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분야 누리집 - 서울특별시





		
		

	 
	
	

마을 방송에 내가 나와서 정말 좋네∼ <성북마을방송 와보숑>

2016.06.09
지역공동체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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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방송에 내가 나와서 정말 좋네∼

성북마을방송 와보숑

 

12번 성북마을 와보숑

 

 

 

서울 성북구에는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가 유난히 많다.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사 관계자들이 성북에 많이 살아서가 아니다. 성북에 사는 주민이라면 누구나 앵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북마을방송 와보숑’ 덕분이다. 와보숑은 “모든 주민이 앵커다”라는 슬로건대로 마을 주민 누구나 앵커로 초대한다.

 

장애인, 할아버지, 초·중·고등학생, 주부, 수녀, 교사, 헤어디자이너, 세탁소 주인, 음식점 셰프 등 와보숑의 앵커는 자격에 제한이 없다.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앵커를 하고 싶다는 사람이 줄을 서 있다. 어릴 때부터 읊던 동요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가 실현되는 곳이 와보숑이다. 앵커뿐만이 아니다. 기자, 촬영감독, 연출자 등 방송을 만들어가는 모든 주체로 참여할 수 있다. 주민이 주체가 되고 주민 주도로 만들어지는 마을 방송이기에 이곳에는 다른 방송에서는 보고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서울의 대표적인 마을 방송으로 자리 잡고 있는 와보숑은 마을 이야기를 담은 마을 뉴스는 물론 예능이나 다큐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영상물 외주 제작에도 나서 그들이 만든 영상물이 지상파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와보숑은 마을공동체가 얼마나 다양한 영역으로 스스로를 넓혀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멋진 예라 하겠다.

 

 

와보숑, 만만하게 시작하다

 

와보숑은 스스로를 ‘만만한 방송국’이라고 부른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데다 편안하고 즐겁게 방송을 만들고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와보숑을 시작하기 전 성북구에는 ‘함성’이라고 줄여 부르던 ‘함께하는 성북마당’이라는 주민 모임이 있었다. 2012년 성북구 내 다양한 시민 사회와 주민들이 함께 모여 신년하례회를 하던 자리에서 만들어진 성북의 마을공동체였다. 함성에서 미디어에 관심을 갖고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뭉쳐서 소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은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에서 기획하고 진행한 ‘우리마을 미디어문화교실’에 ‘시끌시끌성북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참여해 교육을 받았다.

 

미디어를 배우는 과정은 무척 재미있었다. 미디어에 재미를 붙인 주민들은 ‘우리마을 미디어문화교실’ 2기에도 참여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주민이 직접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마을 방송을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이야기를 신나고 재미있게 만들어보자. 더불어 사회 참여도 하면서!”

 

‘성북마을방송 와보숑’이란 이름도 그때 정해졌다. 누군가 갑자기 ‘와보숑’이라는 이름을 제안했고, 이름이 가볍고 장난스런 느낌이 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지금은 기억하기 좋아서 다들 만족해한다. 마을 방송의 플랫폼은 인터넷을 활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2013년 3월에 와보숑이 설립되었다. 와보숑을 협동조합으로 운영해 보자는 생각에 성북마을방송 협동조합설립준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와보숑을 만드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함성’은 물론 와보숑의 설립에도 깊게 관여하면서 많은 일을 한 이소영 와보숑 대표도 지금 돌아보면 깜짝 놀랄 정도라고 말한다. 그 역시도 영화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기에 와보숑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60대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이 일에 열심을 다했다.

 

“우리끼리 만나면 하는 얘기가 그래요.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예상도 상상도 못한 일이에요.(웃음) 나는 영화광인데, 오래전부터 품어온 소원이 있었어요. 엔딩 크레디트에 내 이름을 올려보는 거요. 그래서 ‘우리마을 미디어문화교실’에서 영상 교육도 받은 거고요. 그러다가 우리가 배운 기술, 우리가 맺은 관계가 아까워서 마을 방송을 해보자고 했죠. 결국 그게 개국까지 이어졌고요.”

 

와보숑 덕분에 이소영 씨는 자신의 꿈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직접 영상이며 편집도 배우며 연출 공부까지 하고 있다. 십수 년 전 성북에 온 그는 함성과 와보숑을 시작하기 전에는 마을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도 하고 가정폭력보호소 쉼터에서 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다. 서울북부두레생협의 일을 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놓지 않았던 꿈이 마을의 주민 모임에 참여하면서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그는 이제 성북을 변화시키는 마을의 리더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신나고 재미있는 와보숑

 

결과적으로 와보숑은 협동조합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사업 구상을 하고 논의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결사체로서는 충분하지만 사업체로서는 준비가 미흡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협동조합 형태가 의미도 있고 사람들의 열정도 넘치긴 했지만, 사업체로서 재정을 마련하고 구체적인 일들을 지속적으로 꾸려가기엔 부족하다는 판단이 든 것이다. 협동조합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은 뒤로 미루었다. 우선 개국을 하고 2013년 4월 유튜브를 통해 성북마을뉴스 첫 회를 내보냈다.

