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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마을과 어떻게 접목해서 삶과 관계를 깊게 하는가!

2013.11.27
마을공동체담당관
전화
02-2133-6341
[ 마을캠프 6회 스케치 - 마을, 예술을 입다 문화를 신다]
- 예술은 마을과 어떻게 접목해서 삶과 관계를 깊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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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를 마지막으로 달려온 마을강연, 이제 6회!

 

마을공동체만의 톡톡 튀는 매력과, 숨은 재미 찾기의 즐거움을 전파하는 마을 강연이 6회차를 맞았습니다. '마을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타이틀을 걸고, 매회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강연자들을 만나보는 시간인데요.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강연자의 강연을 듣고 있노라면 여기가 시청 하늘광장인지 캠핑장인지 헷갈리게 된다는 마법같은 곳이라죠?

6회차 강연에는 [마을, 예술을 입다, 문화를 신다]를 주제로 은평구에서 공동육아로 아이를 키우고 마을학교에서 재즈선생님으로 활동하는 재즈가수 말로님과 양천구 모기동(목2동)에서 숙영원을 꾸려가는 유다은님,  철공소와 예술이 만난 문래예술공단의 이소주님이 함께하셨습니다.

문화를 매개로 한 사소한 사고 습관으로 마을의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낸 이야기, 지금 들어볼까요?

 

※ 마을캠프가 끝나갑니다. 마지막 강연 7회는 11월 28일(목) 저녁 7시 30분 서울시청 9층 하늘광장에서 [마을TV에 내가 나오면 정말 좋겠네]를 제목으로 ●이창림(마을신문 도봉N 발행인, 도봉구), ●이주훈 (마을미디어지원센터 센터장)님이 함께 하십니다.

7회차 강연 자세한한 내용확인 및 참가신청은 링크를 클릭하세요 -> http://www.wisdo.me/4254

 

마을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계기, 또는 만들게 되는 동기는 다양할 텐데요. 일상 속 문화와 예술을 통해 마을이 자연스레 꿈틀대고 공동체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문화예술은 때로 예기치 않은 힘을 발휘하기도 하잖아요.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바로 현실이다”라는 파블로 피카소의 말을 빌자면, 문화예술을 통해 상상할 수 있는 현실이 바로 마을일 수 있습니다.

 

여기, 그런 이야기를 풀어놓은 이들이 있습니다. ‘상상을 새로운 현실로 만들려는 가당찮은 시도’들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이들은 마을의 삶과 일상을 재배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마을공동체가 자연스레 꾸려졌고,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해줬습니다. 어쩌면 이들을 몽상가라고 부를 수도 있겠네요. 사소한 사고 습관으로 마을의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낸 이야기가 지난 11월 21일 서울시청 9층 하늘광장에서 펼쳐졌습니다. ‘[마을캠프] 마을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여섯 번째 시간, <마을, 예술을 입다 문화를 신다>. 김종휘 성북문화재단 대표의 사회로 말로님(재즈보컬리스트, 은평구), 김지영님(플러스마이너스1도씨, 양천구), 이소주님(보노보C, 영등포구)가 차례로 등장했습니다. 뭣보다 말로님의 재즈가 함께했던 늦가을 밤의 향연이었답니다.

 

 

마을과 함께하는 음악의 향연_ 은평구 재즈가수 말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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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재즈보컬리스트 말로님. 헌데 그런 뮤지션이 세계가 아닌 마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신기하죠? 세계화니 국제화니, 한국 밖으로 나가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절에, 마을이라니요! 사실입니다. 말로님, 재즈를 도구로 마을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마을 이웃에게 재즈를 전파하고, 초등학교 합창단을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노래를 부르는 일에서 삶과 음악의 힘을 얻고 있답니다. “우리가 노래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삶을 사는 것처럼 살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그녀는 마을의 이웃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새로운 보람이라고 덧붙이는데요. 도대체 말로님은 무슨 일이 있었기에? <마을과 함께 하는 음악의 향연>이라는 제목으로 펼쳐진 그녀의 이야기에 모두들 빠져듭니다.

 

말로님, 부산에서 태어나 학교, 도서관, 집만 오갔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답니다. 바보 같이 살았다고 얘기하네요. 학교가 주는 것이 세상의 모든 것인 줄 알았던 거죠. 물리학을 전공한 그녀, 음악을 더 잘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음악의 길로 나섰습니다. 스스로 음악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90년대 초반, 그 자만심(?)이 무참하게 깨졌습니다. 음악을 들으면 악보로 다 적을 수 있었던 그녀,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재즈를 처음 들었는데 처음으로 악보에 옮겨 적을 수가 없었답니다. 내가 모르는 음악이 있다니! 화가 났습니다.

