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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섬의 역사

수정일2020-07-09

노들섬의 역사

 

노들섬의 어원

1917년 한강대로를 놓으면서 한강변 모래언덕의 흙을 타원형으로 돋워 다리를 받치고 이를 중지도(中之島)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후 1995년 정부에서 추진한 일본식 지명 개선사업에 따라 비로소 지역 연고에 맞는‘노들섬’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강을 사이에 두고 용산의 맞은편을 예부터 노들 또는 노돌이라 하고 앞 한강을 노들강이라 부른데 기인한다. 일설에 의하면‘노들(또는 노돌)’의 사전적 풀이는‘백로(로鷺)가 노닐던 징검돌(량梁)’이란 뜻 조선 태종 14년(1414년) 이곳에서 나루(津)를 만들어 노들나루란 이름이 퍼지게 됐다. 서울 한강 남쪽 동네의 옛 이름,‘백로가 노니는 징검돌이 있는 나루’지금의‘노량진동(鷺梁津)’이다.

노들섬의 역사

 

“노들섬은 원래 섬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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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노들섬 _조선시대

 

18세기 조선시대 지도인 김정호의 경조오부도를 살펴 보면 지금의 여의도 위치에‘백사주이백리’라 하여 엄청난 규모의 모래섬이 형성되어 있고 이 곳에‘율도’라 하여 지금의 밤섬이 이미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근처에 노들섬은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오늘날 용산의 위치와는 달리 북서쪽으로 빗겨 위치했던 원래의 용산 아래로 드넓은 모래밭 마을‘사촌’이 있었다 한다. 조선시대에 이곳 물맛이 좋아 궁궐에 진상하였다는 기록도 있고, 모래밭 쪽으로 해가 넘어가는 풍경을 ‘사촌모경’이라 하여 용산팔경 중 하나로 꼽기도 하였다.

정조는 화성에 있는 사도세자의 현륭원을 참배하고자 행차할 때마다 이곳 노들나루(노량진)를 이용 하였다. 이 때 배다리를 놓았는데 (경조오부도 빨간 점선표시가 행차경로) 8백여 척의 크고 작은 배가 강제로 징발되어 20여 일 동안 묶여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생업을 못함으로 그 원성이「한강원가」로 불리워 졌다.

 

강원도 뗏목장수 뗏목 빼앗긴 채 울고 가고, 전라도 알곡장수 통배 빼앗기고 울고 가면, 삼개 (마포) 객주 발 뻗고 울고 노들나루 객주가 머리 잘라 판다.

 

노들섬 근대사 _개항에서 광복까지

 

원래 한강변 모래톱 가운데 하나였던 섬 아닌 섬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일제 침탈 뒤였다. 일제는 1917년 한강 북단의 이촌동과 남단의 노량진을 연결하는‘철제 인도교’를 놓으면서 남북연결을 위해 다리가 지나는 모래언덕에 흙을 돋워 석축을 쌓아 올리고 이곳을 33,000m2규모의 원형 인공섬 중지도라고 하였다. 현재도 노들텃밭 입구 왼편에 당시에 쌓은 석축과 돌난간이 남아있다. 이촌동과 노량진을 잇는 다리건설로 더욱 많은 이들의 왕래가 이어졌고 1930년대엔 노들섬까지 전찻길이 놓여 한강인도교역도 생겼다. 주변엔 100만여 평의 한강 백사장이 형성되어 있었고 중지도까지 잡풀과 갈대숲이 우거진 가운데 모래언덕과 물웅덩이 사이를 걸어 노들섬으로 강구경을 하러 가곤 했다고 한다. 30년대부터 대중에게 사랑받던 민요「노들강변」은 이 곳 노들강과 주변에 대한 애정을 반영한다.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 무정세월 한허리를 칭칭 동여서 매어나 볼까 에헤요 봄 버들도 못 믿으리로다 푸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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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섬 현대사 _광복이후~

 

모래섬 안쪽은 이촌동 주민들이 땅콩농사를 지었고, 바깥 강 안에서는 물놀이와 노를 저으며 고기 잡는 사람들로 붐볐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6월 28일 국군은 북한군의 남하를 늦추기 위해 한강인도교를 예고 없이 폭파하는 역사적 아픔이 있었으나, 그럼에도 1967년까지 섬 동쪽의 고운 모래밭 ‘한강백사장’은 여름엔 피서지로, 겨울엔 스케이트장으로 이용되었으며 매년 국군의 날은 에어쇼가 열리면서 서울을 비롯한 지방 사람들까지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하지만 1968년에 시작된 한강개발계획으로 노들섬과 한강 백사장은 유원지의 기능을 상실 하였다. 당시 계획의 뼈대는 한강 북단 이촌동 연안을 따라 한강제방도로(현 강변북로)를 건설 하는 것이었다. 경원선 철길을 따라 놓인 기존 둑의 바깥쪽에 새 둑을 쌓고, 두 둑 사이를 한강 백사장에서 퍼 온 모래로 메웠다. 1973년 옹벽을 크게 설치해 15만m2규모로 확장, 과거보다 동서로 다섯 배 가량 크기가 늘어났으며, 시공사였던 진흥기업 으로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그나마 섬 주변에 듬성듬성 남았던 모래 더미도 1982~1983년 호안 정비사업을 통해 제2차 한강종합개발 때 저수로 정비 사업이 실시돼 주변의 모래밭이 아예 자취를 감추게 되고 한강물로 둘러싸였다. 섬 둘레엔 시멘트 둔치가 생기고 사유지가 돼 버린 노들섬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점차 줄어들었다. 1989년 ㈜건영에서 인수한것을 2005년 서울시에서 매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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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재생정책과-재생소통팀
  • 문의 02-2133-8631
  • 작성일 201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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