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분야 누리집 - 서울특별시





		
		

	 
	
	

마을을 담는 신문의 분투기 마을 신문 《도봉 N》

2016.06.09
지역공동체담당관
전화
02-2133-6343

마을을 담는 신문의 분투기

마을 신문 《도봉 N》

 

11번 마을신문 도봉 IN

 

 

 

마을 신문에 대해서 뭘 알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감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마을 신문이란 게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재미있지 않을까, 마을에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한번 해보기로 의기투합한 것이 전부였다. 서울 도봉구의 주민들을 상대로 한 마을 신문 《도봉 N》의 탄생은 그러니까 이걸로 뭘 해보자는 치밀한 의도나 계획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신문 발행 주기인 한 달이 이렇게 빨리 돌아온다는 것도, 돈이 이렇게 많이 든다는 것도 몰랐다. 기사를 쓰는 것이 참 힘든 일이라는 것도 기사를 써보고 나서야 알았다. 신문을 사람들 손에 쥐어주고 읽게 하는 배포 과정이 그렇게 중요한지도 미처 알지 못했다.

 

신문을 만들어서 배포하기까지 전 과정을 꼼꼼하게 다 따지고 시작했다면 아마 《도봉 N》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5년 동안 꾸준히 신문을 내오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수익과 비용 등에서 일반적인 기업 경영이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었을 테니까. 자본주의 원리대로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가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신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문을 만드는 주민들은 보수를 덜 받거나 무보수로 일을 하고 다른 주민들은 후원을 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방식과는 다른 점들이 이곳에 작동하고 있다.

 

그렇게 마을 신문을 내기 시작한 지 벌써 5년이 되었다. 마을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만드는 마을 신문은 3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세간의 편견과 우려를 깬 햇수다. 창간 행사에서 최소한 100호까지 내보겠다는 호기어린 약속의 절반가량을 지켜서 2014년 11월 현재 49호까지 냈다.(창간준비호 1, 2호는 제외) 《도봉 N》은 어느 틈에 마을 신문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소식을 마을 사람들이 직접 전하는 매체로서, 매스미디어와 1인 미디어가 놓치는 틈을 메우고 있는 마을 신문에는 기존의 매스미디어는 담을 수 없던 마을의 생생한 소식과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이 담겨 있다. 거대 미디어들에게 사건 사고나 미담의 대상화된 이미지로서만 소비됐던 마을과 주민이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어 자기 얼굴과 목소리를 담은 매체를 자신의 힘으로 만들고 있다. 내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소한 우리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으며 누구나 마을의 유명 인사가 되어 자기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매체가 마을 신문이다.

 

 

마을 신문 해볼라꼬!

 

2009년, 마을 신문을 만들어보고 싶어 했던 도봉 주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 자리에서 도봉에서 나고 자란 이창림 씨(현재 《도봉 N》 3대 발행인)가 마을 신문을 만들어보자며 ‘바람’을 불어넣었다. 평소부터 마을 미디어를 만들고 싶어 하던 그였다.

 

이전에도 이 지역에서는 마을 신문을 내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2007년 사회복지공동기금회인 ‘사랑의 열매’의 자금 지원을 받은 도봉시민사회복지네트워크가 마을 소식지를 만들기 위한 기금을 편성해 놓았고, 이 기금을 활용해 마을 소식지 1만 부를 찍자고 논의까지 되었으나, 발행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이듬해 다시 예산이 책정되었지만 역시 불발로 그쳤다. 돈만 있다고 쉬이 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도 있고 일정 시간을 투자해야 가능한 일인데 그것들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마을 신문 만들기가 어렵나 보다 하고 다들 포기하고 있던 찰나, 이창림 씨가 작은 불씨나마 다시 지펴보고자 한 것이다. 도봉의 한 칼국수 가게에 모인 주민 여섯 명 앞에 이창림 씨가 간단한 사업 계획서를 들이밀었다. 다행히도 뜻이 모아졌고, 이들은 다시 주변 사람들을 하나둘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외부의 어떤 지원도 없고 기금도 마련돼 있지 않은 맨바닥이나 다름없는 상태였지만 가능성의 불씨가 슬슬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창림 씨는 그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마을 신문에 관심을 둔 사람들, 그중에서도 자기 일 하는 데 크게 부담이 없는 사람들을 꼬드겼어요. 신문 발행이 아니라도 뭔가 딴짓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요. 동네에 사는 현직 일간지 기자가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우리는 신문 제작 시스템을 잘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십여 명이 모여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기자를 초청해서 신문에 대한 강연도 듣고, 신문 제작을 위해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뭔지도 알아가기 시작했죠.”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었고,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 구조물이 하나둘 세워졌다. 각자 가진 재능에 따라 업무를 나누면서 《도봉 N》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그렇게 애를 써도 쉽지 않던 것이 어느 순간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열망과 열의가 모이자, 불씨는 점점 화롯불로 커져나갔다. 결국 마을 신문이 나오기도 전에 사건(?)을 터트렸다. 아직 실체도 없는 신문사 주최로 동네 마라톤 대회를 열게 된 것이다. 연유는 이러했다.

