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분야 누리집 - 서울특별시





		
		

	 
	
	

‘어울려 먹기’를 통해 마을에서 할 수 있는 것 <수문잡방>

2016.06.15
지역공동체담당관
전화
02-2133-6343

우리는 마을에서, 먹는다 음식 공유, 마을 공동체의 출발점

‘어울려 먹기’를 통해 마을에서 할 수 있는 것

수운잡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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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하나, 시끌벅적하다.

 

아베 야로의 인기 만화 《심야 식당》을 원작으로 만든 일본 드라마 <심야 식당>이 상영된다. 화면 속 음식과 동일한 음식을 해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맺는 시간이다. 자신의 지혜와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온라인 플랫폼 위즈돔www.wisdo.me을 통해 한 직장인이 개설한 ‘심야 식당’의 모습이다. 동네방네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였다.

 

요리는 가츠돈이다. 이날 <심야 식당>에 나온 메뉴이기도 하다. 지글지글 탁탁탁, 음식 만드는 소리와 향이 어우러지는 와중에 수다도 빠질 수 없다. 이른바 ‘먹방’ 전성 시대를 실감케 한다. 그렇다고 수많은 맛집 블로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부한 사진 속의 음식이 아니다. 음식을 앞에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하하호호 웃는 소리, “맛있다”고 감탄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올 즈음 모두에게 맥주가 한 잔씩 돌아간다. 여자와 남자 비슷한 성비로 모인 십여 명의 사람들이 맥주 한 잔씩 들고 건배를 외친다. 만화 《심야 식당》과 드라마 <심야 식당>을 좋아하는 20∼30대가 공통의 관심사로 모여 있다 보니 쉽게 친해진다.

 

음식 품평도 빠지지 않는다. “진짜 맛있어요.” “식당 차려도 되겠어요.” 이날 심야 식당의 셰프로 변신한 한 남자 회사원은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심야 식당의 밤이 깊어간다. 배경 음악까지 죽인다. 밴드 ‘장미여관’의 <봉숙이>. 우리 봉숙이, 잘 지내고 있을까? 누군가 옛 사랑이 생각나는지 데킬라 한 잔 더 청한다. 밤이 그렇게 깊어간다.

 

장면 둘, 왁자지껄하다.

 

사람들의 대화가 도란도란 흘러넘치고, 무엇보다 후각과 미각을 현혹하는 음식 향이 퍼진다. 먹을거리 분야에서 난다 긴다 하는 ‘선수’들이 모였으니 오죽하리오. 라인업이 화려하다.

 

고은정 약선 요리 연구가,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김경애 요리사, 박상현 맛 칼럼니스트, 고영주 쇼콜라티에, 정은정 사회학 연구가, 이호준 <식객> 스토리 작가, 박성경 도서출판 따비 대표 등 스무 명 넘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먹는 것이 곧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요리하는 인간’, 즉 호모 코쿠엔스Homo Coquens들의 잔치다.

 

서울 마포구에 소재지를 둔 ‘삶과먹을거리협동조합 끼니’의 조합원들이 벌이는 ‘맛 콘서트’ 행사 후 가진 송년 모임 자리인데, 호모 코쿠엔스들의 모임에 맛있는 음식이 빠질 수 있으랴. 무엇보다 음식은 개인과 사회 집단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 요소가 아니던가. 동지팥죽과 동치미, 도쿄식 김밥, 제철 방어회, 남원 흑돼지 족발 수육, 석화(굴), 부산에서 당일 생산되어 올라온 어묵과 스지, 은평구의 한 마을에서 당일 생산된 두부, 국산 호두·우리 밀·국산 팥앙금으로 만든 광덕 호두과자, 초콜릿,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초코 브라우니, 술(호산춘과 화개장터 무감미료 막걸리) 등 푸짐한 상이 차려졌다. 모두들 군침을 삼킨다. 꿀꺽.

 

사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는 그저 본능에 따라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문화적인 것이다. 먹을거리를 허투루 다룰 수 없는 이유다. 그러니까 협동조합 끼니는 이렇게 물으며 바른 먹을거리 문화를 찾고 나누려는 집단이다. “당신의 먹을거리는 안녕하십니까?”

