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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마을 7월] 마을로 가자

2014.07.14
마을공동체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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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마을 이미지
 
마을로 가자

 

마을로청년활동가 배민수

 

 

모르겠다. 지금 내가 왜 가는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마을’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향수, 정감어림, 따뜻함이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은 평온하게 뛴다. 설렘과 두근거림, 긴장감은 찾을 수 없다. 나른한 햇살에 절로 나오는 하품과 묘하게 무기력해지는 신체적 반응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내 자신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청년활동가이지만 정작 마을에 대해서는 별 감흥이 없는 사람 같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마을이건만 왜 이리도 낯선 것일까. 내가 마을을 모르는 것일까? 아님 원래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일까? 모르겠다. 이정표도 없는 갈림길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것 같다. 하긴, 그게 어디 마을뿐이겠는가. 내가 선택하는 모든 것들이 이정표 없는 갈림길이고 매일 그 위에서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하는 게 사람이거늘. 나란 사람도 그 중 하나일 뿐이다. 다만 문제라고 한다면 그 길 위에 서 있는 나는 어디를 가도 상관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는 점이다. 어디를 가고 싶다는 목표가 없으니 그저 아무 곳이나 가자는 식이다.

 

마을로 가는 길은 꽤나 단조롭다. 굳이 표현하자면 안락한 세계에서 불편한 세계로 걸어가는 것?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꽤나 낙후된 느낌, 오래된 느낌이 풍긴다는 것이다. 편리함은 배척하는 듯이. 그래서 발걸음이 무거워지는지도 모른다. 이제껏 편리하게, 더욱더 편리하게를 강조하는 세계에서 스스로 불편함을 맛보자고 마을로 향하는 것이니까. 어지간한 마을 사랑이 아니라면 쉽게 오기는 힘들 것이다.

 

1

 

나는 어쩌면 마을에게 무언가 기대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답을 원했다고 말하기엔 내 문제 자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니 답이야 당연히 나올 수 없는 것이겠지만 나는 무언가를 원했다. 마치 깨달음처럼, 갑자기 찾아와 나의 고민, 불안 등을 날려버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렇게 힘겹게 찾아온 장소라면 이제껏 내가 얻을 수 없었던, 찾고 있었던 무언가를 단번에 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아래 말이다. 하지만 마을은 평온했고,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다른 세계인지라 시간 역시도 다르게 흘러가는 느낌. 다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도 고민은 그대로이다. 나는 여전히 길 위에서 고민한다.

 

느리게 흘러가는 세계에서 좋은 점이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들도 느리게 흘러간다는 점이다. 그것은 고민도 해당한다. 밖에서 그토록 나를 숨 막히게 하던 고민들도 여기 와서는 조금은 달라진다. 사람들의 행동, 건물들 하나하나, 골목과 골목 사이에 있는 작은 여유와 공간들은 급박하게 고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 자체를 느슨하게 만든다. 그토록 쳐다보던 시계와 스마트폰도 여기서는 잊게 된다. 그저 햇살이 건물과 거리 사이에 얼마나 자리 잡고 있는가에 따라 시간을 추측할 뿐이다. 그렇게 거리를 걸었다. 느리게, 멍하니.

 

2

 

알 수 없는 곳에서 아무런 정보도 없는 곳을 정처 없이 거니는 시간. 햇살의 강도를 보며 얼추 시간을 추측하는 모습 하나하나가 내게 여행처럼 느껴졌다. 일상에서는 맛보지 못할 느긋함이 느껴졌다. 다른 나라에 온 기분이었다. 만약 우리에게 필요한 여행이 낯선 기분과 작은 일탈이라면 가장 적은 비용과 시간투자로 떠날 수 있는 여행이 아닐까. 마을이란 곳은, 여행이라 부르지 않기엔 무척이나 낯설고 신기한 것들이 가득하기에 여행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만큼 매력적이고, 시선을 붙잡는 곳이 가득했다.

 

