콩은 마을에 자연스레 젖어들었고,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끈끈한 관계로 맺어졌다. 이제 창신동 봉제 마을은 한껏 변화의 기운을 타고 있다. 창신동에 이와 같은 새로운 기운이 깃들자 정부도 인근 동대문 패션 상가와 이곳의 봉제 산업을 연계하기 위해 창신동의 빈 공간이나 폐공간을 청년 디자이너들에게 제공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 공간들을 의류 상품 제작 등 봉제 작업 공간으로 활용하게 하겠다는 것이다.(국토해양부는 2014년 11월 도시 재생 선도 지역의 하나로 서울 종로구 창신동·숭인동을 지정했다. 도시 재생 사업은 쇠퇴한 옛 시가지나 노후 산업 단지·항만, 공공 청사·군부대·학교 등 이전 적지(특정 시설이 옮겨가고 남은 빈 땅)의 산업·상업·주거 기능을 되살려 지역을 활성화하는 사업이다. 창신동은 쇠퇴한 구도심, 시가지의 노후·불량 주거 지역, 상권 등을 되살리는 ‘근린 재생형’으로 분류되었다. 이 지역을 주민 커뮤니티 중심으로 회복시키는 사업이 추진될 계획이며, 기존 봉제 산업을 특화하고 안정적인 판로 구축을 돕는 방안도 마련되고 있다. 국토부는 아울러 유네스코 유산 등록을 추진중인 한양 성곽을 활용하여 마을 관광 자원을 개발하고 낙후한 주거 환경 개선 사업, 주민 공동체 활성화 사업 등도 벌일 계획이다.)

 

그들 역시 마을에 스며드는 과정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쟤네들, 저렇게 하루 이틀 하다가 가겠지.’ ‘쟤네들, 괜히 뭔가 들쑤시고 시끄럽게만 만드는 것 아니야?’ 그러던 것이 키다리와 콩이 계속 무언가를 만들고 기획하고 제안하는 것을 보면서 ‘뭔가를 하네’로, 다시 ‘열심히 사네’로 시선이 차츰 바뀌었다. 이제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먼저 제안이 들어오기도 한다. 키다리와 콩이 마을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주민들도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난 것이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그들은 마을의 언니이자 형, 누나가 된 키다리와 콩에게 찾아와 진로나 인생 고민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청소년들은 환경이나 임금이 열악한 봉제 일을 대물림받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정든 마을을 떠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그래서 키다리와 콩은 이런 청소년들을 위해 지역 내 청소년 창업 멘토링도 시작했다. 청소년들은 멘토링을 받으며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다고 한다.

 

키다리와 콩이 주민들과 함께 하는 일들이 성과를 내면서 여러 사회적경제(‘사회적경제’란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발전하면서 나타난 불평등과 빈부 격차, 환경 파괴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 활동을 말한다. 이는 1800년대 초 유럽과 미국에서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상호부조조합, 커뮤니티 비즈니스 등의 형태로 처음 등장했고, 한국에서는 1997년 외환 위기를 전후해서 구조화된 실업과 불안정 고용, 빈부 격차의 심화, 낙후 지역의 발생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크게 부각되었다.) 주체들도 창신동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공연과 문화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회적기업 ‘아트브릿지’가 창신동에 들어와서 ‘뭐든지 예술학교’를 만들었고, 지역 가치를 존중하면서 지역 커뮤니티의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소셜벤처 어반하이브리드(도시융합협동조합)도 의류 제작자와 디자이너를 연결하고 지역 재생 활동을 위한 ‘창신 table’을 열었다. 000간도 참여하는 봉제 마을 주민 모임인 ‘창신마을넷’도 한 달에 한 번 정례 회의를 통해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내외부에서 에너지가 쌓이고 유입되면서 창신동 봉제 마을은 도시 재생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봉제 산업의 메카지만 낙후된 지역으로 인식됐던 창신동이 지금 청년들이 불어넣은 활력 덕분에 새롭게 바뀌고 있다. ‘자투리의 재발견’과 같은 활동 등으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관계망을 짜나가는 이들은 마을에 버려져 있던 자원을 새롭게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는 ‘마을 양장사’가 아닐까? 그리고 이들의 노력과 성과에 힘입어 창신동 봉제 마을이 꾸고 있는 꿈이 있다면 바로 제로 웨이스트 셔츠처럼 “쓰임새가 없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사람이 없는 ‘제로 웨이스트 빌리지’가 아닐까?

 

봉제 마을답게 복식服飾 용어로 빗대어 표현하자면, 창신동 봉제마을은 ‘프레타 포르테’(기성품)가 아닌 ‘오트쿠튀르’(고급 맞춤복)와 같다고나 할까? 창신동은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길로 직조하는 ‘고급 맞춤복’ 마을로 거듭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한두 사람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문제와 한계가 있다고 해서 불평하고 투덜대기보다는 서로 힘을 모아 해결해 가려는 관계가 형성될 때 마을공동체도 그렇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도 비로소 변화할 수 있다. 창신동 봉제 마을은 바로 그 멋진 예이다.

 

 

 

 

 

발췌 :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박재동-김이준수 지음, 샨티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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