 

 

무언가를 함께 먹는다는 것 위의 두 장면은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자리한 ‘수운잡방需雲雜方’에서 펼쳐진 풍경들이다. 수운잡방은 커피 노동자들이 함께 만든 노동자(직원)협동조합 ‘적정기업 ep coop(이피쿱)’의 구성원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 공간을 자신들의 일터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공간을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나서 뭔가를 나누는 장소로 활용되기를 바랐고, 그래서 그 공간을 ‘마을’ 사람들에게 활짝 개방했다. 누군가는 코워킹co-working 공간으로 활용하며, 누군가는 함께 요리를 하고 음식을 나눠 먹는 장소로 사용한다. 파티를 여는가 하면, 워크숍이나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한다.

 

이곳에선 먹을거리를 중심으로 작당하고 모의하면서 세상과 삶을 바라보고 읽는 움직임이 눈에 두드러진다. 수운잡방이 무엇보다 먹을거리를 나누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기도 한데, 대표적인 것이 ‘심야 식당’이나 ‘끼니’ 같은 모임이다. 그들은 수운잡방에 모여서 제대로 먹는 즐거움을 공유한다. 물론 먹는다는 것이 단지 음식을 먹는 것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입이 열리면 마음이 열린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된다. 먹는 것을 통해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다.

 

수운잡방의 커피 노동자 중 한 명이기도 한 나는 ‘함께 먹는’ 행위의 마술(?)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20대에 처음으로 경험한 첫사랑을 통해서였다. 첫 번째 사랑과 맺어진 매개는 커피였다. 아마 그것이 지금의 나를 커피 만드는 사람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함께 먹는 행위는 이후의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더욱이 그 상대가 첫사랑의 연인이었으니 더 그러했을 것이다.

 

그날 함께 마신 커피가 어떻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고, 그 기억이 어떻게 내 삶을 흔들어놓았는지 그 순간을 짧게 이야기해 보고 싶다.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나는 누군가의 뒤에서 광채나 후광이 보인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한데 그런 순간이 닥쳤다. 우리는 미국의 한 작은 도시에 어학 연수를 가서 만났고, 고향이 같다는 이유 등으로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가을의 주말 그녀는 카메라를 사고 싶다며 시내에 함께 가서 카메라 고르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싶었다. 햇살을 등지고 걸어오는데, 뭐랄까 눈이 아득해졌다. 하늘거리는 원피스와 파란 빛깔의 재킷, 얼굴을 감싸는 챙 넓은 모자와 푸른 선글라스로 한껏 분위기를 낸 모습이 햇살과 뒤범벅되어 보이는 순간, 내 입에서 아주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심장은 박동 속도를 높이더니 쿵쿵쿵 우렁찬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이었다. 그건 교통사고 같은 ‘사랑 사고’였다. 그렇게 작동한 심장을 부여잡고, 시내를 거닐다가 우리는 백화점 옥상에 위치한 커피하우스를 찾았다. 그곳의 커피 한 잔 가격은 25센트. 가난한 학생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착한’ 가격이었다. 25센트 커피 두 잔을 시켜놓고 처음으로 서로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풀기 시작했다.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앉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기는 처음이었다.

 

그야말로 주절주절 대면서 나는 25센트짜리 커피에 흠뻑 취했다. 커피 향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처음 느꼈다. 그것은 이끌림이었다. 그 커피 향엔 내 설렘이 가미됐고, 나의 첫사랑은 그렇게 커피와 함께 시작되었다. 가을날의 달콤한 햇살도 나의 연정을 부추겼을 것이다. 모든 타이밍은 그렇게 맞아떨어졌다. 가을날, 햇살, 주말, 다운타운, 예쁜 커피 하우스, 25센트 커피 한 잔,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

 

아마도, 그 커피 한 잔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커피를 빼고는 그녀를 기억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기억을 품고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순간을 선사하는, 관계를 맺게 하는 커피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중요한 것은 관계였다. 커피를 마실 때도, 밥을 함께 먹을 때도, 무언가를 함께 먹는 것은 ‘관계’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그때 가슴으로 알게 되었다.

 

 

마을아, 밥 한 끼 하자!

 

나는 그렇게 커피를 비롯한 먹을거리를 통해 사람들이 관계를 만들어가도록 도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를 함께 먹으면서 얻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즐거움이라면!