 

마을 신문을 준비하던 사람들끼리 한 신문사가 주최하는 마라톤 대회에 나가기로 했다. 막상 날짜가 다가오자 다른 마음이 싹텄다. 마라톤 대회장이 마포구 상암동에 있었는데 도봉에서 그곳까지 가는 게 살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꼭 거기까지 가서 뛰어야 해? 차라리 우리가 직접 동네 마라톤 대회를 열면 어떨까?’

 

그런 생각들이 결국 일을 저질렀다. 마을 신문 창간 명분을 내걸고 동네 마라톤 대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마을 신문을 준비하는 사람들’ 주최로 2009년 4월 ‘제1회 어깨동무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뜬금없는 동네 마라톤 대회가 신기했던지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마라톤 대회는 그저 명분이고 다들 그렇게 어떤 계기로든 만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날, 신문 발행 기금으로 10만 원을 모으는 ‘쾌거’도 이루었다. 마을 신문의 실체도 없고, 하겠다는 의지만 있는 이들에게 주민들이 모아준 그 돈은 비록 액수는 적었지만 의미는 컸다.

 

점점 마을 신문이 꼴을 갖춰나갔다. 지역 사회에서 신망을 받고 있는 시민 단체 활동가 홍은정 씨가 초대 발행인이 되었다. 그는 《도봉 N》의 초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초반 몇 달 동안 회의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한 달에 네다섯 번을 모여서 했어요. 그렇게 회의를 하면서도 회의가 끝나 집에 갈 때는 정말 우리가 신문을 만들 수 있을까 의문이 끊이지 않았죠. 그래서 마음 편히 그냥 한번 시작해 보자,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 또 이웃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모아서 일단 저질러보자, 그렇게 해서 2009년 6월 16일 처음 신문을 냈습니다.”

 

창간 준비호였다. 정말로 마을 신문을 낼 수 있는지, 내도 될 것인지 스스로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주민들의 반응도 살피고 싶었다. 운영위원회, 편집위원회, 시민 기자, 배포 자원 활동가, 후원자를 비롯해 주민 독자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 낸 첫 신문이었다.

 

창간 준비호를 ‘의외로’ 잘 만들었다는 소리가 들려왔고, 기대 이상의 반응과 관심이 쏟아졌다. 마을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한 것이 주효했다. 이에 신이 난 《도봉 N》은 다음 달인 7월에 창간 준비 2호를 내놨다. 마침내 9월에는 창간호를 냈다. 포부도 당당하게 1만 5천 부를 찍었다. 도봉구 주민이 36만여 명, 세대수로는 13만 가구, 열 가구당 한 가구 정도는 《도봉 N》을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찍은 부수였다.

 

마을 신문 하나 해보자는 이창림 씨 등의 소박한 바람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물론 시작이 곧 전부는 아니지만, 마을 신문 덕분에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늘어나면서 마을살이가 좀 더 재미있어졌다. 기획, 취재, 편집, 제작, 배포, 후원을 스스로의 힘으로 다 하는 마을 신문이 안겨준 선물이었다.

 

 

《도봉 N》, 도봉 사람들을 담다

 

《도봉 N》의 장점은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신문이라는 데 있었다. 2대 발행인인 유성종 씨의 말이 이것을 대변한다.

 

“이른바 ‘중앙 언론’은 동네의 사소한 일상을 다루지 않잖아요. 동네의 일상이 우리에게는 중요한데 중앙 언론에게는 사소한 것들이라 다뤄지지 않죠. 신문이 다루는 소재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중앙 언론에서는 사람이 아닌 사건 사고 중심이고요. 늘 그런 것에 불만이 있었어요. 그런데 마을 신문이라면 이런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실제로 《도봉 N》은 주민 한 명 한 명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마을 신문이 가장 잘할 수 있을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주민 인터뷰 코너인 ‘《도봉 N》이 만난 사람들’에는 지역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실린다. 통째로 인터뷰 기사로만 채웠다. 필요하면 밀착 취재도 했다. 교통사고로 팔을 거의 쓸 수 없는 몸인데도 폐지를 주워 근근이 살아가는 주민을 따라 다니면서 기사를 쓰기도 했다. 시민 기자의 취재 기사가 ‘특종’이 된 것도 있었다. 도봉 지역에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듣고 취재해서 기사를 올렸다. 그 기사가 나가고 며칠 뒤 전국 단위 일간지에 SSM 관련 첫 기사가 나오면서 이 문제가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주민과 마을에 밀착해 있었기에 누구보다 빨리 정보를 얻고 취재한 경우였다.

