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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마을 1월] 마을은 시가 될 수 있을까요?

2015.01.06
서울혁신기획관 마을공동체담당관
전화
02-2133-6341
월간마을
 
마을은 시가 될 수 있을까요?

 

 

마을로청년활동가 우리현

 

 

잘, 해보고 싶은 일

골목은 어떤 공동체를 위한 출발 장소가 될 수 있을까? 예술을 통해 마을은 어떤 변화를 이룰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로부터 시작된 가을이었다. 도봉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섯 명의 청년 활동가들이 모였다. 작당. 모든 작당의 시작과 끝은 하모니다. 조화를 의미하는 하모니는 희랍어인 하르모니아(Harmonia)를 어원으로 삼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질서 잡힌 음의 연결을 뜻했다고 하는데, 하나의 음이 다른 음과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따라 음이 조화를 이루거나 그렇지 않게 된다는 것. 그리하여 하모니를 근간으로 하는 작당은 음과 음이 알맞게 합쳐져 아름다운 선율을 이루듯 나와 네가 알맞게 어우러져 우리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간단명료하게 일깨워준다.

 

“쌍문2동에 꽁초 골목이 있어요. 그 골목을 바꿔보고 싶은데…어떨까요?”

“좋아요!”

 

질문하고 대답한다. 왜요? 어째서요? 반문하지 않는다. 다시 묻지 않는 일로 이미 우리는 나아간다. 절반쯤. 이미 우리는 반원을 그렸다. 이제 나머지 반원을 그리면 되는 일. 하모니의 형태는 원이니까. 원을 잘 그리자. 모두 자신들의 노트에 크고 작은 원을 그리고 있다. 생각을 굴리는 중이다. 마을 이곳저곳으로 생각을 굴리는 중이다. 마을을 굴러가는 생각. 그러니까 마을에서 먹고 자라고 큰 생각들. 수개월, 마을에서 굴러먹은 청년들의 생각이란 역시 그러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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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떨이를 설치할까요? 금연 캠페인을 할까요?”

“골목에서 잘 놀면 되지 않을까요?”

 

잘. 부사로서, 옳고 바르게. 좋고 훌륭하게. 익숙하고 능란하게. 자세하고 정확하게. 또는 분명하고 또렷이. 아주 적절하게. 또는 아주 알맞게. 아무 탈 없이 편하고 순조롭게. 버릇으로 자주. 유감없이 충분하게. 아주 만족스럽게. 예사롭거나 쉽게. 기능 면에서 아주 만족스럽게. 아주 멋지게. 또는 아름답고 예쁘게. (흔히 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 충분하고 넉넉하게. 라는 뜻을 가진 말. 어렵다. 잘이 들어가는 모든 말은 어려운 말. 그러니까 우리는 ‘잘’이 들어가는 모든 말의 문 앞에서 잠시 말문이 막힌다.

 

그러나 우리는 작당.

 

“좋아요. 잘 놀아 봐요. 일단 꽁초 골목부터 가볼까요?”

 잘 대답한다. 잘 놀아보자는 사람의 입술이 샐쭉, 평범해지지 않도록. 웃게 한다.

“좋죠! 가요!”

 

담배꽁초가 여기저기 버려진 골목들과 후미진 공터, 이제는 찾아오는 이가 거의 없는 재래시장을 둘러본다. 마을은 이런 곳이기도 하구나. 마을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이기도 하구나. 마을의 온기에 대하여 생각한다. 마을의 냉기에 관하여 생각한다. 그 따뜻한 마음과 차가운 마음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잠시 멈춘다. 앉는다. 하늘을 보지는 않는다. 서로의 발을 본다. 그 발로 마음이 쏠려 있으니까.

 

“어때요?”

“인상적이었어요. 꽁초 골목도, 잡초가 무성한 공터도. 거의 폐허가 되어 버린 시장도.”

“해보고 싶은 건?”

“살려보고 싶어요.”

“살릴 수 있을까요?”

“따뜻해질 수 있겠죠.”