 

그런 면에서 수운잡방을 커피를 만들고 제공하는 공간이자 주방을 갖춘 공간으로 꾸민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음식을 함께 만들고(커뮤니티 키친), 음식을 함께 먹는(소셜 다이닝) 공간, 그리하여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인류사를 돌아봐도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밥을 함께 먹는 것은 기본적인 신뢰가 깔려 있음을 보여주는 행위였다. 서양에서 유래된 건배의 풍습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되었다. 술에 독을 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건배를 한 것이다. 그래서 “밥 한 번 먹자”는 말 뒤에는 식사 한 끼가 주는 신뢰의 공유가 있다. 밥을 같이 먹을 때 우리는 밥만이 아니라 삶의 이야기도 나누게 마련이고, 따라서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의 삶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 함께 무언가를 먹는 행위를 통해 공동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수운잡방을 연 것은 그런 ‘관계’들이 이 공간을 통해 만들어지기를 꿈꾸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정무역 커피를 다루는 것도 그런 맥락과 닿아 있었다. 커피 산지의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만이 공정무역은 아니다. 공정무역은 생산자의 노동과 삶을 생각하게 만들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따로 떨어진 관계가 아니라 연결된 관계임을 알게 한다. 보이지 않지만 그것을 생산한 사람을 상상하는 능력이 공정무역의 또 다른 의미일 것이다. 그런 공정무역 커피를 맛있게 로스팅하고 먹을거리를 통해 또 다른 관계들을 만들어나가는 공간이 수운잡방이다. 단순히 맛있는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맛’이라는 열쇠말로 공부도 하고, 모여서 쑥덕공론이라도 나누고 싶었다.

 

수운잡방에서 ‘맛 콘서트’가 열리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가짜 맛에 길들여진 미각에 본연의 참맛을 일깨우는 내용의 강연과 테이스팅(맛보기)이 함께 진행되는 식문화 프로젝트다. 수운잡방에서는 2013년 한 해 총 16회의 맛 콘서트가 열렸고, 700여 명이 참여했다. 맛에 대한 새로운 시각, 먹을거리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갈구하던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맛 콘서트 결산 파티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했다. “먹는 것이 달라졌어요.” 먹는 것이 달라지면서 삶이 달라졌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먹고사는 것이 달라진 사람들이 서로서로 자연스럽게 관계를 형성해 갔기 때문이다.

 

우리는 ‘산다’는 말보다 ‘먹고산다’는 말을 더 자주 사용한다. “살기 힘들다”고 말해도 될 것을 “먹고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먹는 것과 사는 것은 결국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먹는다는 것이다. 속담에서도 그것을 엿본다. “사흘 굶으면 포도청의 담도 뛰어넘는다.” 도덕도, 정치도, 경제도 모두 먹는 것 다음이다.

 

수운잡방의 장 담그기 프로젝트도 빠질 수 없다. 내 손으로 직접 담가서 먹는 ‘우리 장 아카데미’는 주민들의 좋은 호응을 얻었다. 인근 주민들이 매주 한 번씩 모여서 장 만들기와 요리 실습을 함께 하고, 장을 어떻게 하면 잘 만들어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직접 실천해 보는 프로젝트였다.

 

아카데미가 끝났어도 사람들의 관계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수운잡방이 위치한 건물의 옥상에 장독대를 놓고 장을 발효시키는 과정을 함께하는 한편, 매달 한 차례씩 수운잡방에서 커뮤니티 키친을 진행하기도 했다. 장을 함께 담그며 새로 형성한 관계를 계속 이어갔다.

 

 

이렇게 ‘어울려서 요리하고 먹는’ 즐거움이 주방에서 시작해 마을로 이어진다. 몸을 움직여 함께 먹을거리를 만드는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도 마을공동체의 출발점으로 손색이 없다. 수운잡방에서 가끔 파티나 잔치가 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함께 먹으면서 마을의 대소사를 나눈다. 떡국을 끓여 먹으며 마을 신문 만들기 모임도 열고, 동네 친구들이 모여 요리 자랑도 한다. 각자 먹을거리를 하나씩 들고 와서 마을 주민이나 지인과 나누어 먹는 포트럭 파티도 빠질 수 없다. 함께 협동조합 교육을 받은 사람들끼리 파티를 열기도 하는데, 그들은 이런 자리를 통해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서로의 유대를 더욱 깊게 해나간다.

 

이처럼 수운잡방은 밥 한 끼 하자는 말에 담긴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함께 어울리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앞서 말했지만, 먹는 행위에 우선할 수 있는 행위는 없다. 그럼에도 먹는 것에 견줄 만한 행위가 있다. 말하기다. 먹기와 말하기, 이 두 행위는 자세히 보면 통하는 면이 많다. 모두 입과 혀를 거친다. 음식은 입을 통해 들어오고, 말은 입을 통해 나간다. 혀는 자신이 먹고 즐겼던 것을 언어로 다시 돌려준다. 먹는 것과 말하는 것은 그렇게 얽혀 있다.