 

《도봉 N》은 마을에서 벌어진 사소한 일도 놓치지 않고 신문에 담아냈다. 아이들이 쓴 시가 실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아이들은 신문이 언제 나오느냐고 보채곤 했다. 내 이야기, 우리 이야기가 실리는 신문, 마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유가 있었다. 물론 이렇게 사소한 일상을 신문에 담아내는 것이 마냥 쉽지는 않았다. 이창림 씨는 한숨을 쉬면서도 그것을 상쇄할 만한 즐거움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신문을 낸다는 건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신문 두 번 내고 한 번 놀아요. 놀 때 우리는 가족 단위로 모이는 걸 장려합니다. 싱글이 소외받는 감이 있긴 한데, 회의도 집에서 많이 해요. 우리가 잘하는 게 ‘1회’예요. 다음에 계속 그 행사를 한다고 정하질 않아요. 마라톤, 운동회, 김장 모임 등 다음에 그것을 또 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죠.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건 없어요. 다행히 지금까지 적자는 없어요. 100∼200만 원 적자 난 것은 후원 주점 열어서 메우곤 했거든요.”

 

하지만 왜 위기가 없었을까? 《도봉 N》이 큰 적자를 내지 않은 것은 상근자 없이 각자 생업을 가진 가운데 가욋일로 신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무실도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일을 한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신문 기획과 제작을 위해 한 번씩 모이는 일도 큰일이었다. 후원 주점을 연 것도 적자를 덜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한 달에 10만 원 안팎의 적자가 쌓이면서 2년째 되는 해에는 적자액이 100만 원가량으로 늘어났다. 1만 5천 부나 되는 양을 배포하는 것도 힘들었다. 운영과 취재, 제작, 배포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이유들로 발행 부수를 1만 부로 줄였다.

 

생업이 아닌 일에 시간과 열정을 쏟는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운영은 어렵고 일은 힘드니 쉬 지치고 회의감이 들 때도 많다. 우리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인지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우리가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도 생긴다. 그것이 정상이다. 세상 모든 일은 그런 자문과 성찰의 시간을 거치면서 고비를 넘어서기도 하고 혹은 넘어져 멈추기도 하니까.

《도봉 N》은 다행히도 위기의 순간들을 넘기며 마을 신문을 매개로 사람들과 만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두 차례에 걸친 후원 주점 행사를 통해 주민들이 마을 신문에 애정이 있다는 걸 확인하면서 힘을 얻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힘들다는 생각을 털고 피로감을 떨쳐냈다. 이창림 씨는 이렇게 말한다.

 

“마을 신문을 만드는 전반적인 기조는 느슨함이에요. 편집위원들은 꾸준히 신문 발행 실무에 참여하고, 운영위원들은 1년에 한두 번 모여 방향 등을 얘기하면서 합을 맞추고 있어요. 약간의 들고남이 있지만 보통 열다섯 명 안팎이 모여서 일을 해요. 그중 10여 명은 붙박이고요. 요즘은 ‘마을예술창작소 창고’의 스튜디오를 빌려서 주로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도봉 N》이 이곳 회원으로 한 달에 5만 원씩 후원하면서 저희도 그쪽으로부터 도움을 받게 된 건데, 이렇게 서로 상생의 길을 찾고 있습니다.”

 

《도봉 N》은 신문을 만드는 일만 하지 않는다. 주민들을 서로 만나게 하고 엮는 일에도 나선다. 마을 신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주민들을 모아 강화도 역사·평화 기행을 가기도 하고, 도봉구 쌍문동과 강북구 우이동을 잇는 고개 우이령 걷기 대회를 열기도 하고, 조기축구회와 함께 마을 운동회를 열기도 했다. 평소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하자는 의미였다. 이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람도 많고 마을 일에 관심은 있는데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을 품을 수도 있었다.