 

 

우연히, 할 수 있는 일

폴 엘뤼아르(Paul Eluard)는 시를 일러, ‘타인에게로 향하는 가장 짧은 길’이라고 했다. 마을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고자 하는 것은 결국, 타인과 타인이 만나 가장 짧은 길로 왕래하는 사이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는 마음의 거리를 만드는 사람의 일.

 

“버려진 공간을 시로 채우는 일은 어떨까요?”

 

시의 골목을, 시의 시장을, 시의 우범지대를, 시의 마을을 만드는 일.

주민들은 일상에서 시를 만나고 즐기고 시라는 예술은 그렇게 일상이 된다. 시가 일상이 되는 나라. 시가 일상이 되는 마을. 시가 일상이 되는 사람을 생각해 본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일상의 공간에서 눈에서 눈으로 입에서 입으로 머리에서 머리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동네 사람들은 우연히 시와 만나게 된다.

 

우연히. 부사로서, 어떤 일이 뜻하지 아니하게 저절로 이루어져 공교롭게라는 뜻을 가진 말. 우리는 우연히가 지배하는 발견의 순간을 잘 알고 있다. 우연히 지난 계절 바지 속에서 지폐한 장이 발견될 때, 우연히 펼친 책 속에서 단풍 든 잎을 발견할 때, 우연히 옛 애인의 미니 홈피를 찾아보는 자신을 발견할 때. 우리는 그 우연히의 블랙홀 안에서 기쁘고 아련하고 청승맞다. 좋다.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시. 걷다가, 숨다가, 담배 피우다가, 손잡다가, 뽀뽀하다가 우연히 읽게 되는, 발견되는 시. 그 발견을 통해 골목도 시장도 마을도 다시 발견될 수 있겠지. 그 발견으로 사람이, 사람의 마음이, 사람의 온기가 다시 발굴될 수도 있겠지.

 

“좋아요. 해봐요.”

 

만장일치.

작업을 진행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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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이름은 시멘트라고 하는 게 어떨까요? 시와 멘트를 결합한 말인데, 시멘트 담벼락을 시로 채우는 거니까.”

 

촉.

촉이 왔다. 다른 이름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절묘한 이름이다. 가자. 시멘트로. 다들 촉이 와서 촉촉한 얼굴. 그 얼굴로부터 겨울은 시작되고. 그 겨울의 첫 추위와 첫 눈발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꿈의 서두를 썼다. 어쩌면 우연히 시작된 이 일이 앞으로 우리를 조금 다른 방향으로 데리고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먼저, 시를 고른다.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으로. 살아 있는 시인으로. 한국 시인으로. 현장의 시인으로. 젊은 시인으로. 조건이 까다롭다. 청년이니까. 시인들의 허락을 구한다. 저작권은 소중해. 청년이니까. 시인들의 반응은 어떨까, 걱정하지 않는다. 설렌다. 청년이니까. 처음 하는 일이니까.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청년이니까 신이 난다.

 

‘그럼요, 기꺼이, 당근, 영광이죠, 쓰세요, 마구 마구 써요, 잘 쓰고 소식 전해주세요, ‘특별히’ 허락해드리겠어요, 버려진 공간에 시가 붙는다니 예쁘고 예뻐요’

 

각양각색의 반응.

들뜬다. 다 잘되겠지, 생각한다. 청년이니까. 그러나 청년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모든 게 다 잘만 되는 일은 아니라서, 고생한다. 돈도 걱정이고 시간도 걱정이고 사람도 걱정이고 무엇보다 공간도 걱정이다. 걱정 반. 공기 반. 그러니까 청년들에게 마을살이는 역시 반반이다. 그러나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이 최적의 치킨을 완성하듯 어쩌면 그 긍정 반 부정 반이 청년들의 마을 활동을 완성시키는 것이리라, 생각해도 역시 잘 되지 않는 건 잘 되지 않는다. 청년이니까. 우여곡절. 늘 그렇듯 우여곡절 끝에는 성공이 기다리고 있고, 있다고 해서, 우여곡절을 겪어 본다. 이곳저곳으로 문의 전화를 돌리고 여기저기서 무언가를 적고 만든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에라, 모르겠다 서로의 카톡을 읽고 답하지 않기도 한다. 청년이니까. 그 우여곡절 속에서도 청년스러워지려고 한다.

