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분야 누리집 - 서울특별시





		
		

	 
	
	

‘따로 또 같이 살기’의 신공이 궁금하다면 <은실이네>

2016.06.15
지역공동체담당관
전화
02-2133-6343

‘따로 또 같이 살기’의 신공이 궁금하다면

은실이네

 

6번 은실마을

 

 

 

 

 

많은 한국인에게 집은 애증의 대상이다. 개발과 성장의 시대를 거치며 ‘내 집 마련’이라는 말은 거부할 수 없는 명령 같은 것이 되었다. 집의 소유를 향한 욕망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할 정도다. 그런 과정에서 집은 ‘사는living 곳’이 아닌 ‘사는buying 것’이 되어버렸다.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재산 증식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당연히 집을 둘러싼 사회적 비용은 커져만 갔다. 급기야 가계 부채 1천조 원 시대가 되었고, 서민들에게 빚은 당연한 게 되었다. 이제 서울에서 집은 평생을 뼈 빠지게 일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끊임없이 금융 비용을 물어야 하는 ‘하우스 푸어’가 되거나 부모 등으로부터 집이나 돈을 물려받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집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나타났다. 이른바 셰어하우스share house다. 집을 소유하는 것에 대한 반발과 포기도 일부 있겠지만, 다른 삶과 생활의 양상을 꿈꾸는 사람들로부터 비롯된 새로운 형태의 집이다. 여럿이 한 집에 산다. 침실과 같은 사적인 공간은 따로 쓰지만, 거실과 주방, 화장실 등은 공유한다. 즉 따로 또 같이, 혹은 같이 또 따로 산다. 사적인 공간과 공유 공간이 공존하는 주거 형태이다.

 

그러나 셰어하우스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셰어하우스는 ‘공통 주택’이라는 말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이 번역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좀 더 다양한 뜻을 품는다. 집을 소유한다는 것에 대한 기존의 관점이 여기에는 없다. 소유하지 않아도 함께 사용하고 머물 수 있는 집이 셰어하우스다. 내 집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나만 사용하는 집도 아니다. 자유와 독립이 있되, 친밀감을 품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산다. 덕분에 독립생활자들의 보금자리로 점점 주목을 받고 있다. 기존의 가구 유형 분류를 중심으로 하는 각종 주택 정책 하에서 머물 곳 없던 독립생활자들이 서로 뭉칠 수 있는 공간이다. 각자 가지고 있는 돈을 모아서 집을 구입하거나 임대하기도 하며, 셰어하우스를 목표로 부지를 사서 집을 짓는 경우도 있다.

 

 

셰어하우스, 은실이네

 

퍼머컬처permaculture(1970년대 호주인 데이비드 홈그린David Holmgren과 빌 몰리슨Bill Mollison이 ‘영구적인’이라는 뜻의 단어 ‘PERManent’과 ‘농업’이라는 뜻의 단어 ‘agriCULTURE’를 조합하여 만든 단어이다. ‘지속 가능한 식량 생산(농업)’ 전략을 찾는다는 본래의 뜻에서 좀 더 다양한 의미로 진화하면서 일종의 운동의 성격도 띠게 되었다. 지구의 한정된 자원으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모든 국면의 생활 양식을 아우르는 운동이면서 ‘자연의 양식(패턴)을 본받아 인류의 서식지를 지속 가능하게 창조하는 운동’으로도 표현한다.) 디자이너 ‘소란’(닉네임) 씨가 사는 곳도 셰어하우스다. 서울시 은평구에 자리한 이 집은 ‘은실이네’라고 불린다. ‘따로 또 같이 살기’를 실천하는, 삶과 생활의 많은 것을 공유하면서 그것을 통해 비슷한 가치관으로 엮인 공동체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은실이네는 다섯 명의 식구가 있고요, 이름이 그렇게 붙여진 것은 고양이 이름이 은실이여서 그래요. 사는 사람은 모두 여성들인데, 서로가 서로를 구조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들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어요. 돈을 많이 벌지 않고, 벌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우린 우리를 ‘자가 고용’했다고 말해요. 조금 벌고 잘 놀아보자는 거죠.”