 

늘 재밌고 즐거운 만남을 궁리하다 보면 그런 관심이 자연스레 마을의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와인, 커피, 드로잉, 재즈, 힙합, 여행, 동물 복지 등에 대해 배우는 ‘《도봉 N》 좋아서 하는 강좌’를 마을 안 북카페를 빌려서 열었는데, 이것이 그 마을 북카페의 인기 콘텐츠로 자리를 잡자 다른 북카페에서도 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강좌를 열면 주민들을 직접 만나 마을 신문도 알릴 수 있고, 강좌에 참석한 주민을 인터뷰해서 신문에 실을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이쯤 되면 궁금증이 일 수도 있겠다. ‘신문 한 번 내는 데 돈은 얼마나 들고, 수익은 어떻게 나지?’ 수익 구조는 별다른 것이 없다. 광고비와 후원금에 주로 기대고 있다.

 

“제호 옆에 붙는 광고가 가장 비싼데, 한 번은 도봉 지역 자활 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창업한 여성들한테서 광고 의뢰가 왔어요. 사정을 듣고 단돈 3만 원에 광고를 실어줬지요.(웃음) 우리 신문이 광고 효과가 있을까 늘 궁금했는데, 간간이 전화를 해서 광고 문의를 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초기엔 1만 원을 내면 조그맣게 광고를 내주는 ‘만원의 행복’이라는 광고란도 있었는데, 1년 정도 하다가 채워나가기가 어려워 그만뒀어요. 광고비가 한 달에 100만 원을 넘을 때도 있고, 적을 땐 30∼40만 원 정도일 때도 있어요. 1년 경비의 3분의 1은 광고비, 3분의 1은 후원금, 그리고 나머지는 어떻게든 채워요. 기본적으로 신문 발행 비용이 낮아요. 한 호당 인쇄비 등 제작비로 70만 원, 마을 신문 제작 일을 돕는 사람들에게 주는 활동비 50만 원, 발송비 조금 해서 한 달에 150만 원이면 충분히 신문을 냅니다.”

 

 

《도봉 N》은 진화한다, 계속!

 

《도봉 N》이 가진 콘셉트는 간단하다. “마을 미디어를 통로삼아 주민들을 만나자.” 마을 활동을 하다 보면 소통하고 공유하고 싶은 게 많이 생긴다. 혹은 마을에 재밌는 일이 많은데 전달이 안 돼 안타까운 경우도 있고, 하고 싶은 말을 못해서 잘못된 일이 어물쩍 넘어가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런 것을 매스미디어나 1인 미디어로 푸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마을 미디어라면 가능하다. 아울러 《도봉 N》은 힘없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신문에 담기기를 바란다. 다양한 미디어 실험도 이뤄진다. 말이 실험이지, 하고 싶은 일이면 일단 한다는 것이 이창림 씨의 설명이다.

 

“우리는 뭔가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것을 한다는 원칙도 있어요. 팟캐스트를 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 지금 팟캐스트도 하고 있는데요, 처음 신문을 내면서 100호까지 내보자고 약속했고, 영상, 라디오 등으로 확장해 가는 것도 염두에 두자고 했는데 4년 만에 하게 됐어요. 그것도 우연이었습니다. 마을에서 영상 작업하는 분을 만나 영상과 팟캐스트를 하게 된 거거든요. 마을 사람이 강사로 나서니 외부 사람을 부르는 것보다 훨씬 쉽고 주민들도 좋아해요. 강의 후에도 계속 관계를 맺을 수 있고요. 지금 《도봉 N》은 신문, 영상, 미디어를 함께 하는 종편(종합 편성채널)이에요.(웃음) ‘마을 지향 종편’이라고 우리끼리 말하죠.”

 

팟캐스트는 2013년 3월부터 시작했다. 동네 아저씨의 음악 방송 ‘선우 아빠의 After Hours’, 축구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만들고 있는 ‘K리그 퐈이아’, 떡집 사장 등 각기 직업이 다른 40대 김 씨 세 명이 진행하는 ‘이제는 3김 시대’, 국내외 마을을 전화로 연결해서 인터뷰하거나 주민을 초대 손님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는 ‘월드와이드 마마톡’ 등 마을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영상 제작도 빠지지 않는다. ‘톡톡 도마토리’ ‘보이는 마을신문’ 등을 계속 제작해서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한다. ‘캐나다와 쿠바를 다녀온 동네 언니 여행기’처럼 마을 미디어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이야기도 있다.