 

당장 재즈클럽에 찾아가 뮤지션에게 물어봅니다. 재즈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런, 미국에 가랍니다. 딱 1년, 유학을 다녀와 이태원의 <올댓재즈>에서 노래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군 손님이 뚝 끊겼습니다. 2002년, 미군의 장갑차에 짓밟힌 ‘미선이·효선이’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이태원 클럽들이 미군을 출입금지 시킨 거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어느 땅에서 노래하고, 내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누구 들으라고 노래를 하고 있는 걸까?

 

“결과적으로 2003년 우리말로 된 <벚꽃, 지다>라는 재즈앨범을 냈어요. 한국말로 된 재즈를 전달하고, 내 언어로 된 노래로 우리나라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어요. 그런 작업이 이어져서, 실패한 명반이죠. (웃음) 4집 <지금 너에게로>를 만들게 됐어요. 1950년대가 미국 재즈의 전성기였는데 대중음악이었어요. 지금 사는 사람들이 다시 해석하고 노래하면서 작품이 발전된 거거든요. 우리나라에서 재즈를 한다는 게 무엇인지 시선을 돌렸어요. 「동백아가씨」와 「신라의 달밤」 등을 취합해 2010년 코리안 스탠더드를 구현한 앨범을 냈고, 배호의 노래를 모아서 <말로 싱즈 배호(Malo Sings Baeho)>라는 앨범도 냈어요.”

 

재즈가 가요와 조금 다른 점이라면 즉흥적으로 노래를 한다는 점일 텐데요. 내 마음대로, 내 느낌대로 노래를 하기 위해선 그만큼 공부가 필요했다고 말로님이 설명합니다. 그런데 세상에 너무 무지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았는데, 아이를 맡길 데가 없는 현실, 일(재즈)을 계속 할 수 없는 상황. 쩔쩔 매다가 은평구로 이사를 왔는데,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말로님이 마을활동을 한 계기이자 시작점이었습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원하지 않는 교육을 하고 좁은 방에 가둬놓고 통제하는 것에 치를 떨었어요. 그런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비슷한 마인드를 지닌 주변 사람들을 만났어요. 우리끼리 아이를 기르자. 공동육아단체 ‘숲동이 놀이터’를 만들었어요. 골방에 갇히지 말고 숲에서 방목하는 거예요. 어른들은 관찰하고 기다리고, 간식 챙겨주는 정도? 4년을 했어요. 그러면서 엄마들의 공동체가 단단해졌어요. 그것이 지금의 마을운동을 하게 만들었어요. 옆집 아이도 잘 돼야 내 아이도 잘 되는 것이다! 둘이 친구가 되거든요. 속 터놓고 비슷한 관점에서 얘기하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는 거예요. 그것이 공동체의 주목적이었죠. 이 사람들이 모여서 여러 복작복작 일을 했어요.”

 

그 사람들이 다시 마을카페를 차렸습니다. 말로님,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내가 잘하는 노래로 기부를 하자. 노래를 나누자. 그리고 1년 동안 그것을 하고 있습니다. 스윙, 보사노바, 블루스 등 코스를 만들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것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이지만 자신은 물론 함께 하는 분들도 좋아한다는 이야기. 그녀가 방점을 찍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관계를 통해 자기 자신이 만들어지거든요.”

 

이어 초등학교 합창단을 만든 이야기도 이어집니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가서 음악시간을 탐방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데, 오르간 없이 영상을 통해 가사가 나오면서 아이들이 따라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르간이 없냐고 물었더니, 학교에선 이제 오르간을 안 쓴답니다. 당황해서 교장실로 바로 찾아간 말로님. 무릇 음악교육이란 입 모양을 보고 눈을 마주치면서 나눠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 대번에 합창단을 만들겠다고 했답니다. 교장 선생도 냉큼 하라는 답이 떨어졌고, 전교생 오디션을 통해 24명을 뽑아 합창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옛 동요를 불러주면 아이들도 재밌다며 잘 따라한다는 것이 말로님의 이야깁니다.