 

은실이네의 독립생활자 다섯 명은 은평구의 2층짜리 단독 주택에 산다. 여성주의 동아리에서 만난 그들은 2011년 이곳에 함께 둥지를 틀었다. 시민 단체 활동가나 프리랜서 등으로 일하면서 적은 급여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셰어하우스를 생각해 냈다. 자기만의 집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그보다는 자기만의 삶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자기만의 집’이 아니라 ‘자기만의 방’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하자 여러 명이 한 공간에서 따로 또 같이 사는 것이 가능한 일이 되었다. 다섯 사람에게 다섯 개의 자기만의 공간이자 침실이 할당되었다. 공유 공간인 화장실은 세 개나 있었고, 식당은 혼자 끼니를 때우는 곳이 아니라 함께 밥을 먹는 공간이 되었다. 무엇보다 마당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거기에 텃밭까지 갖춘 ‘우리’의 집이 되었다.

 

집은 겉에서 보기에는 부잣집같이 번듯하다. 그렇다면 이것이 궁금할 만하다. 어떻게 이 집을 마련했으며, 생활비는 얼마나 들까? 다섯 명이 함께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각자 출자를 하는 과정에서 빚을 졌다. 각자 형편에 맞춰 이자를 내고 그 돈으로 빚을 갚으면서 산다. 그래도 보통 월세보다 적은 비용이 든다. 모든 셰어하우스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적은 비용이 드는 것은 은실이네만의 장점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혼자 살면 버리게 되는 남은 음식이나 식재료를 최소화하고 같이 살면서 필요한 생활용품 등 많은 것을 공유함으로써 생활비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 한 사람당 매달 임대료와 생활비로 30만 원가량을 내면 충분하다는 것이 소란 씨의 설명이다.

 

그래서 살림살이도 공동으로 기록하고 관리한다. 각자에게 걷은 공동 생활비가 있다. 이 돈으로 동네 생활협동조합에서 장을 보거나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산다. 매달 상조회비로 1만 원씩 걷어 함께 사는 사람들의 경조사에 대비하기도 한다. 각자의 재능을 활용함으로써 지출을 줄이는 것도 셰어하우스의 장점이다. 가령 퍼머컬처 디자이너인 소란 씨는 자신의 직업적 특성을 활용해 텃밭에서 기른 작물로 음식을 차려내는 역할을 한다. 숫자에 밝은 친구는 총무를 맡아 은실이네의 전반적인 살림을 꾸린다. 공동의 관심사인 인문학도 함께 책을 읽거나 특정 주제로 토론을 하면서 그 갈증을 채워간다.

 

이런 과정에서 은실이네만의 철학도 생겼다. 조금 벌더라도 일을 많이 하지는 말자! 이 사회가 은연중 요구하는 소유(특히 집!)에 대한 강박을 놓자 삶이 훨씬 풍족해졌다.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해 애를 쓸 필요도 없다. 나와 우리의 삶을 좀 더 되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셰어하우스는 심각한 주거 문제의 대안으로 일본에서는 어느 정도 보편화되어 있다. 캐나다나 네덜란드, 벨기에 등 유럽 국가의 도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자기만의 공간을 지키면서 동시에 어울려 사는, 일종의 공동체 생활이 독립생활자들의 구미에 맞으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셰어하우스가 확산된 것이다. 독립적으로 살면서도 고립되지 않을 수 있는 주거 형태가 셰어하우스다. 일본에서는 아파트나 주택에 여럿이 모여 사는 형태가 주를 이루나, 우리나라는 낡은 집을 조금 손보거나 셰어하우스를 위해 아예 세련된 공간을 지어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적은 돈으로 주거 환경의 질을 높이는 쪽이다.

 

물론 적은 돈으로 집을 마련하다 보니 문제가 없지는 않다. 은실이네도 지은 지 오래된 집이라 비가 많이 오면 새기도 하고, 겨울에는 외풍이 세서 춥다. 그러나 이때도 셰어하우스의 장점이 발휘된다. 여럿이 모여 머리를 맞대면 적절한 대책이 찾아지는 법! ‘적정 기술’(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란 정치적·문화적·환경적 조건 등을 고려한, 해당 지역에 최적화된 기술을 뜻한다. 굳이 첨단 기술이 필요하지 않으며 해당 지역이나 장소, 상황에 맞는 간단한 기술이다.)을 활용해 집을 고침으로써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생활의 불편함을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 함께 살기에 나의 불편함, 우리의 불편함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이것을 풀기 위해 함께 궁리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

 

이런 셰어하우스는 새로운 가족과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역할도 한다. 은실이네도 그렇다.

