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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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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주인공이 되는 '덤'

2016.06.21
지역공동체담당관
전화
02-2133-6343

 

창신동은 동대문패션타운에 의류를 납품하는 소규모 봉제공장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다. 봉제업을 하는 주민의 경우 장시간 노동의 벗으로 라디오를 즐겨 듣는다. 단일 직종이 많은 지역의 특성상 오랜 세월 거주해 온 주민이 많은데 대체로 부지런히 자신의 몸을 움직이고 땀 흘려 정직한 돈을 버는 노동자들이다. 전태일 열사를 비롯해 지역아동센터(과거 ‘공부방’),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많았던 지역이 기도 하다. 이런 생태 문화적 배경이 되어 창신동마을라디오 ‘덤’이 탄생한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억지로 끌려왔다가 막상 라디오 방송도 만들고 이런저런 교육 도 받고 하면서 ‘덤’으로 얻은 게 많다 하여, 이름을 ‘덤’이라고 지었다.그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할 수 있는 라디오, 창신동 주민들이 주인공이 되는 라디오, 지역 소식을 실어 나르는 라디오. 우리가 꿈꾸는 것을 소통할 수 있는 라디오, 이야기 구성, 노래, 극 등 소리와 관련된 예술 활동을 공유할 수 있는 매체로서의 라디오…. 얼마나 근사한가!”

 

동네 사람들과 뭐든 아름다운 활동을 해봐야지

 

서울 종로구 창신동은 동대문패션타운인근에 있는 소규모 봉제공장 밀집지역 이다. 10년 전, 지금 창신동마을라디오‘덤’ 국장인 조은형 씨는 해송지역아동센터 교사로 처음 창신동 사람들을 만났다. 조은형 국장은 지역아동센터 교사로서 아이들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고민 하면서 자연스럽게 부모들과 대화를 나눴고, 관계망이 생겼다. 이야기를 할수록 가식이 없고, 부지런한 동네 사람들의 특성에 매료되었고, 더 열심히 지역아동 센터 교사로서 일했고, 그러면서 차츰 창신동 주민이 되어갔다.

그러고는 2012년 봄, 서울시에서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을 지원한다는 공고를 보았을 때 조은형 국장은 눈이 번쩍 뜨였다. 우리도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이 가슴을 훅 적셨다.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 실에 ‘창신동 여인네 라디오교실’ 신청서를 냈다. 뭘 모르니 용감했다. 사실 그때는 라디오라는 미디어의 특징에 대해서나, 소식을 실어 나르고 의견을 모으는 미디어로서의 기능에 대해서 아는 바도, 큰 관심도 없었다. 그저 개개인이 자기표현의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라디오교실 1기 교육을 시작했다. 또 창신동에는 라디오를 벗 삼아 일을 하는 봉제인들이 많다는 것과 여가시간이 적은 동네 특성상 제작이 쉬운 미디어가 좋겠다는 판단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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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7일부터 9월 9일까지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12명의 창신동 여인네들이 모여 웃고 울고 떠들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간을 가졌다. 그 즐거움이 거름이 되어서 라디오교실 1기, 2기 수료생 중 4명이 지속적인 방송을 결의하고, 2013년 2월, 창신동 마을라디오 방송국 ‘덤’을 개국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방송으로 구성’하는 것에 초점

 

모두 생업이 있는 관계로 시간 활용에한계가 있어 각자 진행하는 4개의 방송이 매주 화요일 돌아가며 나가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라디오교실 교육을 받았던 게 라디오제작 경험의 전부인 그들이 방송 구상, 대본 작성, 취재, 녹음 오퍼레이팅, 편집, 팟캐스팅 송출, 인터넷업로드 전 과정을 진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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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통>은 동네 소식과 주민 인터뷰를 담은 소식 방송으로 매주 월요일 아이블러그를 통해 팟캐스트로 송출된다. 주민들은 주로 스마트폰 ‘덤’ 앱과 창신동마을라디오 네이버 카페를 통해 듣게 된다. 방송 시간은 약 20분이고 현재 100여회 다운로드되고 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보내주는 소식, 인터뷰가 핵심인 방송인데 현재까지 개별 연락, 방문 등의 독려 없이 자발적으로 보내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한마디로 생존하려면 정말 열심히 영양분을 공급해줘야하는 상태이다.

소통통 이외의 덤 방송은 모두 자기표현 방송이다. 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있고 방송 자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 ‘청취자와의 소통’에 핵심을 두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방송으로 구성’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방송 제작이 어느 정도 안정된 2013년 6월에는 주민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아는 것도 없이, 겁도 없이 야외 공개방송을 개최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주민센터와 마을 주민들의 도움 속에 연결망이 생기는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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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에는 노래하는 교장선생님 방승호 선생님과 동네의 반찬가게 사장님이자 동네 가수 김송희 씨를 초대해서 두 번의 작은 음악회를 개최했다. 규모가 크지 않은 거리 공개방송도 두 번이나 진행했다. 또한 홍보가 중요한 상황이라 서울시 미디어 공방사업으로 간판도 달고 몇 개 봉제공장에 스피커를 배포해서 방송 모니터링도 했다.

