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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섬 시리즈 4부작] 그 섬의 발자취를 스케치하다 1부 “노들섬은 백사장이었다?..”

2016.10.26
도시계획국 공공개발센터
전화
02-2133-8363
 “노들섬은 백사장이었다?...”

 

서울시 용산구 이촌동에 자리한 섬!

호안과 옹벽으로 형성된 인공섬!

지하철 1호선 한강철교를 지날 때 동쪽으로 보이는 섬!

서측엔 텃밭이 일구어져 있고 동측엔 헬기장과 삼림이 우거져 있는 섬!

이 섬이 바로 ‘백로가 노닐던 징검돌’ 이라는 뜻을 가진 ‘노들섬’이다.

그러나 아직 이 섬은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유명한 섬도 아니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마음 놓고 다녀가는 장소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 장소를 찾고 즐길 수 있도록 시민들과 함께 머리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정작 이 섬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조금은 낯선 이 섬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가기 위해 지금부터 노들섬의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좀 더 가깝게 느껴지고 세파에 시달렸지만 장엄함을 풍기는 옛장수의 얼굴처럼

정겹게 보여줬으면 한다.

 

먼저 노들섬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세월을 거슬러 조선시대 1860년대 김정호에 의해 그려진

경조오부도(현재의 서울)를 살펴보자.

현재의 서울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왼쪽 하단 삼각주 모양의 지금 여의도 위치에

‘백사주이십리(白沙周二十里)’라 하여 엄청난 규모의 모래섬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일명 백사장이다. 또한 이곳에 ‘율도’ 라 하여 지금의 밤섬이 이미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의 용산의 위치와는 달리 북서쪽으로 빗겨 위치했던 원래의 용산 아래 드넓은 모래밭 마을 ‘사촌’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이곳 물맛이 좋아 궁궐에 진상하였다는 기록도 있고, 모래밭쪽으로 해가 넘어가는 풍경을

‘사촌모경(沙村暮景)’ 이라 하여 용산팔경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그러나 이 옛지도에는 아직 이렇다 할 노들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노들섬이 형성되지는 않았지만

이 지도를 유심히 살펴보면 두 곳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시흥로와 노량행궁이다.

정조대왕이 화성으로 행차할 때 이 시흥로를 통해 한강을 건넜던 것인데 많은 신하를 이끌고 어떻게

건너 갔을까

  경조오부도(수정)001

    <경조오부도 1861년>

  배다리

  여기서 그 유명한 배다리의 이야기가 나온다.

  정조대왕은 주교 즉 배다리를 이용하여 한강을 건넜던 것이다.

  배를 일렬로 세워 소나무판자를 깔고 다리로 만들어 행차를

  했던 것인데  이 모습은 1795년 정조대왕이 배다리를 건너는

  ‘정조대왕 능행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림 위쪽을 보면

  몇 개의 기와집이 보이는데 이곳이 정조대왕이 한강을 건넌 후

  쉬어갔던 노량행궁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노량행궁의 모습은 다 사라지고 없지만 대신

   ‘용이 뛰놀고 봉이 높이 나른다’ 는 뜻의 ‘용양봉저정

  (龍驤鳳翥亭)’ 이라는 정자는 홀로 이곳을 지키고 있다.

 

  배다리의 위치가 현재의 노들섬을 지나 위치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고도 흥미로울 뿐이다.

 

이렇듯 이곳에 배다리가 가능했던 것은

물길의 흐름이 느리고 강폭도 좁은데다가 양 강변이 높아

배다리 놓기에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조대왕은 수원 화성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현륭원)을 참배하고자

매년 두 차례씩 행차했고 도하조건이 좋은 이곳 노들나루(노량진)를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배다리에는 슬픈 사연이 깃들어 있다.

배다리를 만들기 위해 8백 여척의 크고 작은 배가 강제로 징발되었고 20여일 동안 묶여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생업을 못하는 주민의 원성이 ‘한강원가’를 나오게 했던 것이다.

 

“강원도 뗏목장수 뗏목 빼앗긴채 울고 가고, 전라도 알곡장수 통배 빼앗기고 울고 가면

 삼개(마포) 객주 발 뻗고 울고 노들나루 객주가 머리 잘라 판다”

 

노래에서 당시 생활의 어려움과 서러움이 묻어나는 서민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가 있다.

특히 ‘빼앗긴다’는 대목에서 우리네 정서인 ‘한’과 ‘원통함’을 느낄 수 있어 인상 깊다.

배다리는 2007년 ‘하이서울페스티발’에서 정조대왕의 화성행차를 복원하는 차원으로 노들섬에

실제로 설치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배다리의 장대함속에 서민의 아픔이 스며있는 비극적인 노들섬의 역사가 느껴진다.

 

그럼 용산 이촌동과 연결된 백만평 규모의 이 모래벌판이 어떻게 섬의 모습으로 형성되었을까

다음 「노들섬 스토리」에서 이어진다.

 


      * 검수인 : 안창모 교수(경기대학교)                   작성 : 공공개발센터 박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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