 

소란 씨의 과거는 지금과 같지 않았다. 죽어라 일만 하는 ‘워커홀릭’이었다. 어느 순간, 이렇게 살다간 죽겠다 싶었다. 전 재산을 뺐다. 그러고는 외국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온전히 나만을 위해 살았다. 그러면서 공부도 하고 틈틈이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자신을 추슬렀다. 그렇게 3년을 보낸 뒤 한국에 들어왔다. 문제는 수중에 더 이상 돈도 없고, 돈이 별로 없으니 살 집을 마련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은실이네에서 살고 있던 친구들이 같이 살자며 불렀다. 그는 그것을 ‘긴급 구조’했다고 표현한다. 서로가 서로를 구조하는 관계,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었다.

 

은실이네는 냉장고를 통해 마을의 사람들과 소통하기도 한다. 마을공동체와 관계를 맺고, 스스로 마을공동체의 부분으로 역할을 한다. 은실이네 근처에 살던 사람이 이사를 가면서 냉장고를 건넨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은실이네는 이 냉장고를 자신들만의 것으로 쓰지 않고 ‘마을 장독대’로 활용하기로 했다. 덕분에 집에 김치 따위를 놓을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이 은실이네 냉장고를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 김치를 가지러 오는 주민이 하루에 한 사람 정도씩은 꼭 있단다.

 

그런데 여기에서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김치를 가지러 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실이네에 식재료나 먹을 것 등 뭐라도 하나씩 주고 갔다. 또 김치를 가지러 온 사람들은 이것저것 이야기도 풀어놓게 마련이다. 마을 소식이 은실이네로 모였다. 자연스럽게 은실이네는 마을의 공유 공간, 마실방이 되었고, 냉장고는 ‘커뮤니티 냉장고’(공유 냉장고)로 기능을 하게 되었다.

 

은실이네는 텃밭에서 나온 작물을 나누는 것으로 보답했다. 이들은 텃밭 농사에서 그치지 않고 뒷산에서 도토리를 주워 쿠키나 빵을 만들기도 하고 풀을 뜯어다 나물을 무쳐먹기도 한다. 은실이네 텃밭에 각종 토종 종자를 심고 키우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직접 침을 놓고 뜸을 뜨면서 자가 치유도 한다. 이 모든 것을 같이하면서 건강한 식탁도 나누다 보니 아플 일이 없다고 소란 씨는 자랑한다.

 

은실이네가 마을에서 스스로 자리매김한 콘셉트가 있다. 소란 씨의 표현을 빌자면, ‘동네 그지’(동네 거지)다.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마을의 많은 사람들한테 보살핌을 받고 그들을 통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도 찾는, 마을에 젖어든 동네 그지, 맞다. 은실이네가 생각하기에, 돈이 넉넉지 않다 보니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기도 하지만 거지도 마을의 구성원이다. 누구도 배제하거나 배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 보살피고 돌보는 것이 일상화된 마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은실이네는 ‘동네 그지’라는 콘셉트로 자신들을 표현했다.

 

“우리 ‘동네 그지’를 도와주는 사람들은 곧 마을 사람들, 친구들이에요. 거지라도 마을에서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꼭 남과 비교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게 바람직한 것도 아니고.”

 

비록 ‘동네 그지’로서 은실이네가 동네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지만, 은실이네 또한 자신들이 먹을 분량을 제외한 나머지 작물은 마을 사람들과 나눈다. 소변을 받아 발효시킨 퇴비로 키운 텃밭의 작물이나 그것으로 만든 음식을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기도 한다. 은실이네와 마을 사람들이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는 모습이 옛 마을 풍경을 연상시킨다. 마을에는 그래서 은실이네를 중심으로 그린 먹을거리 지도가 있다. 마을 안에서 내가 먹는 것들이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살펴볼 수 있는 지도다. 그것을 통해 마을의 관계도가 자연스럽게 그려지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를 구조해 주고 먹여주는 관계가 마을 안에 형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지도인 셈이다. 그리고 생명의 선순환이 이뤄지는 공간의 중심에 은실이네가 있다.

 

그 덕분에 은실이네 독립생활자들의 혈연 가족들도 걱정을 던다.