2014년 역시 주민들이 참여하는 작은 음악회를 열었고, 거리 공개방송도 3차례가 진행되어 동네 행사로 자리 잡았다. 특히 작곡가가 꿈인 동네 청년을 필두로 22명이 참가해서 앨범 6개를 제작했다. 음반제작을 기념하는 음악회는 작은 음악회를 넘어 자연스럽게 큰 음악회가 되었다. 초등생부터 청소년, 봉제일 하는 사장님, 반찬가게 사장님 등 그야말로 동네미디어를 통해 ‘동네의 보물’이 대거 탄생했다. 스튜디오 방송은 개국 이후 지역의 어르신들을 구술채록해 지역을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8회 진행했는데 시간 품이 너무 들어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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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조건보다 과도한 활동은 열정을 지치게 한다

 

그 과정에서 얻은 시행착오와 경험은 그들을 더 단단하게 했다. 우선 방송의 내용, 길이, 진행방식이 제각각인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맞출 여력도 없고 맞출 필요도 없었다. 그냥 있는 그 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기술 지원도 무척 벅찼다. 그래서 모두가 기술교육을 받기로 했지만 이는 모두를 벅차게 했다. 다시 동네 청소년 기술팀을 구성하자는 논의가 있었고, 교육후 최저시급을 지급하면서 기술 지원을 받았지만 청소년의 특성상 책임감 유지가 어려웠고, 대화와 동기부여에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현재는 동네 청년에게기술 지원을 받으면서 매체 사업비로 인건비를 충당하고 있다.

주민들 대다수의 직업인 봉제인들에게 어떻게 홍보할 것인지도 논의됐다. 공장에 스피커를 배포해 스마트폰을 연결해 듣는 방법도 시도했다. 이 방법은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나 가능성이 있었다. 앞으로도 시장, 미용실, 동네 슈퍼 등에 스피커를 확대 설치할 계획이다.

동네에 라디오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홍보도 필요했다. 이 홍보 전략은 주민센터나 지역 유지, 노래나 악기연주에 재능 있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거리 방송이나 신년맞이 거리 인터뷰는 주민들의 관심을 환기시켰고 통행이 많은 곳에 세운 홍보간판은 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해주었다. 음악 저작권 문제는 엄청나게 부담이었다. 일부는 동네 주민들이 연주한 것을 녹음했다가 송출했다.

만약 주민들의 연주 음악 참여자가 확대되고 녹음의 질이 나아진다면 주민 음악을 사용하는 비율을 차차 높일 계획이다. 한편 시그널 음악은 작곡&연주&미디제작을 의뢰하거나 유투브 무료 음원을 사용하고 있다. 도식으로 요약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었다. 바로 회의 구조와 인간관계의 문제. 회의 구조의 경우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밤늦게나 주말이었으므로 결정해야할 내용은 카톡으로 수시로 공유되었는데, 이는 생업의 능률을 현저히 떨어뜨렸으며 가족들의 원성도 사야 했다. 회의를 진행하며 느낀 점 역시 ‘우리가 민주적인 논의의 훈련이 잘 안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관계의 문제는 더 복잡했다. 개성만발, 충돌만발! 이 시기를 관통하며 느낀 고통은 만만찮은 것이었으며 그 상처는 아직 다 아물지 않았다. 결국 멤버 두 명이 활동을 그만두었고 초기 세팅을 변경했다. 운영 컨설팅을 받았는데 이후 ‘덤’의 현실적 조건을 고려해 리더 중심의 결정구조로 재편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덤’이 힘들었던 가장 큰 원인은 ‘삶의 조건보다 과도한 활동’이었다.

 

자기 표현에서 마을 현안으로 시야가 넓어졌다

 

덤의 시작은 ‘자기표현’이었다. 세상에 자신들이 살아있음을, 삶의 주인공이 자신임을 선언하고자 함이었다. 그래서 사는 일에 치여 이루지 못하고 있던 꿈을 꺼내어 방송 내용으로 짰다. 글을 쓰고 싶어 했던 사람은 글을 썼고,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사람은 그 이야기를 정리해 풀어냈고,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사람은 노래를 불렀다.

이렇게 각자 자기표현을 하다 보니 놀랍게도 마을과 만나게 되었다. 분명 자신으로부터 출발했고 자신이 하고 싶은 방송을 했는데 마을을 만난 것이다. 방송에 게스트를 초대하고, 인터뷰가 나가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초기 멤버 중 2명은 개국 후 1년 만인 2014년 1월에 주민자치위원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자기표현을 넘어선 동네 소식 방송, 동네 현안을 다루는 간담회, 주민 인터뷰, 주민들의 자기표현 활동을 위한 음반 제작 등을 주요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자기표현에서 마을 현안으로 시야가 넓어진 것은 중요한 변화이다.

두 번째 ‘덤’의 숙제는 ‘재정 자립’이다. 참여자들 전원이 처음에는 주말 시간을 활용해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활동을 할 요량이었는데, 재밌기도 하고, 사람들의 반응에 신이 나기도 하고, 이왕 시작한 거 잘 진행되어야 한다는 책임감도생기면서 야금야금 일상의 가능한 모든 시간을 차지하고 나자 잠을 줄이고 심지어 직장 생활에도 영향이 가도록 방송국 일을 했다. 이는 분명 취미를 넘어서는 수준이고 길게 지속하기 어려운 구조임에 틀림없다. 이를 개선하려면 전업활동가가 필요하다. 다른 멤버들은 주말 취미활동 정도로 참여하고 전업활동가가 그에 맞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구조가 되어야 오랜 시간 지속 가능하다. 과연 그런 구조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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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마을미디어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고민도 더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을미디어는 자기표현의 장, 즉 주민의 멍석으로서의 역할이 중요한 축이라 보고 그 멍석을 ‘덤’이 직접 만들고, 자신을 표현해 삶의 주인으로서의 자신감을 키워가고 있다. 다른 축으로는 다양한 정보와 의견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매체로서의 기능이다. 미디어를 다루는 사람으로서의 안목을 키우는 것 역시 덤의 숙제이다.

그래도 지치기에는 아직 이르다. 조은형은 국장은 이렇게 말한다.“올해 조급해서 일을 많이 벌였더니 힘들어서 작은 기쁨이 많이 날아갔어요. 지치니까 회복력이 더뎌요. 앞으로는 이런 실수를 안 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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