 

그렇다면 방송 내용을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느냐고? 천만에! 전혀 어렵지 않다. 방송이라고 했을 때 아마 자동으로 떠올리게 될 장치와 장비는 머리에서 지워도 좋다. 현란한 조명과 크고 무거운 카메라 장비, 뽀얀 분칠을 한 방송인과 PD, 작가 등이 들어가 있는 스튜디오는 마을 방송과 어울리지 않는다. 스튜디오는 마을 카페 한 구석이면 되고, 카메라는 가정용 캠코더면 족하다. 촬영할 때 반사판이 없으면 은박지를 깔고 찍으면 된다. 그래도 충분히 방송을 만들 수 있다. 마을에 사는 누구나 출연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와보숑은 성북마을뉴스를 격주로 만들고 있다. 매회 두세 개 꼭지로 마을 소식을 전한다. 1년을 넘어서면서 요령도 쌓이고 있다.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살짝 부담도 되지만, 그래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즐겁고 신난다. 마을 방송이기에 비용에 대한 부담 없이 그때그때 여건에 맞춘 제작이 가능한 측면도 있다. 즉흥적으로 누구나 섭외해서 출연시킬 수 있고 제작도 어디서나 손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야외 촬영차 정릉에 갔을 때다. 촬영 준비를 하는데, 아뿔싸 카메라에 배터리가 없었다. 애써 섭외한 앵커도 이미 와 있는 상태라 나중에 다시 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릉의 관리사무소에도 알아봤지만 해법이 쉬이 나오지 않았다. 이때 스태프 한 명이 능 옆에 있는 소화전에서 방법을 찾았다. 소화전에서 코드 꽂는 곳을 찾아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캠코더용 코드만 꼽으면 되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촬영장에 나온 모두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와보숑에서 가장 획기적인 시도라고 할 만한 것은 역시 첫머리에 언급한 것처럼 누구나 앵커로 참여시킨 일이다. 전문 앵커를 쓸 돈이 없어서 주민을 앵커로 참여시킨 것이 의외로 폭발적인 반응과 호응을 얻었다. 앵커로 참여한 주민들의 성취감과 만족감도 높았다. 막걸리 집에 회식을 가서 주인을 앵커로 나서게 하는 ‘미친 섭외력’도 이들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그 막걸리 집 주인장이 앵커로 나서서 촬영할 때의 일이다. 촬영을 마치고 편집을 해보니 잡음이 너무 심했다. 영업하는 가게에서 재촬영하기가 여간 미안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재촬영을 했는데 역시 잡음이 심했다. 잡음의 정체는 냉장고였다. 냉장고가 무려 다섯 개나 돌아가면서 큰 소음을 냈던 것이다. 한여름, 영업하는 가게에서 냉장고 다섯 개를 끄고 세 번째 촬영에 들어갔다. 주인이 이 모든 불편을 흔쾌히 감수한 것은 그도 영화감독을 해본 전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똑같은 내용으로 세 번의 재촬영을 거치는 과정에서 주인장은 어떤 불평불만도 하지 않았다. 이에 감동을 받은 와보숑이 가만있을 순 없었다. 이 사건 이후로 와보숑의 뒤풀이는 그 막걸리 집에서 늘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쌓여가는 만큼이나 마을 방송을 만드는 재미도 커지고 있다. 이소영 씨의 말이다.

 

“다들 재미있어해요. 뉴스나 프로그램의 기획 회의를 할 때 카톡도 적극 활용하는데, 어떤 날은 카톡으로 회의하느라 밤을 새기도 했어요.(웃음) 다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회의에 임하는데 그게 다 내 일이고 우리 일이라고 여기기에 가능한 것 같아요. 그럴듯한 공간이나 장비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게 꼭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열정과 의지, 곧 사람의 문제거든요. 그게 있으니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영상물을 낼 수 있었던 거죠.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보고 신문방송학과 학생들이 리포트를 쓰고 싶다며 찾아오기도 해요. 우리가 회의를 수다 떨듯이 해요. 아이디어가 좌충우돌 나오는데 이게 참 재미있다고 하더라고요. 회의하는 것 같지 않다면서.”