 

“《도봉 N》의 실험은 계속되고 있어요. 좌충우돌 우왕좌왕하면서요. 돈을 벌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마을 사람들과 꾸준히 소통할 수 있는 틀을 만들고 있는 거죠. 어떤 사람을 찾고 등장시킬 것인지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이 가장 큰 자산이니 이들을 잘 엮어야 하는데 신문 내는 데만 급급했다는 반성도 들고…… 관계를 엮어주는 일을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신문을 내면 그때그때 반응이 달라요. 앉아서 머리로 짜낸 기사나 인터넷, 전화로만 찾거나 듣고 쓴 기사는 반응이 별로지만 발품을 팔아서 쓴 기사는 반응이 좋아요. 사실 마을 신문을 종이로 내는 곳이 많지 않아요. 우리는 5년 넘게 종이 신문을 내고 있으니 특이한 경우인데, 이제 그만하자고 하다가도 연초에 워크숍을 가서는 희한하게 열심히 해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돼요. 박원순 서울시장도 구독료를 안 냈는데 신문을 보내드리고 있어요.(웃음)”

 

그렇다고 《도봉 N》이 마을 신문의 전형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마을 신문의 정해진 모델이라는 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역이나 마을의 특성과 사람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거기에 신문의 초점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 신문을 배포하는 것도 간단히 볼 일이 아니다. 배포를 꼼꼼히 하면 그것을 통해 취재거리를 물어오거나 주민과 가까워질 수 있으나 배포를 맡은 사람들도 각자 생업 때문에 시간을 충분히 낼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지금 그들은 어떻게 하면 신문 제작에 투여되는 일의 양을 줄일 수 있을지 고민중이다. 예를 들어 현재 온라인은 오프라인 신문에 나간 기사들을 정리해서 올리는 정도인데, 거꾸로 온라인 판을 제대로 만든 뒤 이를 오프라인 신문으로 발행하는 구조도 검토하고 있고, 심층적인 기획 기사로만 신문을 만드는 쪽으로 체질을 개선하는 방안도 고려하는 중이다. 이 모두 신문을 계속해서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마을 신문을 만든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동시에 재미나고 신나는 일이라는 것을 이들은 5년의 경험을 통해 깊이 체험했다. 아마도 이것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계속 마을 신문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창림 씨는 지난 5년을 이렇게 정리한다.

 

“마을 사람들이 자기 소식을 전할 수 있는 도구가 있다는 것이 참 좋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 일이 더 즐겁죠. 새로운 사람 만날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요. 함께 힘을 모아 한 호 한 호 냈을 때의 성취감도 빼놓을 수 없어요. 그런데 그것 빼고는 다 어렵네요.(웃음) 우리가 전문적으로 글을 써오던 사람들이 아닌데 독자들의 눈은 높아지고, 한정된 시간을 쪼개서 일을 하는 것도 힘이 들고요.

 

그렇다고 해서 돈이 생긴다고 다른 지원 사업을 받아서 하면 안 돼요

 

. 그런 일 하느라고 에너지가 분산되면 더 힘들어지거든요. 그보다는 계속해서 우리가 왜 마을 신문을 만들고 싶어 하는지 고민하고 이야기하면서 안정적으로 신문을 낼 수 있는 방안을 찾고 구조를 만들어가야 해요. 오프라인 신문 말고도 다른 툴이 있으니 그런 것을 잘 활용해서 구조를 만들어봐야죠. 우리는 출발이 오프라인이라 그걸 갑자기 바꾸기 어려운 면도 있는데, 신문, 영상, 팟캐스트 등이 서로 유기적으로 엮이도록 만들어가야겠죠. 우리 스스로 답을 잘 찾아야 합니다.”

 

《도봉 N》은 미디어가 주민 개개인의 삶과 마을의 일상에 자연스레 스며든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어려움이 있음에도 마을 신문은 서울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2014년 4월에는 《도봉 N》이 다른 마을 신문들에게 제안하여 ‘전국마을신문네트워크’ 모임이 처음 열리기도 했다. 100명이 지리산에 모여 1박2일 동안 서로의 애환과 즐거움, 노하우 등을 함께 나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도봉 N》을 찾았을 때 그들 앞으로 전국 곳곳의 마을 신문이 배송되어 있는 것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혹은 너의 이야기, 마을의 이야기를 시시콜콜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 마을 신문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면 우리가 좀 더 서로를 연결된 존재로 인식하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지금 당장 내가 가볼 수 없는 곳에서 일어난 사소하지만 소중한 이야기를 만나고 싶어졌다.

 

 

 

 

 

발췌 :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박재동-김이준수 지음, 샨티출판사 펴냄)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 상업적 이용금지, 변경금지

댓글은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서울시 정책에 대한 신고·제안·건의 등은
응답소 누리집(전자민원사이트)을 이용하여 신청해주시기 바랍니다.

댓글이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저작권 침해 등에 해당되는 경우
관계 법령 및 이용약관에 따라 별도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