 

“제가 동요를 들으면서 느꼈던 즐거움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그 정서를 아이들도 경험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아이들도 다 느껴요. 어른들이 몰랐을 뿐이에요.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났어요. 아이들이 정말 예쁘고 좋아서. 편곡을 내가 직접 다해요. 공연을 5, 9월에 했고 12월에 또 할 거예요. 의도하진 않았어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이렇게 오게 됐어요. 세계로 뻗어가는 것이 아니라 옆 사람, 주위 사람, 이웃사람과 나누고 진짜 필요한 사람, 함께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과 나누려는 마음, 그것을 깨닫게 만들어준 이웃들, 이 모든 기쁨을 나누고 싶고 돌리고 싶어요. 여러분도 그렇게 되겠죠?

 

 

관계를 맺는 예술 _ 은평구 모기동 마을카페 숙영원 김지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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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동마을(양천구 목2동)에 터를 잡고 4년째 마을살이를 하고 있는 김지영님이 뒤를 잇습니다. ‘숙영원’이라는 마을카페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녀는 <관계를 맺는 예술>이라는 제목으로 마을살이를 풀어냅니다. 그녀는 유다원님과 함께 ‘플러스마이너스 1도씨’라는 조직을 만들어 카페공간을 운영합니다. 먹고살겠다고 카페를 시작했는데, 마을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다보니 ‘마을허브, 문화허브’의 성격을 갖게 됐답니다. 관계에 의한 삶, 관계에 의한 일을 진행하고 있다는 그녀, 어떻게 모기동마을에 들어가게 됐을까요?

 

“20대 초반 카페를 운영하면서 詩도 읊고 공연도 하며 그렇게 놀면서 일하고 살고 싶다는 꿈을 가졌어요. 그런 꿈의 실현이기도 했고, 먹고살아야 할 원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도 있었어요. 예술로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꿈꾸면서 일과 삶을 분리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자고 생각했어요. 깊고 낮은 곳부터 변화를 시켜나가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어요. 도시에서도 이런 삶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시도를 했죠. 예술가, 기획자임을 떠나서 우리도 마을사람이고, 누군가의 이웃사람으로 공기처럼 이 마을에 살기 시작했어요. 뭔가 하자! 라는 필요가 생기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영업자의 삶을 보냈어요.”

 

그리고 모기동마을에 대한 설명을 잠시 곁들입니다. 주변 목동 아파트숲 사이에서 모기동은 난쟁이 마을처럼 푹 꺼져 있답니다. 그러다보니 이 마을은 주변과 달리 농촌형 감성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런 마을에서 그녀는 공동체성이나 마을문화를 이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내가 즐거운 일, 주변에서 즐거울 수 있는 일로 시작하기로 했고, 예술을 일상 안에 스며있는 것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의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만난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는데요. 숙영원 건너편의 공방과 마을과 만남의 시작, 관계에 의한 힘을 이야기합니다.

 

“2011년, 심심한 동네에서 우리라도 제발, 뭐라도 하자는 취지에서 이웃 공방과 작은 골목축제를 준비하게 됐어요. 포스터를 만들어서 곳곳에 뿌리고, 잡상인 취급 받으면서 준비를 했는데요. 마을 한 어르신이 아이들 놀거리 필요하지 않겠느냐며 인형극 공연도 하고, 이 축제가 하나의 새로운 놀이터가 됐어요. 숨어 있던 수공예 작가들도 드러났고요. 축제가 하나의 사건이 됐죠. 이 축제를 시작으로 여러 사람들이 마을에 대한 희망을 맛 본 거예요. 개별보다 만나서 놀다보니 차츰 사이가 좁혀졌어요. 우리끼리는 술로 빚어진 마을이라고 얘기도 해요. (웃음) 마을 사람들과 수다 떨고 이야기 나누다보니 마을에서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얘기가 나오고 행동을 옮기기도 했어요.”

 

마을 안에서 함께 배우는 문화가 중요하다고 그녀는 강조합니다. 그래서 마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도 하고요. 마을을 통해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맛보고 올해도 여러 일을 하면서 일터이자 삶터, 놀이터가 되는 궁리를 더 깊게 하게 됐습니다. ‘습관이 오래 되면 생활이 되고, 생활이 오래 되면 문화가 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입니다. 물론 관계의 힘도 무시할 수 없죠. 카페 운영의 어려움에 대해 주변에 하소연을 하니 그동안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공간을 운영하자는 대안이 나왔답니다. 이에 공간을 수공예 작가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곳으로 개방하고 전시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도 함께 변모했습니다. 개인적 취미에서 머물렀던 수공예나 도예품을 판매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고민도 하게 된 거죠.