 

 

집단 지성이 만들다

 

무엇보다 주민 주도와 주민 참여가 와보숑을 이끈다. 이소영 씨는 이것을 ‘집단 지성’이라고 표현한다. 주민들이 적극적인 의견을 내놓고 이것을 함께 조율하고 결론을 내놓기 때문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초반에 마을 뉴스를 만들면서 성북구 행사들 위주로 찍었더니 주민들로부터 문제 제기가 나왔다. 왜 뉴스 때마다 구청장 얼굴이 비치냐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부터 구청 행사 위주의 마을 뉴스를 지양했다. 그 대신 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 소소한 일상을 적극적으로 담았다. 그러자 자신들이 하고 있는 모임이나 동아리의 활동상을 찍어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왔다. 그러면서 와보숑은 성북의 명물이자 자랑거리가 되어갔다.

 

마을 뉴스를 기반으로 와보숑은 점점 방송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마을 토크쇼도 만들어졌다. 주민들의 일상을 공유하는 ‘아빠들의 수다’와 ‘언니들의 호박씨’가 그것이다. 진솔한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왔다. ‘언니들의 호박씨’는 감동과 웃음을 함께 준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높다. 이소영 씨와 PD가 되고 싶은 20대 여성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성공회의 여성 사제가 자신이 겪은 애환을 말할 때는 스태프들 모두 울음을 삼키기도 했다. 생리, 결혼 등 남자들은 알 수 없는 여자들만의 주제를 다루면서 불공정한 사회 구조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가슴속 이야기를 거르지 않고 내보냈다. 거대 미디어에서는 방송 심의 때문에 다룰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개성 있는 주민들을 찾아가는 ‘마을영상잡지 빌리진’도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프로그램이다. 첫 회에는 40년 동안 세탁일을 해온 세탁소 주인이 등장했다. 그 세월 동안 세탁소에서 겪은 일들, 이를 사위에게 물려주는 과정과 심정 등을 방송으로 내보냈다. 이를 보고 여러 주민들이 감동적이라며 한 마디씩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아, 이게 마을 미디어의 힘이군요.”

 

무엇보다 주민들이 인정하는 마을 방송이라는 것이 와보숑의 가장 큰 자랑이다.

 

“누가 아기를 안고 뉴스를 진행할 수 있겠어요? 세상에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거죠. 마을 미디어만이 할 수 있는 방송을 만드는 것, 그게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어요. 의무감으로 마을공동체 사업을 하면 안 돼요. 당위나 의무가 아니라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동력도 생기고,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지속성도 생길 수 있거든요.”

 

외주 제작 영상을 받아 방영하는 KBS ‘열린채널’에서 선보인 ‘접속, 북정마을’도 와보숑이 이룬 성과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 1년 동안 틈틈이 성북의 북정마을을 찾아갔다.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영상에 충실하게 담았다. 마을공동체가 아니라면 촬영 자체를 허락받기도 쉽지 않았을 일이었다. ‘우리마을 미디어문화교실’에서 미디어 교육을 받을 당시 팀별로 북정마을을 짧게 찍었는데, 북정마을을 자주 오가면서 주민들과 친해졌던 터라 와보숑을 만든 후에도 이들을 만나 다큐멘터리를 찍을 수 있었다. 지상파에서 방영이 된 것도 좋았지만, 그들에게 더 기억에 남는 것은 북정마을 사람들과 함께 상영회 겸 마을 축제를 가진 일이었다. 이소영 씨는 당시 경험을 이렇게 전한다.

 

“막걸리도 풀고 그랬는데 무척 좋아들 하시더라고요. 북정마을을 찍어간 사람은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마음을 함께 나눈 사람들은 없었다며…… 그러면서 다큐 속의 누가 김혜자 씨보다 연기를 잘한다는 둥, 자기를 왜 조금밖에 안 찍었냐는 둥, 자기 동네가 이렇게 예뻤냐는 둥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참 뜻 깊었죠. 이게 진짜 마을 미디어다 싶고. 상영회를 할 즈음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셨는데, 그 얘길 하면서 울컥하기도 했지만, 뭉클하면서 보람을 느꼈어요. 이건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경험이죠.”

 

이 밖에도 중증 장애인의 수학능력평가시험 도전기도 주민들에게 많이 회자되었다. 마을을 기록하는 단순한 일에서 시작했지만 이제 그들은 주민들에게 미디어 관련 교육을 제공하고 진행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고, 뉴스부터 예능, 다큐까지 못하는 것이 없는 방송이 되었다. 마을 주민 모두의 지혜와 능력이 합해져서 방송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이소영 씨가 말하는 집단 지성이었다. 그런 점에서 마을 미디어가 마을공동체 활동의 뛰어난 도구가 될 수 있었다. 나이나 경력에 따른 위계도 없고, 누가 먼저 들어왔는지 따질 필요도 없으니 민주적인 운영은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와보숑은 주민과 함께 전진한다

 

와보숑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마냥 쉽게 걸어온 것만은 아니었다. 협동조합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뚜렷한 사업 모델을 찾지 못해 주춤거리기도 했고, 또 초반에 이소영 씨에게 지나치게 일이 많이 몰려 힘에 부치기도 했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는 했지만 혼자 모든 책임을 떠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섭섭했던 기억도 있다.