 

“다, 잘될 거 같아요.”

“다, 잘 되겠지.”

 

다 잘 되어서 마침내, 우여곡절 끝에 제작한 시 스티커가 도착한다. 이제 마을에 붙이기만 하면 된다는 준비태세. 끝이 보인다. 그러나 끝은 끝이 보일 때 비로소 시작되는 법. 그 시작 앞에서 생각이 머문다. 어떤 끝일까. 우리가 생각하던 끝일까. 하지만 끝은 늘 그렇듯 끝을 알 수 없는 법. 하지만 청년이니까. 다시 청년스럽게.

 

‘어떤 결말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겁니다.’

 

 

상상, 해 볼 수 있는 일

그렇게 골목에 붙일 시 스티커를 수작업으로 만든다. 자를 대고, 칼을 사용하고, 가위를 쓴다. 노래를 듣고 한참을 웃기도 하고 귤을 하나씩 먹기도 한다. 그게 좋다.

 

그게. 시를 책상에 두는 일이, 시 위에 손을 올리는 일이, 다섯 명의 청년들이 시를 사이에 두고 웃는 일이, 시가 마을에 가까이 와 있다는 일이. 우리가, 우리의 손이 시를 마을로 조금씩 끌어당겨 왔다는 일이, 이 당겨진 시가 골목에서 시장으로 시장에서 골목으로 골목에서 주민들에게로 주민들에게서 마을로 쫙 펼쳐지는 일이, 그 모든 걸 상상하는 일이 좋다. 상상해 볼 수 있는 일이다. 모든 게.

 

7 8

 

 

상상. 명사로서,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봄이라는 뜻을 가진 말.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마음속에서 그린다는 것은 마음을 쓴다는 것일까, 마음을 이미 쓰고 있다는 것일까. 마음 가는 대로 그려 본다. 해보고 싶다. 그럴 수 있다. 어쩐지 마음은 마음이 쓰여서 마음을 상상하게 한다.

 

사람들이 시를 찾아서 골목을, 시장을, 마을을 도는 상상,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지에 따라 자신만의 시를 만들 수 있다는 상상, 시가 지금, 여기에서 내일, 저 먼 곳으로 가는 상상. 그리고 무엇보다 골목에서, 마을에서, 사람들의 마음에서 시가 조용히 사라지는 무서운 상상. 타인에게로 향하는 가장 짧은 길이 사라지고 가장 멀리 돌아가는 길이 생겨나는 상상.

 

그리하여 그즈음 다섯의 청년 활동가들에게 시란, 닫혀 있던 마음을 다른 이에게 열어보는 기회이자 몸짓이며, 상상의 보고. 마을과 마을 사람들을 다양한 색깔로 바라볼 수 있는 프리즘이며, 마을과 마을의 사람들을 새롭게 점검하는 마음의 리트머스지다.

 

이제야말로 시를 붙이는 일만이 남았다(원고가 작성될 무렵에 시멘트 프로젝트는 디데이 3일을 앞두고 있었다). 12월은 어쩐지 마무리하고 싶은 달이다. 금연의 실패를 인정하고, 휴대전화의 연락처를 정리하고, 연애의 끝을 받아들이고, 다이어트란 내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다이어리를 준비한다. 그러나 그 어쩐지 마무리하고 싶은 시간으로부터 봄은 온다. 마을의 버려진 공간을 문화예술로 살려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출발한 다섯 마을 청년 활동가들의 프로젝트는 이제부터 봄이다.

 

겨울의 봄. 마을은, 마을의 담벼락은, 마을의 골목은 마을의 사람들은 시가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으로까지 슬며시 번진 ‘시_멘트 프로젝트’는 아무래도 시작하고 싶은 달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잘, 우연히, 상상.

같이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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