 

카페 공간도 이웃들에게 개방했습니다. 오전 11시부터 필요한 사람은 각자가 메뉴를 준비해서 마을 주민들과 나누도록 했습니다. 마을의 셰프가 되는 시간. 그렇게 마을에서 소규모 일자리를 만드는 고민과 실행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에겐 비어있는 시간과 공간이 누군가에겐 꽉 찬 시간과 공간이 되는 것. 마을에서의 공유였습니다. 덕분에 다양한 프로그램도 만들어졌습니다. 夜한 식당, 마을극장 등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와 관계도 깊어지게 됐습니다.

 

“이 지역에 산 지 4년이 지났어요. 이전에 지역조사나 인터뷰를 할라치면 얘기도 듣지 않고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이웃 누구에게서 소개받았다고 하면 더 많은 사람을 소개해주고요. 그렇게 밑받침된 관계 덕분에 마을에서 모든 것이 가능해지고 있어요. 우리는 지금 계단식 성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계단을 오르기 전의 단계이고 내년엔 어떻게 다른 모습이 될지 기대와 걱정을 안고 있습니다.”

 

지영님은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원칙과 성과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원칙

· 내가 즐거울 것

· 함께 하는 이가 즐거운지 살필 것

· 삶 속에 함께하는 일이 되게 할 것

· 실패해도 괜찮아. 과정을 즐기는 것

 

성과

· 사람을 만난 것

· 그 사람이 주체가 되어가는 것

· 마을 안에서 또 다른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

· 또 다른 꿈을 꾸게 되는 것

 

 

함께 살아가기 위한 예술 커뮤니티아트의 실천 _ 문래예술공단 이소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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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예술창작촌. 철공소와 예술이 공존하는 재밌는 공간입니다. 문화예술단체 보노보C와 카페수다를 운영하는 일러스트 작가 이소주님은 문래예술창작촌의 터줏대감입니다. 2005년 이곳에 들어와 다양한 장르의 작가와 철공소 노동자들과 어우러져 마을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한 예술 커뮤니티아트의 실천>라는 제목을 갖고 나온 그는 문래예술창작촌에 들어가기 전, 2003년 한 신문사에서 일러스트, 만평, 디자인 등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신문사를 그만뒀습니다. 예술가나 작가라는 정체성이나 자의식도 없던 2005년 3월, 문래동에 작업실을 내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철공소가 함께 하는 공간이라는 점도 그랬고, 오후 6시만 넘으면 온 동네가 조용해진다는 것도 참 좋았습니다. 비어 있는 곳에서의 삶, 쉽진 않고 힘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비어있는 부분을 채우면서 더 알차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는 말을 건넵니다.

 

“문래동에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오고, 언론을 타기 시작하고 구청에서도 관심을 가졌어요. 그러다 문래예술공단이라는 이름을 투표를 통해 만들었고요. 함께 모여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됐고, 이런저런 것을 하겠다고 생각했죠. 사람들은 문래동에 오면 거칠고 녹슬고 낡아 보이니까, (분위기가) 세지 않느냐고 하는데, 나는 그런 게 감성적으로 다가왔어요. 뭔가 만져주면 살아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공공미술 개념도 몰랐을 때 기획을 하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던졌을 때 이 동네 사람도 아닌데, 그런 걸 한다고 묻더라고요. 작업실에서 24시간 살면서 2년 동안 지냈는데 말이죠. 주소지가 아니어서 주민이 아니라는 얘기도 들었고요. 다음날 동사무소에 가서 전입신고를 했어요. (웃음)”

 