 

“와보숑의 첫해인 2013년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다들 생업 때문이었겠지만, 늘 와보숑은 2순위인 거예요. 한 번은 뉴스 촬영을 하기로 한 날 앵커와 약속을 잡아놨는데 스태프 중 아무도 촬영하러 못 나오겠다는 거예요. 마침 그날이 저희 시아버지 기일이었어요. 남편에게 제사 못 지내겠다고 하고 저녁 일곱시에 촬영을 하려고 나왔는데, 마침 한 분이 촬영을 보조하겠다고 온 거예요. 그분에게 촬영을 맡기고 가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책임감이 없구나, 조직을 함부로 만들어서는 안 되겠구나, 내가 없으면 무너지겠구나 그런 기분이 들면서……”

 

1년이 지나면서 틀이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 각자의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고, 권리를 주장할 것과 책임을 질 것에 대한 인식도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해졌을까? 이소영 씨는 그 이유를 ‘수정 결정체 조직 활동’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수정 결정체 조직 활동’이란 새로운 멤버가 들어오면 그 사람이 주인공이 되도록 하는 조직 운영 방법이다. 수정의 결정체가 그런 방식으로 조직을 이룬다는 점에서 나온 용어다. 그가 마을공동체나 협동조합 등에 대해 컨설팅을 받으러 다니면서 보니 원래 멤버와 새 멤버 간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고 그것 때문에 조직의 결속과 발전이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와보숑에도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들어왔는데 새로 사람이 들어오면 그 사람을 의도적으로 여러 일에 앞장서게 했다. 새 멤버에게도 동등한 권한과 책임을 주었다. 그 결과 조직에 대한 충성도와 신뢰도가 크게 올라갔다.

 

와보숑의 규모나 매출 등 사업의 적정성을 유지할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볼 계기도 있었다. 2013년 첫해를 보내면서 8개월 동안의 결산을 해보니 영상 외주 제작, 광고비 등 그해 매출이 총 1,500만 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서 마을 방송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매출이었으나 그렇게 하기까지 엄청난 고생을 해야 했다. 영상 외주 제작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그나마 와보숑이 싼 값에 외주 제작을 해준 덕분이었다. 외주 제작 주문을 오는 대로 받아 일을 했지만 수고에 비해 대가가 열악하다면 이 일을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에 앞으로 어떻게 사업 모델을 짜면 좋을지 경영 컨설팅도 받아보았다. 생활 정보지인 《가로수》를 영상으로 만든 ‘영상 가로수’를 해보라는 컨설팅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지금의 멤버를 바꿔야 했다. 아마추어인 주민이 아니라 전문가들을 들여서 영리를 목적으로 사업을 꾸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소영 씨도 그렇고, 멤버들 모두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에서 재미도 느끼고 사회적 가치도 찾을 수 있어야 하는데, 주민들이 영리만이 목적인 일을 하려고 할까? 나와 우리의 이야기, 마을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만든 방송인데, ‘영상 가로수’ 같은 영리에 목을 맨 사업을 하게 되면 마을 미디어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마을 미디어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지속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소영 씨는 장기적이고 규칙성이 있는 수익 모델에서 답을 구하고 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아직 손에 잡히진 않아도, 그래야만 안정적으로 일을 해나갈 수 있었다. 또 놓칠 수 없는 것은 주민들과 얼마나 잘 소통하고 주민 주도로 방송을 만들어갈 수 있느냐다. 마을 미디어라면 누구라도 품고 있을 고민이다.

 

마을 방송으로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마을과 함께, 주민과 함께 전진하는 일이다. 마을 미디어는 잘 만드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어떤 이야기를 누구와 나누려고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나누는 것일 때, 마을 미디어는 마을 주민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고 주민들의 삶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미디어 교육과 활동을 통해 주민들이 직접 미디어 생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마을 미디어만의 강점이다. 미디어도 언어처럼 누구나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지금처럼 온갖 형태의 미디어로 둘러싸인 시대일수록 더욱 그렇다. 미디어 생산이 자신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미디어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미디어는 즐겁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아낼 때 빛이 난다. 내 주변에 귀를 기울이면 얼마든지 즐겁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을 와보숑은 보여준다. 말하고자 하는 욕망, 촬영하고 싶은 욕망을 실현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다. 마을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목소리를 우리의 마이크에 대고 말해보는 것의 재미, 마을살이의 재미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와보숑은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발췌 :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박재동-김이준수 지음, 샨티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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