 

“비혼(‘미혼未婚’이 ‘혼인은 원래 해야 하는 것이나 아직 하지 않은 것’의 의미가 크기 때문에 자발적인 개인의 선택에 의해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의 ‘비혼非婚’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이 늘고 있다. 결혼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보는 시각에서 비롯됐다.)의 30대 여성 다섯이 모여 사니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사는 걸 보고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으세요. 가족들이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잘 차려먹거든요. 또 우리는 위기에 처한 사람이 생기면 긴급 회의를 해서 그 사람을 받아주기도 해요. 구조 프로그램을 상시적으로 운영하는 거죠. 누군가는 혈연도 아닌데 아프면 누가 챙겨주느냐고 묻지만 아프면 옆방 친구가 돌봐주고 병원에도 함께 가줘요. 행동반경을 같이하는 사람이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이유

 

은실이네는 많은 것을 공유하지만 절대 공유하지 않는 것이 있다. ‘자기만의 방’이다. 은실이네의 유일한 원칙이 “방 하나에 한 사람씩”이다. 이 원칙에 대해 들으니 버지니아 울프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울프는 당당해지고 싶은 여성이라면 생활의 자립을 꾀할 수 있는 경제적인 소득과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사색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은실이네의 방이 바로 울프가 이야기한 그 ‘자기만의 방’인 셈이다.

 

이렇게 ‘따로 또 같이’ 살면서 많은 것들을 공유하지만 그렇다고 늘 사이가 좋을 수만은 없다.

 

“가끔 싸우기도 해요. 일 분배를 놓고 하고 싶은 일이 다를 때가 있거든요. 특히 화장실 청소나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일 같은 것은 다들 잘 안 하려고 하죠. 하지만 그렇게 싸우면서 여유롭고 우아하게 배분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해요. 그 핵심은 보살핌인 것 같아요. 서로를 보살피면서 공간을 공유하는 게 마냥 쉽지는 않지만, 힘들고 지칠 때 가까이 있는 친구가 보살펴주는 느낌이 참 좋아요. 마을의 여러 일을 함께 꾸미고 집에서 워크숍이나 행사도 하면서 섞여 사는 재미도 있고요.”

 

그렇다면 의문이 하나 든다. 은실이네는 왜 남자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처음 이 집의 콘셉트를 잡을 때부터 남자는 들이지 않겠다고 했어요. 솔직히 남자는 문제가 많잖아요.(웃음) 그래도 남자도 함께하는 공동체 활동도 하고 있어요. ‘명랑시대’라고. 도시와 시골 청년들이 만나서 시골에서 공동체로 살기 위해 준비하는 모임인데, 공동의 펀드를 모금해 땅을 사려고 하고 있어요. 모임과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 서울이 아니라서 그런지 남자들이 많이 와요. 그런데 남자들은 공동체로 사는 것에 어떤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막상 공동체에 참여하기 시작하면 남자들도 잘 적응하는 것 같긴 해요. 우리 마을에도 남자들의 셰어하우스가 생겼어요. 여성도 받겠다고 했는데, 여성이 가지는 않더라고요.”

 

소란 씨의 이야기를 듣자니,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떠올랐다. 알렉산더 대왕이 소원을 말하라고 하자, “좀 비켜줘. 햇볕 좀 쬐게”라고 말했다는 그 철학자 말이다. 디오게네스가 은실이네를 본다면 감탄하지 않을까?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말했었다. “결혼이란 쓸데없는 것이며, 따라서 여자들도 자기들의 공동체를 가져야 한다.”

 

1인 가구의 수는 갈수록 늘고 있지만 그에 비해 주거 공간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거주 공간을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지 않다. 비싼 주거 비용을 감당하려면 삶의 다른 면이 위축되고 힘들어진다. 독립을 원하지만 고립의 골만 깊어진다. 먹을거리는 부실해지고 몸과 마음은 피폐해진다.

 

셰어하우스는 그런 면에서 충분히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고립이 아닌 독립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안전이나 정서적인 문제에서도 혼자 사는 것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셰어하우스를 통해 마을에 젖어든 은실이네가 그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주거 문제는 복지나 노동 등 다양한 분야의 사회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셰어하우스가 은실이네처럼 마을이나 지역과 관계를 맺어나간다면 단순한 주거 문제 해결 이상으로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셰어하우스의 형태가 은실이네와 같은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셰어하우스를 내세우면서 입주자를 모집하는 경우도 있고, 빈집을 리모델링하여 셰어하우스로 꾸민 경우도 있다. 독립생활자들이 협동조합 주택을 만들기도 한다. 셰어하우스가 반드시 마을과 관계를 맺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셰어하우스는 내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우리의 획일적인 인식에 금이 가게 만든다. 내 집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빚을 지고서 원금과 이자 부담 때문에 빈곤에 허덕여야 하는 ‘하우스 푸어’가 이미 사회 문제가 된 이때, 은실이네는 이렇게 질문하게 만든다. “집을 소유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은실이네는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따로 또 같이 사는 재미와 행복을 품고 있다.

 

 

 

 

 

발췌 :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박재동-김이준수 지음, 샨티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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