이제껏 도시가 주는 계획적이고 일률적인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남들과 똑같은 옷, 똑같은 음식, 똑같은 집, 똑같은 색을 칠하고 살아가는 것이 함께 사는 방법이라 여겼다. ‘우리’라는 표현은 ‘같음’에서 나오는 단어이지 않겠는가 하고. 어릴 때부터 ‘같음’을 강요받았고, ‘개성’을 죽이라는 명령만 받아왔기에 튀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라 여기며 지금까지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마을에서는 ‘우리’와 ‘같음’을 다르게 취급하였다. 오히려 ‘다름’이 ‘우리’라고 여길 수 있게 만들었다. 다르게 담벼락을 꾸미고, 다르게 집의 높이를 정하고, 다르게 나의 집을, 내 집에 들어오는 하늘을 제멋대로 수놓는 것. 그것들이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퍼즐조각처럼 하나로 뭉쳐졌다. 자연스럽게, 당연하듯이. 마을은 단 하나의 피스도 같음을 거부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마을에서의 소소한 일탈은 당연하였고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오히려 일탈이 없음에, 다름이 없음이 밋밋함으로, 숨을 쉬지 않는 답답함으로 다가왔다. 그 속에서 내가 잠시 엉덩이를 깔고 앉은 곳은 그저 ‘이 동네의 어느 계단’이 아닌, ‘내가 잠시 머문 계단’이 되었고 내가 발길이 머문 곳은 ‘이 동네의 어느 길’이 아닌 ‘내가 만든 둘레길’이 되었다. 단 하나도 같지 않기에 만들어질 수 있는 특별함이었다. 결코 도시에서는, 일반 동네에서는 맛볼 수 없는 즐거움.

 

3

 

걷다 보니 여러 것들을 보게 된다. 골목과 골목 사이, 높은 계단, 알록달록한 마을 외벽과 아기자기한 건물들 그리고 사람들. 그 중에서 계속 내 마음을 간지럽게 만든 것은 사람들이었다. 마을에 사는 사람이 따로 특별하다는 것은 아니다. 어딜 가나 사람은 있기에. 내가 사는 곳의 사람들과 이곳의 사람들은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없다. 그렇기에 ‘마을이나 도시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달랐다. 미묘하게 달랐다. 두 곳 모두 사람 사는 곳은 맞는데 달랐다. 여기나 저기나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것은 똑같은데 편리함과는 동떨어진, 조금은 낙후되었다고 볼 수 있는 이곳에서 설명 못할 따뜻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아파트가 이웃과 이웃 간의 거리로 볼 때는 마을의 집집보다 더 가깝거늘 왜 이곳이 더 따뜻하다 여겼을까?

 

덩그러니 모여 있는 계량기를 보며 문득 깨달았다. 이리저리 정렬된 파이프가 마치 하나의 혈관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모여 작은 혈관을 이루고 그 혈관들이 모여 마을을 숨 쉬게 만든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참으로 그럴듯했다. 아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각자가 갖고 있는, ‘이웃에 대한 작은 관심’이 파이프와 파이프의 옹기종기한 밀집처럼 모여 서로를 따뜻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는 단지 그 관심을 표출할, 이어줄 다리가 없던 것이고.

 

아파트에서의 나는 ‘거대한 사각 기계를 작동시키기 위한 작은 배터리 중 하나’인 느낌이었다. 내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비워진 배터리는 언젠가 다른 누군가로 채워지겠지. 그 속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각자의 주거공간을 위한 삶이 아닌, 거대한 아파트를 위한 서로간의 협력이 아닐까 싶었다. 그에 반해 마을은 하나하나가 중요하게 느껴졌다. 배터리라기 보단, 마치 전구 같았다. 크리스마스트리의 불을 밝히는 전구. 없으면 허전하고 아쉬운데 하나하나가 모일수록 더욱더 아름다움을 비추는 것 말이다. 마을이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을이란 마을 자체를 밝히는 것이 아닌, 마을 주민을 밝히는 공간이니.

 

어쩌면 내가 찾고자 했던 것도 이것인지도 모른다. 마을이란 공동체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그것은 바로 ‘하나됨’과 ‘어우러짐’. 수많은 사람들이 머무는 서울에 살고 있어도 느낄 수 없었던 것. 끝없이 외로운 나에게 내미는 작은 손. 외로운 내가 이곳에 이방인으로 방문해도 무언가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이 마을이 주는 선물인가 싶었다. 그래서 낯설지만 따뜻한 감정을 더욱더 느끼고 싶어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족적을 남기듯, 나라는 사람의 방문을 알리듯. 나 역시 마을이라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가 되길 바라며.

 

4

 

바닥을 수놓던 햇살이 하나 둘 사라지고 건물에 차츰 음영이 지기 시작할 시간이 되어서야 걸음을 멈추고 카메라로 풍경을 찍었다. 지금이 아니면 놓칠 거 같아서.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답을 발견한 것 같았다. 왜 청년들이 하나 둘 마을로 향하는지. 왜 우리가 마을로 가야 하는지. 우리는 마을 속에서 이제껏 스스로 걸쳐온, 혹은 누군가 걸쳐 놓은 족쇄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것을 포기했다. 다양해질 수 있는 자유, ‘아니오’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느긋하게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함께 어우러지는 즐거움을 우리는 포기했었다. 그것을 다시 얻기 위해 우리는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 ‘나’를 찾기 위해,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 우리는 마을로 가야 한다. 그 속에 길이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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