 

먹으면서 말을 섞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공간으로 기능하는 수운잡방은 ‘만남의 장소’ 혹은 ‘가능성의 장소’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 마을, 어느 지역이나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는 장소가 꼭 필요하다. 그래서 마을회관이나 노인정, 놀이터 같은 공유 공간이 중요하다. 접촉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수운잡방은 그런 만남을 위한 매개로 먹을거리를 택한 것이다.

 

그리고 수운잡방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뜻밖의 선물을 주어진다. 바로 맛있는 공정무역 커피 한 잔. 외부 단체에 단순히 공간을 대여한 경우를 빼고는, 누구나 수운잡방에 오면 커피 한 잔씩 무료로 마실 수 있다. 수운잡방의 문이 열려 있는 시간이라면 너 나 할 것 없이 그냥 불쑥 찾아가 커피 한 잔씩 먹어도 좋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수운잡방을 다시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을 때마다 수운잡방을 찾는다는 인근의 회사원도 있다.

 

그 외에도 수운잡방은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서스펜디드 커피 운동은 약 100년 전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지방에서 ‘카페 소스페소Caffe Sospeso’(맡겨둔 커피)라는 이름으로 전해오던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거의 활성화되지 못하다가 2010년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에 즈음해 이탈리아에서 ‘서스펜디드 커피 네트워크’란 페스티벌 조직이 결성되면서 다시 부활했다. 방식은 이러하다. 카페에서 고객은 자신이 마신 커피 값뿐 아니라 다른 이의 커피 값까지 미리 낸다. 카페는 누군가 대신 내놓은 커피 값이 있다고 표시를 해두고, 그러면 지나던 노숙인이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그것을 먹을 기회를 얻는 것이다. 최소한 먹는 것만큼은 자연스럽게 먹을 수 있게 하자는 생각에서 나온 운동이다. 현재 미국·영국·호주·캐나다 등 세계 전역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불가리아에서는 150개 이상의 커피 전문점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미리내’라는 이름의 가게가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다.)를 생각하고 있다. ‘맡겨두는 커피’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커피 한 잔이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는 이웃을 위해 미리 커피 값을 지불해 두는 것이다.

 

수운잡방은 이처럼 마을 주민들이 공간을 함께 쓰면서 커피를 비롯한 음식을 나누고, 이를 통해 마음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관계들을 만들어가는 공간이 되기를 꿈꾼다.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관계가 있고, 세상살이의 크고 작은 즐거움들까지 함께 나누며, 함께 먹는 것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곳.

 

물론 한 자리에 앉아서 먹는다고 해서 마음이나 삶까지 ‘함께’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커피하우스나 식당에서 한 자리에 앉아 있지만, 각자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다른 세상과 ‘접속’하는 풍경을 요즘 흔하게 본다. 내 앞의 혹은 내 옆의 사람과 접촉하지 않고 다른 세상과 접속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 함께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또 하나, 오늘날 세상에는 먹을거리가 너무 풍부해졌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먹을거리와 그것을 생산하기 위한 노동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잊고 산다. 수운잡방에서 열리는 먹을거리 관련한 강연이나 세미나, 포럼을 비롯한 커뮤니티 키친 등은 그런 고마움과 미안함을 품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을 되살리자는 취지로 수운잡방은 탄생했고 운영되고 있다. 함께 먹으면서 나누는 즐거움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탐식과는 다르다. 맛있는 음식만 찾아다니는 것이 탐식이라면, 음식에 담긴 삶과 세상을 맛보는 것은 미식이다. 수운잡방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이런 미식의 즐거움이다.

 

 

“아무튼 엄청난 먹보가 많은 우리 친지들은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먹이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다. 또 그것이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요네하라 마리, 《미식견문록》

 

 

미식이 별건가? 작지만 내가 품은 세계를 공유하고 상호 교류하면서 먹고살아 가는 즐거움을 아는 것이 미식 아닐까? 먹는 일이 달라지면 삶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마을 안의 공유 공간에서부터 가능해질 수 있다. 물론 단시간에 되지는 않을지라도.

 

 

 

 

 

 

 

 

 

발췌 :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박재동-김이준수 지음, 샨티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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