그렇게 전입신고를 한 이후 동네 주민으로서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습니다. 함께 살아간다는 의식도 본격적으로 생겨났다고 소주님은 언급합니다. 그러면서 한 시절을 지배하는 단어에 대해 말합니다. 문래예술창작촌에 들어오기 전인 2003년 유행했던 단어는, 그가 기억하기로 ‘웰빙’입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융합, 공동체, 마을 등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의 단어가 사회적으로 회자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혼자 잘 살아봐야 의미가 없고, ‘함께’라는 것이 화두가 돼 가는 것 같아요. 그렇게 지내다가 2009년에 보노보C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커뮤니티아트를 하고 있어요. 제가 보기에 지금 이 세상엔 문제가 많은데,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만 있다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보노보C는 문래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커뮤니티이며, 공공예술의 가치를 찾는 실험적이면서도 대중성을 갖춘 단체입니다. 저는 요즘 스스로를 커뮤니티아티스트라고 얘기하는데, 커뮤니티아트란 예술로 공동체를 느끼는 것이고요. 이런 활동을 통해 무형의 과정들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형태가 작품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는 특히 내가 지금 어느 곳에서 사는지, 주변의 환경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문래예술창작촌의 경우, 작가들의 작업실이 2005년에는 3개였으나 지금은 100여개의 작업실이 생기고 200여 명의 작가가 활동하고 있다고 하네요. 공장은 400여개가 있고요. 그는 이런 공간에서 공공미술로 시작했고, 공간 및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지역적 활동으로 펴져나가고 있습니다. 그가 정한 활동의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재활용을 우선적으로

2. 활용 가능한 것을 만든다

3. 과정의 소통과 활용에서의 소통을 만든다

 

그의 활동은 계속 됐습니다. 2011년 4월 대안공간 [문]을 만들었고, 문래도시텃밭이라고 문래동 건물 옥상을 바꾸는 활동을 했습니다. 이 텃밭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문래예술창작촌의 명물이 됐습니다. ‘텃밭을 조성해 지역 주민들이 운영자로서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대표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그는 또 문래동 가이드로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문래동을 소개하는 방법으로 <올래? 문래!>라는 투어를 진행했습니다. 이런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그가 터득한 마을의 작동원리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가능한 것들을 만들어가는 생각의 방법이 중요합니다. 안 되는 방법에 매달리지 말고 되는 방법을 찾는 것, 그것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아울러 많은 작가들이 세상의 흐름을 온전하게 바꾸고 싶어 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도시를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문래동의 존재가 대작가 한 명의 탄생보다 훨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마을, 예술을 입다, 문화를 신다! (Q&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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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말로님 말씀 정말 재밌게 들었어요. 4집이 안 팔렸지만 명반이라고 하셨는데,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말로) 3집이 너무 많이 팔려서 당황했어요. 1, 2집은 실패했고요. 3집이 실질적인 앨범인데, 한 번 해본 것이라 자신이 없었어요. 4집은 정체성을 다지게 된 거죠. 곡을 과감하게 아티스틱하게 썼어요. 그래서 안 팔렸어요. (말로님 즉흥 노래~♪)

 

Q. 인사동이나 홍대도 뭔가를 조성하겠다고 했다가 땅값이 오르면서 작가들이 밀려나곤 했는데, 그런 정책이 마을 형성에 도움이 되는지요? 시정에서 어떤 도움을 줘야 할까요?

 

(이소주) 대학로와 홍대가 예술지구로 선정되면서 예술가들이 멸하게 되는 사례가 있었죠. 그나마 문래동은 다행인 게 공업지구라, 상업화 속도는 느릴 거라고 생각하고요. 행정에서 뭔가를 선정하는 것보다 민간이 주도권을 갖고 정책적인 부분을 함께 운영하게 만드는 게 어떨까 싶어요. 민간이 자치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행정으로서도 편할 것 같거든요.

 

Q. 숙영원 이름 뜻이 뭔가요? 아무 것도 없는 마을에서 놀아보자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건데, 마을 사람들의 달라진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카페에 오던 사람들 주축으로 마을이 커질 수 있었던 건지, 몇몇이 주축이 된 건지, 포인트를 짚어주면 좋겠습니다.

 

(유다원) 숙영원은 처음 4명이 시작했어요. 공공예술을 진행했고, 숙영원은 각자의 이름 한 글자씩 따서 한국말이었음 해서 그렇게 지었는데, 많은 분들이 차를 팔거나 어르신이 오는 곳으로 인식하더라고요. 우리 동네에 처음 들어갔을 땐 아무 것도 없었어요. 카페는 홍대 ‘삘’이 나는데. (웃음) 느낌 아는 분들이 자주 오셨고, 숙영원 건너편 도예방과 함께 뭣 좀 하면서 놀자고 의기투합해서 축제를 기획했고 포스터를 붙이고 올렸죠. 온라인으로 친한 분들도 참여하겠다는 분들도 있었고. 동네에 살다가 음대에 간 친구도 재능기부를 해주기도 하고요. 카페 안에서 숨어 있던 사람들, 다양한 마을 단체들이 축제라는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다들 만나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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